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희(60세)는 요즘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 유방암 투병 생활을 하면서 삶에 대한 의지가 확고해졌다. 그녀는 지난 4월 유방암 전절제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3주에 한 번, 1년간 꾸준히 받아야 하는 강도 높은 치료로 체력이 현저히 떨어졌지만, 정신만은 어느 때보다 맑다. 서정희는 병원을 오가는 일상을 나들이로 여긴다. 그만큼 긍정적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오랜만에 <우먼센스>와 만난 서정희는 수시로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그녀는 이전과 달리 푸석푸석해졌다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이전에도 활동적이었는데, 아프고 난 뒤에 더 활발해졌어요. 에너지가 부족한 것과 별개로 무언가 하고 싶은 욕심이 커졌어요. 약은 몇 년 더 복용해야 하지만, 치료는 경과가 좋아서 잘 마무리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여러모로 의미 있는 연말이 될 거란 기대가 커요. 인생의 전반부였던 지난 60년은 후회, 아픔, 고통이 있었어요. 후반부에는 좋은 일만 가득할 거라고 기대해요.”
머리 자르던 날
나무들이 제각기 잎을 돋아내려고 하던 지난 3월이었다. 평소와 달리 가슴에 돌덩어리와 같은 무언가가 만져진다는 것을 알게 된 서정희는 즉시 병원을 찾았다. 동네 병원에서 시작된 검사는 곧 대형 병원으로 넘겨졌고, 정밀 검사를 받기도 전에 암 진단을 받았다. 당시 그녀가 만났던 의사들은 입을 모아 상태의 심각성을 논했다. 서정희는 의사들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중년이 돼서야 조금 알 것 같았던 삶의 행복과 안정을 전부 빼앗긴 기분이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친 건지 의문이었어요. 그동안 인생을 성실하게 살았다고 자부하는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죠. 몸에 나쁘다는 생활 습관도 멀리하면서 살았어요. 하지만 의문과 원망이 부질없다는 사실을 빠르게 깨닫고 현실을 받아들였어요. 제가 아픈 자들의 삶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채 살아서 병을 앓게 된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죠. 무엇보다 병을 알게 되면서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어요. 제때 발견하지 못했다면 인생이 더 짧았을지도 모를 일이에요. 삶을 더 충실하게 살 수 있도록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해요.”
서정희는 암세포가 퍼진 가슴의 전 부위를 절개하는 수술을 받았다. 현재 표적 치료를 통해 병마와 싸우고 있다. 때때로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치료와 변해가는 외모로 인해 위축되는 게 사실이지만 건강을 되찾겠다는 마음보다 중요한 건 없다.
“긴 머리를 잘라내던 날이 생각나요. 기분이 묘했어요. 모든 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은 가발을 쓰고 생활하고 있어요. 처음엔 어색했는데 이젠 제법 익숙하죠. 매일 새로운 옷을 고르듯이 단발, 웨이브 헤어, 긴 생머리 등 다양한 가발을 나열해두고 선택하는 재미가 있어요.(웃음) 치료를 받으면서 피부가 많이 상했어요. 하지만 병이 나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겉모습을 단장하는 데 관심이 컸는데 이젠 아니에요. 진짜 아름다움이란 내면의 여유에서 우러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투병 생활에 큰 힘이 되는 건 단연 가족이다. 혼자 살고 있는 서정희의 정신적 지주인 어머니와 어느덧 의지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한 딸 서동주가 그녀의 곁에 머무르고 있다. 또 아들 서동천과 며느리까지, 서정희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제가 머리를 자르던 날, 동주도 같이 자르려고 했어요. 엄마의 아픔을 같이 나누겠다는 의미였을 거예요. 제가 수술실에 들어갈 때는 저보다 더 많이 울더라고요. 그 눈물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어요. 동주와는 평소에도 왕래가 잦은데 병원에 같이 다니면서 함께 있는 시간이 더 늘었어요. 어머니와 아들, 며느리도 마찬가지예요. 저 자신보다 저를 더 걱정하고 아껴주는 사람들이에요.(웃음)”
서정희는 병마와 싸우면서 살아온 궤적을 되짚어봤다. 자신과 가정의 행복이 우선이었던 지난날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녀는 그 시기를 언급하며 ‘나만의 성’이라고 표현했다. 성벽을 높게 올려 누구도 쉽게 넘어오지 못하도록 했으나 이혼을 결심하면서 자신이 온 힘을 다해 지켜온 것이 모래성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나만의 행복이 아닌, 모두의 행복을 위해 살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처해보니 알겠더군요. 나만 행복한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그리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해요. 체력이 떨어져 활동에 어려움을 겪을 때도 ‘암 환자가 이 정도면 대단한 거다’라고 생각해요. 부정적인 에너지를 갖는 것 자체가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요. 좋은 마음을 가져야 몸과 마음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긴다는 걸 몸소 깨달았어요.”
