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점을 모르고 치솟는 물가. 주부들 사이에선 마트에 들어서기가 무섭다는 원성이 이어지고, 직장인들 사이에선 “월급을 제외하고 모든 게 올랐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난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 대비 6.0% 상승해 23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가는 올해 들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3월(4.1%)과 4월(4.8%)에는 4%대, 5월(5.4%) 5%대를 기록하더니, 6월에는 6%대까지 올랐다. ‘장바구니 물가’로 불리는 생활물가지수는 지난해보다 7.4% 증가했다.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먹거리는 물론이고 유류세와 전기·가스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까지 예고돼 서민들의 시름은 깊어져만 간다. 유류세 인상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가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가 가계 부담을 덜고자 유류세 인하 정책을 시행했으나 가격은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대표적인 서민 외식 메뉴인 삼겹살, 자장면, 치킨 등 39개 외식 물까까지 줄줄이 상승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직장인들은 외부 음식점 대신 편의점, 구내식당, 도시락을 선택하고 커피는 사무실 탕비실에서 해결하는 등 허리띠를 단단히 졸라매는 분위기다. 당장 지출을 줄일 수 있는 항목부터 줄여나가는 ‘짠테크’로 해답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MZ세대의 무지출 챌린지
2030세대도 마찬가지다. 한때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며 고액의 소비도 망설이지 않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가 트렌드였지만, 요즘은 지갑을 쉽게 열지 않는 추세다. 경제 침체로 더 불안해진 미래에 대비하기로 한 것으로 풀이된다. 주식이나 코인 등 유동성 자산의 가치가 하락하는 상황까지 맞물리면서 ‘절약만이 살길’이라는 데 동의하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각종 온라인 등지에선 소비를 줄이는 방법은 물론이고 돈을 아예 쓰지 않는 ‘무지출 챌린지’가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매김했다. 무지출 챌린지는 지출 0원을 목표로 식대를 포함한 모든 지출을 하지 않는 것이다. 지출을 극단적으로 줄인다는 점에서 절약과 차이가 있다.
무지출 챌린지는 SNS상에서 번지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무지출’을 검색하면 수천 개에 달하는 게시물이 검색된다. 무지출 실천기를 담은 유튜브 콘텐츠도 인기다. 돈을 일절 쓰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브이로그가 대부분인데, 조회 수가 수십만에 달한다. 무지출을 실천한 기간까지 인증해 알뜰살뜰하게 살아온 일상을 담아내는 게 핵심. 여기에 무지출 챌린지 꿀팁을 전수하는 유튜버까지 등장해 근검절약의 표본을 보여준다.
무지출 챌린지의 묘미는 짠내 나는 일상이다. 식사는 냉장고에 남아 있는 식재료로 해결하거나 편의점을 이용한다. 제대로 된 식사는 ‘법카찬스’가 있을 때만 먹는다. 고정 지출인 교통비의 경우 10원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불편을 감내한다. 가까운 거리는 ‘따릉이’와 같은 공공 자전거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커피는 외출 전 집에서 챙겨 나오거나 사무실 탕비실, 기프티콘으로 해결한다. 식사를 제공하는 직장에 다니는 경우엔 정시 퇴근을 포기하고 회사에서 저녁 식사까지 챙긴다. 무지출 챌린지의 범위는 먹고 사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미용실, 자격증 공부, 운전면허 시뮬레이션 연습 등 부가적으로 돈이 들어가는 부분에 해당되는 영역까지 포함된다. 취미 생활도 예외가 없다. 이 모든 건 유튜브 영상 하나로 해결한다. 별도의 돈을 들이지 않고 필요한 정보를 습득하는 방식이 MZ세대의 절약 방식인 셈이다. 무지출 챌린지의 성공을 위해 개설된 단체 채팅방도 등장했다. 일일 카드 사용 지출 내역을 공유하며 이른바 ‘절약 인증’을 하는 것.
부수입을 벌어들이는 움직임까지 포착된다. 방치해둔 옷, 가방, 신발, 생활용품 등을 중고 거래 플랫폼에 내놓아 수입을 얻는 것이다. ‘앱테크(애플리케이션+재테크)’도 빼놓을 수 없는 부가 수익 창출 방법이다. 걷기, 리뷰 작성 등 애플리케이션에서 제시한 미션을 해낼 경우 10~100원 상당의 현금성 포인트가 쌓인다. 여기에 기프티콘을 내건 각종 이벤트를 챙기는 알뜰함까지, 요즘 MZ세대의 생존 전략은 다양하다.
한편 당국은 올해 가을 물가 상승세가 정점을 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바구니 물가의 경우 소고기, 닭고기 등에 대한 할당관세 조치가 안정되는 시기를 10월로 예상한 것. 또 장마 이후 채소 작황 환경이 개선되면 물가 상승세가 서서히 둔화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막내 에디터의 ‘무지출 챌린지’ 도전기
‘오늘 점심에 어떤 음식을 먹을까?’, ‘저녁에는 어떤 안주를 먹을까?’ 하루의 행복을 점심시간과 퇴근 후 술자리에서 채우는 에디터의 무지출 챌린지. 티끌모아 반드시 태산을 만들겠다는 굳은 다짐과 함께 짠내 나는 이틀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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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려 1,000원’ 교통비 절감
5,100원 → 3,000원어쩔 수 없이 지출해야 하는 교통비는 최대한 줄여보기로 했다. 집 앞에서 좌석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이동했던 루틴을 바꿨다. 일반 버스를 이용하면 편도 1,450원, 왕복 2,000원이 절감된다는 계산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한 달에 20일 출근한다고 가정했을 때 약 4만원을 아낄 수 있는 셈이다. 이동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과 지옥 같은 출퇴근 버스를 타야 한다는 게 흠이었지만, 2,000원을 향한 집념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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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냉장고 털기’ 식음료
13,000원 → 0원일일 점심 식대는 식사와 커피를 포함해 평균 1만 3,000원이었다. 저렴한 메뉴로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봤지만, 도시락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냉면 한 그릇이 1만원인 물가를 고려하면 만원짜리 한 장으로 한 끼의 식음료를 해결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집 냉장고에 있는 과일과 달걀을 싸 와 점심을 해결했다. 커피는 앞서 받았던 기프티콘으로 구매했다. 빈약한 식사가 조금은 우울했지만, 야근 시 팀별로 식대가 나오는 찬스를 기대했다. 무지출을 다짐하며 공짜 삼겹살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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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물건 팔이’ 부수입 창출
0원 → 20,000원 상당 기프티콘무지출 기간에 힘입어 쏠쏠한 재미를 보장한다는 부수입 창출에 나섰다. 신발장 깊은 곳에 넣어둔 스니커즈를 판매하고자 했다. 사이즈가 맞는 지인을 찾아 거래를 시작했고, 몇 차례 가격 협상의 대화가 오간 뒤 판매를 성사했다. 거래 후 지인은 2만원 상당의 카페 기프티콘을 보내왔다. 이것으로 일주일간의 커피를 해결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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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꾸준히 실천하면?…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편리를 위해 지불했던 몇천원의 돈이 하루, 이틀, 한 달, 일 년 등 기간으로 계산했을 때는 상당한 금액이었다. 물론 매일 아침 도시락을 챙기긴 어렵겠다. 하지만 일주일에 세 번씩만 실천해도 한 달에 15만 6,000원(13,000×12)의 비용이 줄어든다는 달콤한 결과를 고려하면 약간의 수고는 감당할 수 있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