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9일 대선이 끝나고 80여 일 만에 치르는 지방선거는 ‘박빙’이 예상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 용산 이전 등을 강행하면서 ‘불통’ 논란을 겪었고, 더불어민주당 역시 구심점을 잃고 좌충우돌하면서 “찍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한 지방선거였다.
그리고 6월 1일, 민심은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최대 승부처로 꼽힌 서울·인천과 충청권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이 압승을 거뒀다. 게다가 텃밭인 영남은 물론, 호남에서도 역대 최대 지지율을 얻는 데 성공하며 4년 전 궤멸에 가까웠던 보수 정당 완패를 설욕했다. 물론 경기도지사와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선거에서 패배한 것은 국민의힘에게 아쉬움으로 남았겠지만 말이다. <우먼센스>가 지역별로, 당선인을 중심으로 선거 결과와 의미를 짚어봤다.
# 오세훈이 빛난 서울
4년 후 대선 준비하기 ‘딱’ 좋은 자리
국민의힘은 서울에서 의미 있는 승리 결과표를 받았다.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59.1%의 득표율을 얻어 당선됐는데, 단순한 승리로만 보기 아쉽다. 서울 25개 구에서 모두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후보보다 앞서는 득표율을 기록했기 때문. 송영길 후보는 39.2%의 득표율에 그치며, 20%포인트 가까운 차이로 패배했다. 강북구, 도봉구, 금천구, 구로구, 관악구 등 전통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이 강세를 보인 지역에서도 송영길 후보에게 승리하며 ‘중도 표심’에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오세훈 후보는 이로써 서울시장 4선의 위엄을 달성했다. 비록 한 차례 불명예스럽게 중도 사퇴한 적은 있지만 4선에 성공하며 차기 유력 대선 후보로 거듭났다.
오세훈 후보의 장점은 ‘젊은 보수’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정치 초반부터 개혁 성격의 입법 활동이나 행보를 걸어오면서 ‘보수답지 않은 보수’라는 이미지를 세팅한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특히 큰 키와 수려한 외모, 패션 센스는 여성 유권자들에게도 ‘호감’으로 평가받는 지점이다.
국민의힘이 17 대 8로 승리한 서울 구청장 선거와 비교하면 오세훈의 경쟁력은 더욱 두드러진다. 구마다 차이가 있지만 적으면 30만 명, 많으면 60만 명이 넘는 인구를 가지고 있어 ‘지방 시 단위’ 이상의 의미를 갖는 서울 25개 지역구에서 국민의힘은 17개 지역구를 석권했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 25개 구 중 24 대 1(서초구)로 더불어민주당에 참패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성과다. 전통 강세 지역인 강남 4구(서초·강남·송파·강동)를 완전히 탈환한 데 이어 종로·중구·용산·광진·동대문·도봉·서대문·마포·양천·강서·구로·영등포·동작에서도 승리를 거머쥐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한 8곳 중 더불어민주당 소속 현역 구청장이 재출마해 ‘현역 프리미엄’이 있었던 곳은 7곳. 국민의힘이 오세훈 후보를 중심으로 뭉쳐 서울에서 승리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4년의 임기를 보장받았는데 이는 차기 대선이 본격화되기 직전까지 서울시의 행정을 통해 유권자 다수에게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라며 “서울은 단순히 1,000만 명의 인구가 사는 곳이 아니라 1,358만 경기 도민 중 다수가 경제생활을 영위하는 곳이라 오세훈 시장은 자연스레 차기 유력 대선 후보군 중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선점했다”고 풀이했다.
# 기초단체장은 국민의힘이 웃었지만, 스타 된 것은 더불어민주당 김동연
행정 관료→경기도지사로 ‘존재감’ 갑
전국 최대 표밭인 경기도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국민의힘이 웃었다. 경기도 31곳의 시장·군수 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22곳에서 당선자를 냈다. 용인시장과 고양시장 선거에선 각각 국민의힘 이상일(55.3%)·이동환(52.1%) 후보가 개표 내내 우위를 보이며 1위 자리를 지켰고, 이재명 인천 계양을 당선인의 텃밭인 성남시장 선거에서도 신상진 국민의힘 후보가 55.9%의 득표율로, 42.8%를 얻는 데 그친 배국환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10%포인트 넘게 앞서며 승리했다.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9곳에서 승리했지만 전통적으로 진보 강세 지역인 시흥을 비롯해 화성, 안양, 부천, 광명 등에서 이겼을 뿐 의미 있는 승리는 없었다. 4년 전,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이 당선된 가평과 연천군을 제외한 29곳을 싹쓸이하며 대승을 거뒀던 민주당은 4년 만에 완패의 결과표를 받아 들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선거의 최대 경합지이자 관심이 쏠린 경기도에서 김동연이라는 ‘대형 신인 정치인’을 얻을 수 있었다. 1,358만 인구를 자랑하는 수도권 최대 승부처인 경기도에서는 김동연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은혜 국민의힘 후보가 각각 ‘명심(明心)’과 ‘윤심(尹心)’으로 맞붙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를 역임한 ‘흙수저 출신’ 김동연 후보는 개표 이후 단 한 차례도 선두를 내주지 않았던 김은혜 후보를 상대로 서서히 표 차이를 줄여갔고, 개표 10여 시간 만인 오전 5시 30분쯤 1위로 올라섰다. 결국 0.15%포인트 차이로 승리할 수 있었다. 불과 8,900여 표 차이였는데, 선거를 완주한 강용석 무소속 후보가 0.95%를 득표하면서 보수표가 분산되지 않았다면 패배할 수도 있었다.
