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의 불청객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한숨 돌리려는 찰나, 평소와 달리 두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직장에서도 몸이 나른해지긴 마찬가지다. 봄철의 ‘춘곤증’ 못지않게 가을이면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추곤증’. 환절기에 나타나는 증상인 추곤증은 갑작스러운 외부 기온 변화와 생체리듬이 충돌하면서 나타난다. 커지는 일교차에 적응하기 위해 신진대사를 촉진하는 갑상샘호르몬 분비량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피곤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또 가을철은 공기가 건조해지면서 호흡기의 점막이 마르는 계절이다. 밤 시간대 수면을 방해해 활동하는 낮에 피곤이 몰려온다. 추곤증은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서 겪는 증상으로 알려졌지만, 수면 시간이 충분한데도 피로가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추곤증을 단순한 피로로 풀이해선 안 된다. 일상에 지장이 생기는 것은 물론 안전상 위험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1년 중 11월에 졸음운전 사고가 늘어나는 데는 추곤증과 연관이 있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2018~2020년 사망자가 발생한 교통사고 가운데 ‘졸음·주시 태만’ 사고는 11월에 급증했다. 사망자 총 38명 가운데 30명, 즉 78.9%가 운전 중 집중력이 떨어졌던 게 원인이었다. 이는 같은 기간 7월(59%), 8월(70%), 9월(65%), 10월(71%)보다 높은 수치다. 동절기인 12월과 1월까지 합하면 평균 79.2%로 최근 3년간 평균(69.2%)보다 10%p나 높다. 추곤증을 세심한 케어가 필요한 질환으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다.
무시해선 안 될 ‘추곤증’
추곤증은 개인마다 증상이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피로감이 바탕이 된다. 보통 아침에 기상할 때 개운함보다 피곤함이 크게 느껴지고, 온종일 정신이 몽롱하다. 특히 식후에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하게 졸음이 쏟아진다. 매사에 힘이 없고 집중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일상에서 무기력함을 느끼고 스스로 피로가 누적됐음을 체감한다.
추곤증은 질병으로 분류되진 않지만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일상생활에 피해가 생긴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증상을 방치하면 면역력이 약해져 기억력·집중력 감퇴, 호흡기 질환에 노출될 위험은 물론 기저 질환이 악화될 수 있다. 따라서 일상에서 내 몸이 느끼는 피로의 정도를 파악해야 한다. 피로 해소에 도움이 되는 영양제를 섭취하고 식단 관리에 신경 쓰면 피곤함을 떨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가벼운 운동으로 주변 환경과 생체리듬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게 좋다.
무엇보다 추곤증의 증상이 점점 심해질 때는 수면장애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미약했던 수면장애 증상이 추곤증으로 인해 심해지기도 하기 때문. 피로가 극심하면 전문의를 찾아가 진단을 받는 게 좋다.
한 달 이상 지속되는 피로는…
추곤증은 만성피로와 증상이 비슷하다. 이 같은 이유로 만성피로를 추곤증으로 혼동하고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빈번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곤증과 만성피로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증상 발현 기간과 악화 추이다. 추곤증은 보통 생체리듬이 계절에 적응하기까지 약 한 달 정도 증상이 나타나고 점차 호전된다. 반면 만성피로는 계절과 관계없이 증상이 악화되는 질환으로 충분한 휴식을 취해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피로가 1개월 이상 지속되면 만성피로를 의심해보고 병원에 방문해 정확한 진단을 받도록 한다. 만성피로를 방치하면 일상에 의욕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현기증, 식욕부진, 체중 감소, 두통, 불면증 등 다양한 질환이 동반되기도 한다. 만성피로를 부르는 요인은 다양하다.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 흡연, 음주, 운동 부족과 같은 잘못된 생활 습관부터 수면장애 등이다. 과도한 카페인 섭취를 삼가고 주 3회 가벼운 운동으로 건강한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게 좋다.
만성피로 외에도 초기 증상 중 하나로 피로감을 동반하는 질병을 숙지하는 게 좋다. 지속된 피로는 내 몸이 보내는 건강의 적신호일 수 있기 때문. 단순히 계절이 변하면서 피로감을 느끼는 것으로 치부한다면 병세가 깊어질 위험이 있다. 피로를 동반하는 질환으로는 수면무호흡증, 빈혈, 간염, 결핵, 당뇨병, 고혈압, 지방간 같은 질환부터 우울증 같은 심리 질환 등이 있다. 여성 질환으로는 빈혈, 갑상샘 질환 등이 대표적이다.
추곤증을 악화시키는 생활 습관
카페인 과다 섭취
일상에서 커피 한잔만큼 달콤한 휴식은 없다. 적정량의 카페인은 피로감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지만 과다 섭취하면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 신체에 필요한 수면 시간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등 부작용으로 일상에서 더 큰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커피에 함유된 카페인이 몸속 혈관을 수축하는 동시에 수분과 칼슘을 몸 밖으로 내보내면서 체내 기능 순환에 장애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일일 최대 섭취 권장량은 성인 400mg 이하, 임산부 300mg 이하다. 커피뿐만 아니라 녹차, 홍차 등에도 카페인이 함유돼 권장량을 고려해 섭취하는 게 좋다.
음주와 흡연
숙면을 위해 음주를 선택하는 이들이 적잖다. 표면적으로는 술의 힘을 빌려 깊은 잠에 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알코올이 체내에서 분해되는 과정에서 아세트알데하이드라는 물질이 분비돼 수면의 질을 떨어뜨린다. 과음 후 오랜 시간 잠을 자도 다음 날 몸이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 드는 것은 이 물질 때문이다. 담배에 함유된 니코틴 또한 각성 작용이 강해 수면에 방해가 된다.
취침 전 스마트폰
잠들기 직전까지 스마트폰이나 TV를 시청하는 습관은 피로를 가중시킨다. 미디어 기기 화면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가 수면 유도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하기 때문이다. 즉, 뇌가 블루라이트를 햇빛으로 인식해 수면 환경을 조성하지 않는 것이다. 잠들기 2시간 전부터 방의 조명을 어둡게 하는 등 수면 환경을 만들어 수면의 질을 높일 필요가 있다.
행락철 졸음운전 예방 수칙
쏟아지는 피로감은 운전대를 잡는 순간까지 엄습한다. 나와 가족, 그리고 타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졸음운전 방지법을 소개한다.
틈틈이 환기
차량 내에 적절한 산소 공급을 위해선 환기가 필수다. 밀폐된 차량에 오랜 시간 머물다 보면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는데 졸음뿐 아니라 두통, 집중력 저하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외부의 맑은 공기를 차량 내부에 순환하면 졸음 방지에 도움이 된다.
쉼터 활용
졸음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휴식이다. 껌을 씹거나 환기를 시켜도 졸음이 달아나지 않는다면 도로 위 일정 구간마다 마련된 졸음쉼터나 휴게소에서 잠깐이라도 잠을 청하거나 스트레칭으로 피로를 해소하는 게 좋다. 장시간 운전을 해야 한다면 2시간마다 15분씩 휴식하기를 권장한다.
졸음운전 방지용품
이마나 목에 붙이는 졸음 방지 패치는 시중에서 가장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졸음운전 방지용품이다. 운전자뿐 아니라 학생, 직장인도 일상에서 졸음을 퇴치하기 위해 흔히 사용한다. 또 운전자의 행동 패턴을 파악해 조는 순간에 경보음이 울리는 경보기 등이 있다. 이밖에도 차량을 구매할 때 옵션으로 차선 이탈 방지, 긴급 제동 시스템 같은 기능을 탑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