“생각해보니 모든 일은 필연이었어요”
화려한 인생의 이면에는 아픔이 서려 있다. 고등학생 때 연예계에 진출한 서정희는 요정 같은 외모로 광고 모델 섭외 1순위를 차지했다. 데뷔 초반부터 그녀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지만, 그만큼 구설도 잇따랐다. 연예계 활동부터 결혼 생활과 이혼, 그 후의 삶까지 출처를 알 수 없는 뜬소문이 그녀를 괴롭혔고 오랜 기간 악성 댓글에 시달려왔다. 스스로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아픔이었다.
“생각해보면 늘 구설수가 따라다녔어요. 저를 향한 공격이 없던 때가 없을 정도예요.(웃음) 최근에는 제가 사망했다는 가짜 뉴스가 있었어요. 암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는 내용이었죠. 평소 사실이 아닌 일에 감정을 쏟는 편이 아닌데, 이번에는 달랐어요. 제가 죽는다는 걸 암시하는 것 같아서 섬뜩하더라고요.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지만 아픈 사람에겐 더더욱 상처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SNS에 해당 뉴스를 언급했어요.” 서정희는 오랜 시간 내면을 갈고닦았고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도록 마음을 단단하게 빚었다. 때때로 인생이 가혹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누군가를 원망하는 일이 덧없음을 일찍이 깨달았다. 그녀가 힘들 때 큰 힘이 된 건 종교다. 덕분에 크고 작은 위기에 골몰하지 않고 인생의 밸런스를 맞춰갈 수 있었다.
“매일 새벽 기도를 해요. 이른 시간에 눈을 뜨는 것 자체가 나와의 싸움인데 오랜 시간 루틴을 지켜왔어요. 보통 하루 일과는 새벽 기도로 시작해 낮 12시면 끝나요. 하루 중 해내야 하는 일을 점심시간 전에 마치고, 그 이후에는 제가 좋아하는 일들로 시간을 채워요. 기도하면서 부산스러운 마음을 가다듬어요. 누구나 어떤 대상을 원망하고, 때로 인생을 비관하게 되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럴 때마다 두 손 모아 기도하면서 마음을 비워내요.” 서정희의 하루는 바쁘게 흘러간다. 투병하면서 인생의 버킷 리스트를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했다. 발레, 인테리어, 그림, 글쓰기, 등산까지, 자신이 사랑하는 취미로 시간을 채운다. 서정희는 남은 인생은 웬만한 사람보다 더 건강해야 한다며 웃음을 지었다. 인생에서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해야 할 것들을 바라보며 앞으로의 인생에 희망을 가져본다.
“10년 전 배웠던 골프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려고 해요. 가슴 전절제 수술 이후 신체의 균형이 망가졌어요. 기본적인 자세를 잡는 것부터 다시 배워야 하지만 흥미로울 거 같아요. 드넓은 잔디밭을 거닐며 건강하게 운동하는 제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엔도르핀이 나와요. 투병하면서 몸을 움직이는 활동에 관심이 커졌어요. 이전보다 체력이 떨어지면서 활동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 됐어요. 이젠 하고 싶은 일은 무조건 시도해볼 거예요. 가끔 건강한 때보다 왕성하게 몸을 움직이고 있단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병이 다 나은 것만 같은 느낌이죠.”