김동연 후보의 승리 원인은 ‘인물론’과 함께 ‘중도 공략’을 한 덕분이라는 평이 나온다. 김동연 후보는 선거 기간 내내 “말꾼이 아닌 일꾼이 돼야 한다”며 경제부총리까지 역임한 자신의 행정 역량을 강조했다. 실제로 경기 지역 광역의원 비례대표 선거에서는 국민의힘이 50.1%의 지지를 받아 더불어민주당(45.4%)을 눌렀다. 그래서일까? 당선증을 받아 든 김동연 후보는 기존 더불어민주당 핵심 정치 세력과는 다른 행보를 할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김 후보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더불어민주당 개혁의 씨앗’에 비유했다. 그는 “국민들이 더불어민주당을 질책하면서도 건전한 비판 세력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는 것”이라며 “국민들이 더불어민주당을 국민 눈높이에 맞게 변화하고 개혁시킬 씨앗을 남겨둔 거라고 본다”고 자신의 승리를 평가하기도 했다.
자연스레 김동연 후보는 ‘인물난’에 시달리는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대선 후보군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앞선 대선에 출마했던 김동연 후보. 선거 막판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단일화를 했지만, 인구 1,358만 명의 경기도지사가 되면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 중 가장 행정적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는 이가 됐다.
# 완전 뒤집힌 충청과 경남…
중도는 국민의힘 선택
홍준표는 보수의 심장 대구에 안착
국민의힘에 가장 기분 좋은 승전 소식은 단연 충청권이다.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는 세종에서 최민호 국민의힘 후보(52.8%)가 이춘희 더불어민주당 후보(47.2%)를 5%포인트 이상 차이로 이기며 승리했다. 대전에서는 51.2%의 지지를 받은 이장우 국민의힘 후보가 허태정 더불어민주당 후보(48.8%)를 2.4%포인트 차이로 눌렀다. 충북·충남지사도 김영환·김태흠 두 후보가 넉넉한 차이로 승리하며 ‘중도 민심’이라고 불리는 충청권에서 완승을 거뒀다. 2018년 안희정 충남지사를 필두로 더불어민주당이 휩쓸었던 충청권 광역단체장을 석권한 것은 의미 있는 결과다.
사실 최대 격전지로 꼽혔던 곳이기도 하다. 더불어민주당도 공을 많이 들였다. 윤호중·박지현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은 유세 마지막 날 세종과 대전을 찾아 지지를 호소했다. 하지만 충청권 민심은 더불어민주당이 아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격전지는 아니었지만 4년 전 더불어민주당에 내줬던 부산·울산·경남(PK) 지역을 완전히 수복했다는 점도 의미가 깊다. 지난해 4월 7일 보궐선거에서 60%가 넘는 지지율로 완승했던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는 넉넉한 표 차이로 재선에 승리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측근이 재출마한 울산시장과 경남지사도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탈환했다. 보수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대구에서는 홍준표 국민의힘 후보가 80% 가까운 득표율로 완승을 거두며 차기 대선을 노려볼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 보궐선거로 나란히 국회 입성한 이재명, 안철수
같이 승리했지만 다른 느낌의 ‘민심 평가’
함께 치른 보궐선거에서도 ‘유력 차기 대선 후보’들이 대거 국회로 입성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성남 분당갑 국회의원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성남 분당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안철수 국민의힘 후보는 62.5%를 얻어 37.49%를 받는 데 그친 더불어민주당 김병관 후보에게 압승했다. 전직 경기지사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인천 계양을에 출마해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두 당선인 모두 앞선 대선에 출마했던 일명 ‘전국구’ 정치인이었지만 선거 결과를 보면 이재명 의원은 조금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텃밭에서 낙승을 예상했던 이재명 후보(54.1%)는 윤형선 국민의힘 후보(45.9%)와 큰 격차를 벌이지 못하고 승리하며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됐다. 반면 안철수 의원은 이재명 의원이 시장과 도지사를 역임했던 성남시 분당갑에 출마해 압도적 표 차이로 승리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더불어민주당 텃밭이라고 평가받는 인천, 그것도 계양을에서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후보가 나섰는데도 60%를 넘기지 못했다는 것은 거꾸로 국민의힘에 의미 있는 결과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안철수 의원은 당선 직후,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과의 접촉을 넓히면서 5년 후 대권을 위한 행보도 시작했다. 안 의원은 “(다선이지만) 국민의힘에서는 신입 정치인”이라며 “여러 의원과 만나겠다”고 밝혔다. 안 의원이 보수 제1당이자 여당에 소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회의원 경험이 없는 이재명 의원도 ‘1선’으로 여의도에 첫발을 내딛게 됐다. 간발의 차이로 대선에서 패배한 것을 바탕으로 ‘더불어민주당 장악’에 나선 이재명 의원. 정치 지형도는 불리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실수를 기다리며 5년 후를 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재명 의원 측 관계자는 “이번 지방선거는 애초에 불리한 싸움이었고, 경기도에서 김동연 후보가 승리한 것은 이 의원이 기존에 다져놓은 민심 덕분”이라며 “한동안은 잠행하겠지만, 향후 민주당의 구심점으로서 존재감을 더 드러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방선거 진 뒤 내홍 겪는
