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은빈(30세)이 CF 스타가 됐다. 굵직한 광고에 잇따라 출연하며 드라마 ‘여주인공’을 뛰어넘어 ‘브랜드가 선호하는 스타’가 된 것. 그녀는 데뷔 27년 만에 첫 팬미팅을 가지는 등 전에 없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박은빈이 출연한 ENA 수목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오랜만에 신드롬급 인기를 끌었다. 이 드라마는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 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신입 변호사 ‘우영우’의 대형 로펌 생존기를 그리고 있다. 첫 회 시청률 0.9%(닐슨코리아 제공)로 시작해 마지막 회엔 17.5%까지 올라가며 ENA의 새 역사를 썼다. 박은빈은 극 중 타이틀 롤 우영우 역을 맡아 놀라운 열연을 펼치며 시종일관 극을 이끌었다.
알려진 비와 같이 박은빈은 아역 배우 출신으로 데뷔 27년 차 중견 배우다. 박은빈은 “내가 연기한 모든 작품과 캐릭터가 특별하고 사랑스럽다”며 “‘우영우’로 큰 사랑을 받았지만 이전과 크게 변할 것 없이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똑바로 봐도, 거꾸로 봐도 우영우’ 그 자체였던 배우 박은빈을 만나 그 후 이야기를 들었다.
내 한계를 시험하는 7개월이었다
요즘 인기를 실감하고 있나?
사실 방송 초반 무렵에 촬영을 마무리한 상태였다. 크게 체감하지 못하다가 ‘우영우 신드롬’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시면서 무슨 일이 나긴 났구나 싶었다. 요즘 사인이나 사진 촬영 요청이 부쩍 늘었다. 그럴 때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이 드라마를 많이 봤구나 하고 느껴진다.
쉽지 않은 역할이었다. 애초에 대본을 받고 어땠나?
‘좋은 작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캐릭터를 내가 잘 소화할 수 있을까’는 별개의 문제였다. 만약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해야 하고, 이 이야기에서 ‘우영우’라는 인물이 필요하다면 신중하게 접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나를 믿어주셨던 감독님과 작가님에게 보답하겠다는 마음이 가장 컸다.
애초에는 우영우 캐릭터를 고사한 것으로 안다.
고사했다는 게 회자되는 것이 결국 참여한 사람으로서 조심스럽긴 하다. 사실 내가 잘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예를 들어 전작인 KBS2 드라마 <연모>에서는 남장 여자 역할이었는데 대본을 읽고 자신이 있었다. 반대로 우영우는 모두가 내게 잘해낼 거라고 했지만 정작 나는 자신이 없었다. 여느 대본을 읽으면 ‘이 캐릭터는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하고 그려지는데 영우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망설였다. 그럼에도 결국 참여하기로 했던 건, 나는 나의 가능성을 믿는 ‘자기효능감(자신이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 기대와 신념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이 있다. 스스로를 믿고 영우와 마주했다.
새삼스럽긴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유독 ‘연기 잘한다’는 칭찬이 많았다.
감사하다. 하지만 칭찬은 칭찬으로만 들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 행보에 대해서는 영우처럼 씩씩하게 헤쳐나갈 생각이다.
드라마의 인기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문화적 코드를 뛰어넘는 감수성이 있는 것 같다. 내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요인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좀 더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자폐가 있는 여성을 관찰자가 아니라 세상과 직접 소통하는 인물로 등장시킨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 인물이 과연 대형 로펌이라는 세계에 던져져 어떻게 스며드는지,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어떤 성장을 이뤄내는지 많은 사람이 그 과정을 목격하고 싶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맡은 우영우가 자폐인을 대표하거나 대변하는 인물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떤 개성 강한 특성을 가진 인물이 새로운 세계와 맞닥뜨리면서 어떻게 발전해나가는지’가 핵심 내용이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생경한 영우의 세계를 시청자들이 함께 탐험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방영 내내 연기력도 화제였지만 그 많은 대사를 완벽한 발음으로 해낸 것도 화제였다.
