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카카오 스토리 인스타그램 네이버 포스트 네이버 밴드 유튜브 페이스북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LIFESTYLE

LIFESTYLE

캐나다의 천재 시인, 앤 카슨에 대하여

‘실연의 철학자’, ‘캐나다의 천재 시인’ 앤 카슨에 대하여.

On September 27, 2022

3 / 10
/upload/woman/article/202209/thumb/51971-497472-sample.jpg

 

앤 카슨의 글을 ‘부재의 흔적’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가 어렸을 때 <사포 시선집>을 보고 홀리듯 고대 그리스어를 배우고 난 후 이제는 사라진 세계의 문학과 언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첫 시집 <짧은 이야기>, 그가 수제로 만든 책 <녹스> 모두 결정적인 부재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앤 카슨이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미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숙제를 내면서 “원하는 사람은 그림을 설명할 이야기를 덧붙여도 좋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때 카슨은 난생처음으로 글을 썼다. 첫 시집 <짧은 이야기들>은 그렇게 쓴 그림 제목의 모음이다. 제목은 점점 길어지고 막상 그림이 사라지고 나니 그 자리에 ‘시’가 남았다. <짧은 이야기들>은 그가 42살에 출간됐다. 책은 얇지만, 시간은 두텁다. 시에서 그림이 보인다. 이제는 없는 공간을 아우르며 이미지가 흘러간다. 그렇다고 그의 시가 시각적으로 친절하다고 넘겨짚지 말라. 그의 글은 그림을 설명하지 않으니까. 그림은 그 자체로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우리는 글의 외곽선을 더듬으며 지금은 없는 그림의 희미한 연필 자국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그의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인 <녹스>는 지금은 없는 오빠에 대한 책이다. 어린 시절 그의 동경의 대상이자 영웅이었던 오빠는 어느 순간부터 파멸의 길로 들어섰다. 마약을 팔다가 체포된 뒤 보석 조건을 어겨 캐나다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오빠는 가족 모두에게 큰 상처를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어머니의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20년이 넘도록 집 앞에 차가 설 때마다 혹시 아들이 온 게 아닐까 창밖을 내다보던 어머니는 끝내 아들을 만나지 못했다. 그는 오빠를 만날 뻔했다. 집으로 편지는 보내도 자신이 있는 곳의 주소는 적지 않던 오빠가 어느 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주 이상하고 어색한 대화’를 나눈 끝에 둘은 만나기로 약속 했다. 오빠가 있다는 코펜하겐으로 가기 위해 비행기표를 예약했지만, 그는 끝내 오빠를 만나지 못했다.

“출발하기 일주일 전에 어떤 여자가 전화해 ‘당신은 저를 모르시겠지만, 당신 오빠가 방금 저희 집 화장실에서 죽었어요’라고 말했지요.”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오빠를 이해하고자 했다. 오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들을 가닥가닥 한 곳에 모아 합치면 무엇이 될지 보려고 책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 책은 아코디언 형식으로 제본돼 있는데, 한쪽 페이지에는 BC 1세기 로마 시인 카툴루스의 시를 싣고, 맞은편 페이지에는 그의 시와 오빠의 사진, 편지, 그림 등 오빠의 흔적을 담았다. 시를 타이핑하고, 종이를 찢어 붙이고, 자료들을 콜라주한 이 책은 10년 후에 출간됐다.

“그는 죽었다. 사랑이 그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 말을 보탤 수도 없다. 그가 얼마나 별처럼 빛나는 사람이었는지 내가 아무리 재현하려고 해도 그것은 평범한, 이상한 역사로 남을 뿐이다”라는 그의 말은 부재의 흔적으로 남은 책에 대한 그의 최선을 다한 설명이다.

어떤 장르의 울타리에도 갇히지 않은 그의 글은 기존의 구분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시를 읽지 않는 사람들은 앤 카슨을 읽는다”,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시를 쓰는 진정한 시인”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A. M. 클라인상, 맥아더 펠로십, 구겐하임 펠로십, 그리핀시 문학상, T. S. 엘리엇상, 아스투리아스 공상 등 다양한 상을 받았다. 그리고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자로 이름이 오르고 있다. 글 박사(북 칼럼니스트)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사진
네이버 책
2022년 10월호
2022년 10월호
에디터
하은정
사진
네이버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