그중에서도 서정희를 가장 바삐 움직이게 만드는 건 단연 글쓰기다. 1997년 <사랑스런 악처 서정희의 작은 반란>을 시작으로 살림법, 인테리어 노하우, 에세이 등 총 7권의 책을 집필한 작가인 그녀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 유방암 선고를 받고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도 펜을 들고 자신의 심경과 세상을 바라보면서 느낀 마음을 적어 내려갔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해두지 않으면 금세 잊어버려요. 좋은 생각이든 그렇지 않든 내 마음을 기록해두는 건 소중한 자산이에요. 인생의 히스토리를 문장으로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요. 한마디로 글 안에 인생이 그대로 녹아 있는 거죠. 지금까지 책을 출판하기로 한 뒤에 글을 쓴 적이 없어요. 일상에서 기록한 글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됐죠.”
최근 서정희의 일상에 또 하나의 새로움이 생겼다. 집 짓기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 소재한 89㎡(27평) 남짓의 작은 땅을 매입해 서정희의 인테리어 노하우를 담은 집을 짓는 중이다. 설계부터 건축 자재 선정까지 모든 과정에 그녀의 손길이 닿는다. 병원을 오가는 스케줄 속에서 틈틈이 이화동을 찾고 있다. 공터에 건물의 뼈대가 올라서고 한 단계씩 완성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그녀의 인생에 큰 활력이 된다.
“연말 완공을 목표로 1호점을 짓고 있어요. 앞으로 20년간 전국 각지에 10개의 작은 집을 지을 거예요. 이 꿈을 이루면 제 나이 80살이네요.(웃음) 10개 집의 콘셉트를 각각 달리할 거예요. 나무 소재의 집, 그림이 많이 걸린 집, 건물 전면이 유리로 된 집, 풀로 가득한 집 등 구상해놓은 그림이 명확해요. 생각만으로도 설레요. 요즘 저를 살아 숨 쉬게 하는 가장 큰 이유예요.”
이번 프로젝트는 집을 짓는 것 이상의 의미다. 660㎡(200평)에 달하는 펜트하우스에서 33㎡(10평)의 오피스텔로 거처를 옮기면서 ‘많이 갖는 것’에 대한 욕심을 버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왜 제게 암이 생긴 걸까요.
그동안의 삶을 성실하게 살았다고 자부하는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하지만 의문과 원망이 부질없다는 사실을 빠르게 깨달았어요.
삶을 더 충실하게 살 수 있는 일종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해요.
서정희는 궁궐 같은 집, 고급 외제 차, 화려한 장신구를 허황된 것들이라고 표현했다. 그녀의 말에 굵은 심지가 느껴졌다.
“이화동의 땅을 매입하게 된 건 비싼 전셋값 때문이에요. 수중에 가진 돈으로는 어림없더라고요. 그래서 욕심을 버리고 제가 소유할 수 있는 정도의 작은 땅을 매입하기로 결정했어요. 사실 종종 ‘내가 다시 펜트하우스에 살 수 있을까?’, ‘다시 고급 외제 차를 가질 수 있을까?’라는 혼탁한 생각을 해요. 그럴 때면 물질적인 것들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생각해요.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것들에 연연하면 정신만 피폐해질 뿐이에요. 요즘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덜어내고 있어요. 어느 날 커피를 마시려고 하는데 커피 잔이 너무 많아서 고르는 것조차 번거로운 일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커피 잔이 한 개였다면 고민하지 않고 바로 커피를 마실 수 있을 텐데 말이죠. 결국 버리는 행위를 함으로써 마음을 채우는 거 같아요. 비워내야 또 채울 수 있으니까요.”
서정희는 같은 아픔을 겪는 이들로부터 힘을 얻는다. 암 투병을 하기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슬픔을 마음 깊이 공감하고 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육체적 고통을 함께 이겨나가기로 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는 그녀다.
