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이별은 서로를 진하게 사랑했던 두 사람과 이소라, 그렇게 3명이 같이 하는 거랬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플레이리스트를 손본다.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일종의 의식이다. 그중에서도 이소라는 매해 가장 먼저 검색하는 아티스트다. 절절한 가사와 음색이 일품인 그녀의 노래들을 수년째 듣고 있지만 그 계절, 그 시간대를 지내는 내 마음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 이소라의 힘이다. 걸 그룹 있지와 에스파의 노래를 들으며 여름의 더위와 맞서 싸웠다. 그리고 계절을 돌고 돌아 집을 찾아가듯 이소라 노래로 돌아간다. 진정 가을이 오려나 보다.
쌀쌀한 날씨, 쓸쓸함을 달래는 데 이소라 노래만 한 특효약이 없다. 내가 느끼고 있는 절망보다 더 큰 절망을 노래해 마음에 생긴 구멍을 메운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바람이 분다’ 중), “그대와 나 사이 눈물로 흐르는 강, 그대는 아득하게 멀게만 보입니다”(‘봄’ 중). 절망이 때론 아름답게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을 이소라를 통해 배웠다. 무너진 마음을 붙잡고 다시 일어나본다.
그녀의 노래는 이별의 순간에도 함께했다. 첫 연애에 처절하게 패배하고 길에서 목 놓아 울던 그날, 조금은 다르다고 생각했던 사랑이 끝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정처 없이 거리를 걷던 그날, 내게 위로를 건넨 건 아무런 연고도 인연도 없는 이소라였다. 민망하지만 홀로 노래방에서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를 무한 반복으로 열창한 때도 있다. 이소라의 손을 붙잡고 슬픔의 바닥 그 어디쯤으로 향했고 언제나 그렇듯 일상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이별 동반자였다. 이소라와의 내적 친밀감으로 따지자면 그녀의 노래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등장하는 ‘윤오’를 이소라 대신 복수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녀가 바란다면 말이다.
음악의 힘을 믿게 된 것 또한 그녀 덕이다. 위로가 필요하지만 누구에게도 손 내밀고 싶지 않을 때 이어폰을 양쪽 귀에 꽂는다. 그리고 듣고 싶은 노래를 틀어놓고 상념에 잠긴다. 때론 사람보다 음악이 주는 위안이 더 크고 따뜻하다. 세상의 순리에 따라 해가 뜨면 움직이고 해가 지면 잠들기를 반복했을 뿐인데 어른이 됐다. 마음은 그대로인데 몸만 자라났다. 가끔씩 어리광을 피우고 싶고 나 좀 바라봐달라고 떼쓰고 싶다. 누구나 그런 시간이 있지 않나. 유아적인 마음이 머리와 마음을 지배하는 순간 말이다. 그럴 때도 이소라를 찾는다. 어른의 방식(?)으로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노래를 들으며 속으로 어리광을 피워본다. 나 좀 바라봐달라고 외쳐본다. 올해 가을과 겨울도 그녀와 함께할 참이다.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가사를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이소라 없는 추운 계절은 너무 쓸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