마약이 없으면 VIP가 오지 않는다
문제는 마약이 진화한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마약은 ‘혼자 좋은 기분을 느끼기 위함’이 목적이다. 하지만 최근 강남 클럽 일대에서는 ‘투약 대상을 정신 잃게 만들기 위한 목적’의 마약이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 바로 GHB(감마 하이드록시부티르산)이다. 버닝썬 게이트 이후 널리 알려진 GHB는 1990년대 후반 미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등장했다. 당시에는 물에 탄 필로폰이라고 생각해 ‘물뽕’으로 불렸는데 GHB는 무색무취의 특징을 갖고 있다. 특히 GHB는 본인보다 상대방을 무력하게 만드는 목적이 강하다. 술에 섞어도 티가 나지 않고, GHB를 탄 술을 조금만 마셔도 금방 정신을 잃기 때문. 문제는 기억만 잃을 뿐 걷거나 의사소통은 이뤄진다고 한다. 여성을 상대로 한 성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GHB 거래가 잦아진 이유다.
서울 강남의 한 클럽 대표는 “5년 전부터 강남에서 GHB 판매를 허가하지 않는 곳과 하는 곳의 흥행 여부가 달랐다”며 “아예 GHB 구매가 불가능한 대형 1차 클럽과 GHB 구매가 가능한 2차 클럽을 구분해 1차에서 2차로 넘어가며 노는 흐름이 당연한 수순이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버닝썬 게이트 이후 잠시 클럽들이 눈치를 보긴 했지만 마약을 거래하지 않으면 클럽 VIP들이 오지 않는다”며 “룸이 존재하는 이유는 술을 먹기 위함도 있지만 마약을 편하게 하기 위함이 더 크다”고 인정했다.
그는 이어 “클럽마다 판매하는 외부인이 자리하는 곳이 있는데 보통은 화장실 앞에서 거래한다”며 “화장실 앞에서 구매한 뒤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하고 나오는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VIP 고객의 경우 온다는 연락을 받으면 아예 준비를 해놓기도 한다”며 “지금은 뜸하지만 중국이나 홍콩, 동남아시아에서 오는 VIP나 VIP의 게스트들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도 있는데, 영업하는 MD들이 이들이 원한 여성을 룸으로 데리고 가면 GHB를 몰래 탄 술을 건네 정신을 잃게 한 뒤 관계를 하는 구조”라고 털어놨다.
버닝썬 게이트 당시 경찰은 버닝썬 대표가 클럽의 영업 담당 MD와 함께 GHB를 투여한 사실을 확인했지만, 클럽 안에서 벌어진 GHB 성범죄의 실체는 밝히지 못했다. GHB가 가진 특성 때문이기도 했다. 지난 8월 방송된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PD수첩>에 소개된 케이스를 보면 수사의 어려움을 정확히 알 수 있다. 20대 여성 D씨는 3년 전 강남의 한 클럽에서 태국인 남성을 만나 술을 마셨으나 그 후 기억이 끊겼다. 다음 날 정신을 차리니 자신이 깨어난 곳은 서울의 한 호텔. 해당 남성은 태국에서도 유명한 부자였다. D씨는 곧바로 성폭행을 당한 것 같다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호텔 안에 자기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CCTV 영상 등이 발목을 잡았다. 피해자는 기억이 ‘블랙아웃(단기 기억상실)’ 상태였기에 영상 속 자신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수사기관이 처벌할 수 있는 증거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