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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소멸하는 것들에 대한 성찰

On September 2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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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이 아닌, 감수성을 위해.

가을은 감수성의 계절이다. 가을이 되면 책이든 음악이든 감수성을 자극하는 작품에 끌린다. 가을에 외로움, 그리움 같은 감정이 들면 사람들은 “가을을 탄다”고 말한다. 의학적으로는 가을의 기온 변화와 일조량 부족에 따른 호르몬 변화의 영향이라고 하는데, 가을이라는 계절이 주는 숙제라면 자연스럽게 통과해보고 싶기도 하다. 가을이면 내 마음을 두드리는 손님을 우울감이 아닌 감수성이라는 이름으로 맞아본다. 그런데 감수성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를 떠나 감수성은 “소멸하는 것들에 대한 성찰”이라는 김혜순 시인의 말은 시간이 지날수록 공감하게 된다. 가을은 봄날의 햇살이나 여름의 뜨거운 태양 같은 시간 속에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이별과 죽음 등 삶의 이면, 소멸의 시간에 대해 차분히 생각하고 삶을 돌아보기에 좋은 계절이다. 서늘한 바람이 불고 낙엽과 노을 등 모든 스러짐이 아름다운 계절이니까.

이런 계절에 잘 어울리는, 감수성을 자극하는 작품을 꼽자면 먼저 오정희 작가의 작품이 떠오른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노희경 작가가 유독 사랑하는 소설가이기도 한 그녀는 그야말로 작가들의 작가다. <불의 강> <유년의 뜰> <불꽃놀이> <새> 등의 작품집을 냈는데, 문장은 담백하고 묘사하는 장면은 너무나 아름답다. 담담하게 써 내려간 주인공들의 삶의 단상을 읽고 있으면 인생의 슬픔이나 상실의 경험이 오히려 보석처럼 빛나 보이는 마법을 경험하게 된다. 나의 지난 삶과 지금의 평범한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은 바꿔놓는다. 성장소설인 <새>부터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남매의 이야기가 슬픔 속에서도 순수함으로 영롱하게 빛난다.

가을에 어울리는 음악으로는 영화음악을 이야기하고 싶다. 발라드와 재즈가 사랑받는 계절이지만 영화음악만큼 향수에 젖게 하고 감수성을 자극하는 장르도 없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음악을 자주 들었다. 한때 카페를 운영하던 부모님 덕분에 집에 해외 음악 테이프가 많았는데, 우리 자매는 <쉘부르의 우산> <닥터 지바고> <지붕 위의 바이올린> <졸업> 같은 옛 영화음악을 자주 틀어놓고 놀았다. 영화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하는 8살 어린 귀에도 오래 듣고 싶은 명곡들이었다. 영화음악의 대가 한스 짐머의 말처럼 영화음악은 영상이 할 수 없는 것을 해낸다. 영화 속 서사와 그 안의 감정을 풍부하게 상상하게 하고, 영화를 볼 때는 물론 보고 난 후에도 더 깊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영화를 보던 그 시절의 분위기, 감성, 심지어 냄새까지도 고스란히 떠오르게 한다. 다시 말해 영화음악은 나를 과거의 어떤 순간으로 가장 완벽하게 데려다 놓는다. 올가을엔 다시 만나고 싶은 그 시절의 나를 플레이해보는 건 어떨까?

CREDIT INFO
에디터
김진이(프리랜서)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2022년 10월호
2022년 10월호
에디터
김진이(프리랜서)
사진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