위기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때문이냐, 이재명 덕분이냐
대통령 선거 직후까지만 해도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를 외치던 친(親)이재명계 국회의원들과 ‘이재명 책임론’을 제기하는 친(親)문재인계 국회의원들 간 갈등은 이제 조금씩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1 대선 결과 무시하고 마이 웨이를 하다가
더불어민주당의 패배 원인으로 여러 가지가 지적되지만, 대선 패배 후 말로만 개혁을 외치고 실제로는 ‘마이 웨이(My Way)’를 강행했던 것이 패배의 최우선적 원인으로 꼽힌다. 송 전 대표는 인천에 기반을 둔 정치인임에도 서울시장 후보로 낙점됐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는 “송 전 대표가 강력하게 원했다”는 게 공공연한 반응이었다.
공석이 된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자리에는 이재명 전 대선 후보가 역시 ‘차출’하듯 출마하며 더불어민주당의 ‘민심을 고려하지 않은 행보’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거친 이재명 후보는 정작 경기 성남시 분당갑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았다. 대신 당선 가능성이 높은 인천 계양을에 출마했다.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한 안철수 전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피하는 모양새가 됐다.
윤석열 정부의 성격을 검찰 공화국으로 규정한 뒤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로 검찰의 힘을 빼자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움직임도 자충수가 됐다. 여론조사는 물론, 진보 성향의 시민 단체들까지 나서서 검수완박에 대해 반대할 정도로 부정적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강행했다. 다수의 의원이 속도 조절론을 내세웠지만, 김용민 의원 등 강경파 의원들이 내는 목소리에 묻혔다.
2 박지현 영입하고도 성폭력 이슈 ‘미흡 대처’
박지현 전 공동비대위원장을 영입하며 ‘2030 여성표’를 가져오려 했던 더불어민주당. 하지만 정작 당내에서 발생한 이슈에는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말 발생한 박완주 의원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 4월 말쯤 신고를 받은 뒤에야 당적 박탈 조치를 내렸다. 이에 더해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동료 의원에게 “짤짤이 치냐”는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불어민주당은 “변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최강욱 의원은 지난 5월 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 및 보좌진과 함께 한 회의에서 “XX이 치냐”며 왜 화상회의에서 얼굴을 보여주지 않느냐고 비웃었다. 이를 놓고 최 의원은 “짤짤이라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고, 더불어민주당 징계 기구인 윤리심판원은 조사 절차 자체를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버렸다. 박지현 당시 비대위원장이 “지방선거 이후로 넘기는 건 적절하지 못하다”고 지적했지만 변하지 않았다.
2030 여성을 대표하는 박지현 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 내 주류 세력인 86세대(1980년대 학번·1960년대생)의 용퇴를 거론했다가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은 86세대,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주류’인 정당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당시 박 위원장은 “우리 편의 잘못에 더 엄격한 더불어민주당이 되겠다. 팬덤 정당이 아니라 대중 정당으로 만들겠다”며 86세대 용퇴를 거론했다. 이를 놓고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이 강하게 반발했다. 김민석 전 선거대책위 총괄본부장 등 86세대 정치인들도 나서서 “틀린 자세와 방식”이라며 박 위원장을 비판했고, 결국 박 위원장은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며 사과해야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새로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4선 우상호 의원을 임명했다. 이는 86세대와는 단절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더불어민주당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얼굴이 없다. ‘구심점 후보’는 이재명 의원 정도다. 대선을 놓고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경합했던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지난 6월 7일 미국 수도 워싱턴에 있는 조지워싱턴대에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떠났다. 김동연 당선인도 경기도지사라서 ‘여의도’와는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거리가 있다.
진중권 시사평론가는 “이재명을 따르는 팬덤은 ‘친문(親文)’보다 (충성도가) 더 세고 강경하다”며 이재명 당선인이 대선 패배 직후 선거에 나선 사례를 들며 “더불어민주당에서 ‘책임지는 문화’가 실종됐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