“SNS 댓글과 메시지로 사람들과 소통해요. 대부분 저와 같은 환우예요. 과거에 저와 같은 병을 앓은 사람, 지금 투병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 가족이 암으로 고생하는 사람 등 다양해요. 암은 직접 겪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영역이에요. 저도 암에 대해 무지했어요. 살을 깎아내는 고통이 일상을 망가뜨린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죠. 그런 상황에서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과 나누는 위로가 큰 힘이 돼요. 회복에 좋은 음식에 대한 정보나 일상에서 알아두면 도움이 되는 생활 습관을 나누면서 서로에게 희망을 전해요.”
“지금까지 살아온 만큼 더 살아야죠”
아픔 없는 삶은 없다지만 어느 하나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서정희의 지난날이 그랬다. 그녀의 나이 20살, 개그맨 서세원과의 결혼부터 32년간의 결혼 생활 끝에 결정한 이혼은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잉꼬부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던 부부의 실상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정희는 이혼 소식을 전하며 결혼 생활 동안 겪었던 폭력과 억압을 고백했다. 이후 정신적·신체적 독립을 선언한 그녀는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때때로 삶이 가혹하게 느껴졌어요.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아무도 없는 공간에선 발을 동동 구르면서 지냈어요. 하지만 전부 과거의 일이 됐어요. 제게 벌어졌던 일들이 인간 서정희를 성숙하게 만든 계기라고 생각해요. 살면서 수없이 마주한 어려움과 극복의 과정을 통해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해야 할까요? 지금까지의 인생이 경험을 쌓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인생은경험을 나누는 시간으로 채우고 싶어요. 사는 게 힘든 사람들에게 ‘저도 견디고 살아냈으니 여러분도 할 수 있다’고 응원의 말을 전하는 것부터 시작하려고 해요. 그러기 위해선 지금까지 살아온 만큼 더 살아야겠죠?(웃음)”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서정희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말을 마음에 품고 살았다. 아픔이 멈추는 시간이 올까 싶었지만 희망을 놓지 않았다. 더 나은 내일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란 생각을 붙잡고 견뎌냈다. 자신에게 닥친 일련의 고통은 인생을 통틀어 봤을 때 필연적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여겼다.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의식적으로 감사하다고 말했어요. 비관적인 생각에 사로잡힐 때도 입으론 감사하다는 말을 먼저 했죠. 제게 벌어진 모든 일에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30여 년의 결혼 생활은 힘들었지만, 제 삶에서 가장 소중한 두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었어요. 전남편에 대한 마음도 마찬가지예요. 약간의 미움도 남아 있지 않아요. 이제는 그들의 가정에 축복이 가득하길 바랄 뿐이에요. 감사함을 모른 채 살았더라면 버티지 못했을 인생이에요. 삶에서 감사함을 잃게 되는 날, 제 수명이 다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환갑의 나이에 비로소 인생의 아름다움을 알게 됐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로 일상을 채우는 일만큼 소중한 게 없다. 서정희는 지금 어느 때보다 건강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넥스트 스텝을 물었다.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아요.(웃음) 우선 그동안 응원해준 분들에게 마음을 돌려드리고 싶어요. 양방향으로 소통하면 좋을 거 같아요. SNS에 남긴 댓글이나 보내준 메시지를 하나씩 꼼꼼하게 읽고 있는데, 일일이 답을 하진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유튜브로 그동안 책에 담았던 인테리어 노하우, 궁금해하는 각종 정보 등을 전하면 도움이 될 거 같아요.”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많은 ‘욕심 많은’ 서정희는 서툴러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조금씩 나아갈 거라고 말했다. 그녀의 인생이 그랬듯 언젠가는 빛을 볼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젊은 날에 포기했던 것들을 하나씩 해내면서 후회를 남기지 않을 거예요. 살아보니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이더라고요. 그리고 모두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니까 시행착오가 불가피하고요. 더 많이 산 제가 길라잡이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늦은 나이에도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고 싶고, 힘든 이들에게 위안이 되고 싶어요. 잘 산다는 게 그런 거 아니겠어요?”
서정희의 가녀린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삶에 대한 의지였다. 우리는 그녀의 집 짓기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는 연말, 완공된 집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서정희는 자신과의 약속을 하나씩 늘려가며 살아야 할 이유를 만들고 있다. 그렇게 또다시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