어렸을 때 또랑또랑하다는 말을 들긴 했었다.(웃음) 물론 평상시에는 대충 얘기하고 살기도 한다. 이 작품을 시작하면서 내게 주어진 큰 미션은, 방대한 대사량을 속사포로 내뱉으면서 정보 전달이 잘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발음을 신경 쓰기는 했다. 연기할 때 발음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건 배우에게는 당연한 일이라 큰 무리는 없었지만 법적인 대사를 속사포처럼 얘기할 때는 힘들었다. 방대하거나 낯선 대사를 수없이 연습했다. 특히 영우에게 법정에서의 법 얘기나 고래 얘기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영우의 마음을 치유하는 힐링 같은 것이었다. 당연히 잘 해내야 했다. 수없이 연습해도 머리가 새하얘질 때가 있었다. 배우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여러 한계를 실험했던 역할이었다.
나름의 암기법이 있나?
이번에 습관이 생기긴 했다. 대사를 다다닥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이해해서 내뱉는 게 중요했다. 결국 끊어 읽기가 중요했다. A4 용지에 대사를 써가면서 내가 읽기 편한 끊어 읽기를 찾아내 암기했다. 매일같이 서술형 시험을 준비하고 답안을 채점하는 7개월을 보냈다.
우영우가 자기소개를 하는, “제 이름은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입니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라고 하는 대사가 유행어가 됐다. 애초에 테스트 촬영을 했던 것도 그 장면이었다. 그때 PD님은 ‘옳다구나’ 싶었단다. 우영우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는 중요한 대사라고 생각한다. 우영우의 캐릭터를 잡기까지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결국 제작진 모두가 합의해 나온 결과물이었다.
명장면과 명대사도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것인지도 궁금하다.
제일 좋아하는 것은 마지막 회에 나오는 외뿔고래(엄니가 길게 자라 유니콘처럼 긴 외뿔을 가진 고래) 장면이다. “모두 저랑 다르니까 적응하기 쉽지 않고, 저를 싫어하는 고래도 많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게 제 삶이니까요.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 영우가 친엄마 태수미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외뿔고래에 비유하며 던진 말이다. 자폐인을 넘어, 이 세상에는 흰고래 무리와 섞여 살아가는 수많은 외뿔고래가 있지 않나. 드라마를 관통하는 명대사라고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영우가 아버지에게 “오롯이 좌절하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영우가 자신은 비장애인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고 혼자만의 힘으로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갈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다짐하고 말하는 대사다. 낯설고 어렵고 불편한 것투성이지만 그럼에도 내가 오롯이 해보겠다고 하는 그 대사는 나조차도 많은 걸 배울 수 있게 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나는 영우의 일관성을 지켜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시청자들은 영우에게 아주 쉽게 익숙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많은 대사를 외우는 것도 처음엔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는데 점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웃음) 나에게 당연한 건 없었다. 대사 외우는 것도 어렵고, 끝까지 잘해내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그동안 많은 로맨스물에 출연했다. 이번 작품의 로맨스가 달랐던 점은?
결이 비슷한 작품이라고 해도 그 작품이 가진 서사는 다 다르다. 결국 로맨스도 다 다르다. SBS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클래시컬한 템포를 맞춰가는 로맨스였다면, <연모>는 서사가 깊었던 애틋한 로맨스였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뭐랄까, 감미료 같은 느낌이었다. 영우에게 사랑은, 정면으로 돌파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영우의 성장에 사랑이 포함돼 있었고, 큰 줄기는 나 혼자 이루어진 세상에서 나와 너로 이루어진 세상을 이해하고 서로를 포용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느껴졌다. 그런 의미에서 영우의 사랑은 감미료 같았다.
27년 차 선배로서 후배들과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해왔지만 연기를 함에 있어서는 선후배가 크게 의미가 있나 싶다. 물론 나는 선배님을 잘 모시고 있지만, 결국 각자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배우들이 모여 연기하는 것이다. 모두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기에 팀워크가 좋았다.
강태오와의 로맨스는 어땠나?
강태오는 굉장히 수용적인 태도를 가진 배우다. 감독님의 섬세한 디렉팅이나 내가 옆에서 파트너로서 해주는 조언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편이다. 덕분에 함께 좋은 장면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 작품이 어떤 의미로 남을지도 궁금하다.
그동안 최선을 다하지 않은 작품은 없었다. 모든 캐릭터를 사랑했다. 이 작품은 ‘2022년에 큰 사랑을 받은 작품’ 정도로 기억될 것 같다. 감사하게도 근래에 좋은 작품을 많이 만나고 있다.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벌써 생긴다. 다음 단계를 고민하고 있다. 큰 사랑을 받았지만 예전처럼 크게 변한 것 없이 살아갈 것 같다.
