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야, 네가 아무리 더워봐라. 내가 에어컨 트나, 선풍기 틀지.” 타고나길 에어컨 바람을 싫어한다.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다가 맞는 쾌적한 에어컨 바람이 반가운 것도 잠시다. 인위적인 바람이 장시간 살갗을 건드리면 몸 곳곳에 소름이 돋아난다. 두통은 덤이다. 더위에 강한 인간임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더위를 타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누구나 그렇듯 혼을 쏙 빼는 더위는 속 깊은 곳에 숨겨둔 성격파탄자를 불러낸다. 게다가 더위가 수면 시간을 방해할 때면 어쩔 도리가 없다. 선풍기 바람의 세기를 높여도 달아오른 열을 식히기엔 역부족이다. 그렇게 더위와 맞서 싸우다 방향을 틀어 ‘평화 협상(?)’을 이뤄냈으니, 바로 따뜻한 물 샤워다.
끈적거리는 몸을 이끌고 욕실의 샤워기 레버를 왼쪽으로 돌린다. 따뜻함과 뜨거움 사이 어디쯤에 있는 온도의 물이 몸을 감고 있던 긴장감을 누른다. 후덥지근한 여름날 공기의 온도와는 사뭇 다른 ‘따뜻함’이다. 뜨거운 국물을 마시며 “시원하다”라고 말하는 어르신들의 표현을 빌려본다. 이거 정말 시원하다. 저자극 보디 워시 제품을 온몸에 바르고 헹궈낸다. 하루 동안 쌓인 먼지와 축적된 피로를 함께 씻겨 보낸다. 샤워 후 맞이하는 공기는 샤워하기 전에 느꼈던 그것과는 다르다. 여름날의 공기와 체온이 얼추 비슷한 정도로 맞춰졌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개운하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취미(의식이나 습관이라고 하기엔 일상에 즐거움을 선사하니 취미라고 표현하겠다)가 생긴 후 얻은 긍정적인 효과가 더 있다. 매일 저녁 양다리에 압박 밴드를 차고 잠자리에 들 정도로 부기로 고생하던 시간으로부터 조금씩 해방되고 있다는 것. 전문의의 말에 따르면 따뜻한 물로 샤워하면 긴장된 근육이 이완돼 부기 제거에 효과적이란다. 그리고 숙면에 도움이 된다. 밤사이 잠에서 깨어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더위 때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속 깊은 곳에서 치미는 짜증이 동반되니까 말이다. 보송한 몸으로 잠자리에 누우면 금세 잠이 들곤 한다. 또 한 번 전문의에 기대어 말하자면, 따뜻한 물로 몸을 씻으면 스트레스받았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을 줄어들게 해 육체적·정신적으로 진정 효과가 있다고 한다. 세상에, 샤워가 이렇게 좋은 거였다.
적을 이기기 위해선 적의 소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더위라는 무적을 해치고자 선택한 건 시원함이 아니라 따뜻함이다. 이열치열. 열을 열로 다스리는 ‘쪄죽따’는 더 이상 열대야가 성가시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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