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머지않은 주안이의 사춘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내와 인터뷰를 진행했던 한 기자가 말하길 자신의 아이가 주안이 나이에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다고 했단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직업 특성상 한가할 때는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길지만, 그렇지 않을 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 때문이다. 아내와 함께 대비책을 마련하려던 찰나 주안이가 “예전부터 말했잖아요, 나는 사춘기 안 할 거야!”라며 자신만만하게 선포하는 게 아닌가. 이에 아내는 “주안아, 사춘기는 너의 의지만으로 피해 가긴 어려워. 호르몬이 변화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야”라며 아들이 자신이 한 말을 지키지 못했을 때 실망하진 않을까 우려했다.
그럼에도 주안이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자신은 절대 사춘기를 겪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우리 부부는 아들의 귀여운 다짐에 고마움을 표현했고,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문제는 그 직후 발생했다. 우리 가족은 소화를 시킬 겸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충분한 휴식 시간 후 주안이에게 “주안아, 이제 숙제를 해보는 게 어때?”라고 물었다. 방금 전까지 ‘스위트한 아들’이 되겠다던 주안이는 입술을 쭉 내밀었다. 또 한숨을 길게 내뿜더니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다. 쿵쾅거리며 방으로 들어가려는 주안이를 불러 “이런 게 사춘기 아닐까?”라고 말장난을 쳤다. 주안이는 더 쉬고 싶은 마음을 몰라준 아빠가 미웠는지 울먹였다. 그러면서 “사춘기 안 할 거라고 계속 얘기했는데 아빠는 왜 나를 못 믿는 거야!”라며 속상함을 토로한 채 방으로 들어갔다.
예상치 못한 아들의 반응에 몸이 얼어붙었다. 곧바로 주안이의 방에 따라 들어가 사과했다. “주안이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해 미안해. 앞으론 이런 장난은 하지 않을게”라고 말하며 풀이 죽은 아들을 껴안았다. 그리고 주안이가 숙제를 다 마칠 때까지 옆에서 기다린 후 아들이 좋아하는 컴퓨터게임을 하며 화해의 시간을 가졌다.
어느 날 주안이가 온라인으로 사춘기 자가 진단 테스트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앉은자리에서 테스트를 시작했다. 주안이는 결과 점수를 보여주면서 아직 사춘기가 오지 않은 거 같다며 나와 아내를 토닥였다. 뒤늦게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주안이가 아내에게 엄마의 사춘기 시절은 어땠는지 물어봤다고 한다. 아내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무던하게 지나갔다고 대답했단다. 가만히 아내의 이야기를 듣던 주안이는 “나도 엄마처럼 차분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엄마와 아빠가 고생할까 봐 걱정하는 아들의 예쁜 마음이 느껴졌다.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사춘기를 걱정한 적은 없었다. 나보다 더 섬세하고 따뜻한 주안이가 대견하다. 이런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오늘도 나를 성숙하게 만드는 아들에게 고맙다.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지난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아들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