“성취감보다는 고독함이 느껴졌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기질적인 성향도 있고, 어릴 때부터 책임감이 투철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몫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차단하고 오로지 연기를 위해서만 사는 사람은 아니다.(웃음) 그렇게까지 옥죄면서 살진 않는다. 균형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에너지를 잘 맞춰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세 작품에 출연했는데, 대부분 ‘도시락 투쟁(코로나19 감염을 피해 차에서 혼자 밥을 먹은 일화)’을 했다. 특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내가 없으면 촬영이 중단될 위기이기 때문에 특히 주의를 기울였던 건 맞다. 그렇다고 너무 꽉 막힌 삶을 살지는 않으니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롯이 좌절하고 싶다”는 영우의 대사가 실제 본인에게 와닿는 지점이 있나?
어려운 질문이다. 사실 주변에서 내게 “왜 이렇게 도전을 좋아하니”라는 말을 많이 한다. 물론 ‘배우 박은빈’이 아닌 ‘인간 박은빈’은 안정적인 상황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배우로서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 성취감이 들게 하는 것 같다. 혹여 실패한다 해도 그 실패가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닐 거라는 확신이 있다. 도전이 두려운 만큼 오히려 도전해보는 과정 중에 있다. 그 과정이 항상 좋았던 것만은 아니지만 그 시행착오가 좋은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다음 단계를 가다 보니 이렇게 큰 사랑을 받는 날도 오지 않나. 슬럼프? 물론 있었을 것이다. 분명한 건 지나고 보면 나를 더 단단하게 해준 것 같다.
인기 때문인지 신상에 관한 가짜 뉴스도 많다.
나와 관련한 정보가 포화 상태다. 그중 하나가 희귀 혈액형이라 안전에 혈안이 돼 있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사실무근이다. 나는 연기를 위해 구도자의 길을 걷는 사람이 아니다.(웃음) 나름대로 균형 속에서 재밌게 잘 살아가고 있다. 연기에 관한 한 진실성을 추구하지만 그 이상으로 팬들이 나에 대해 ‘성인(聖人)’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트레스 해소법도 궁금하다.
작품을 끝내면 그 캐릭터를 비워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작업은 별게 없고, 캐릭터의 스위치를 꺼두면 금방 돌아온다. 캐릭터와 나 자신을 구별할 줄 알게 된 것이 건강한 자아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다. 그걸 터득했다. 역할의 여운에 빠져 내 삶을 놓치고 있진 않다. 쉴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 비워내는 시간을 가진다.
우영우와 함께한 7개월은 어땠나?
행복했다. 좋은 분을 많이 만났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B팀이 없었다. 오로지 A팀으로 뭉친 어벤저스 팀이었다. 믿음이 가는 윤인식 감독님과 애정하는 동료들을 만난 시간이었다. 한편 내적으로 부침이 많은 시간이기도 했다. 이 역할을 해내야 하는 건 결국 배우의 몫이다. 주위에서 도와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그래서 고독할 때가 많았다. 7개월 동안 내내 온(ON) 상태로 다음 신을 외우고 해내야 하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번아웃이 오는 건가’ 싶은 순간도 있었기에 내 한계를 시험해보는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드라마가 끝났을 때 오랜만에 드는 감정이 불쑥 올라오기도 했다. 속 시원한 성취감보다는 안도감과 함께 고독함이 느껴졌다.
시즌 2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기사를 통해 접했다. 개인적으로는 큰 사랑을 받은 만큼 그 기대에 부응하려면 처음 이 작품에 출연했을 때보다 더 큰 결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이 잘 끝나고 보물 상자 안에 잘 넣어둔 느낌인데 그걸 다시 열어야 한다면, 그 안에 들어 있는 지금의 아름다운 결정체가 훼손될까 봐 걱정되는 마음도 있다. 어쨌든 미래의 일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속 시원한 답변을 할 순 없다. 배우로서는 굉장히 어려운 결정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사랑해준 시청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영우의 세계를 함께 탐험해주셔서 감사하다. 배우 박은빈에게도 많은 성원을 보내주셔서 감사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시청자들의 나날도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