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자리에서 슈(본명 유수영, 걸 그룹 S.E.S. 출신 가수)의 두 눈동자는 자주 떨렸고, 물음과 답변 사이에는 긴 적막이 흘렀다. 장난기를 덜어낸 그는 차분하고 담담했다. 상습 도박으로 물의를 빚었던 슈가 다시 대중 앞에 서기까지 4년이 걸렸다. 슈는 그 시간을 조심스레 설명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많은 감정을 느낀 시간이었어요. 초기에는 제 잘못을 돌아보며 자책하고 좌절했어요. 저로 인해 벌어진 모든 일을 스스로 감당하는 게 당연하지만 때때로 끝없이 추락하는 기분이었죠. 생계를 위해 반찬 가게와 언니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냈어요.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그동안 못 들었던 음악을 듣고, 창밖 풍경을 보면서 세상과 제 인생에 대해 진득하게 고민하기도 했어요.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에 웃는 사람들을 보면서 거창한 행복을 좇아 살았던 지난날을 돌이켜봤고요.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사는 이들의 삶에 존경심이 생겼어요. 그런 의미에서 지난 4년은 배움의 시간이었어요.
복귀를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힘든 시기에 아무런 목적 없이 저를 도와준 사람들이 있어요. 종종 안부를 묻는 지인들, 일면식이 없는데도 SNS로 응원 메시지를 보내준 분들이 있었죠. 제 존재를 부정할 정도로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였는데 그들 덕분에 다시금 일어설 수 있었어요. 복귀라는 단어는 거창한 거 같아요.(웃음) 근래에는 도박 캠페인의 홍보 대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도박 중독의 심각성을 알리고 도박으로 인해 삶이 피폐해진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상담 코칭 교육을 받고 있죠.
대중 앞에 서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을 거 같아요.
오히려 숨길 게 없어서 마음이 편했어요. 제가 도박으로 물의를 빚었다는 사실을 세상이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잘못을 감추지 않고, 도박과 관련해 작게나마 보탬이 되는 자리라면 어디든 나가기로 했어요.
S.E.S. 멤버들은 복귀에 대해 어떤 조언을 했나요?
사죄하는 마음을 잃지 말라고 했어요. 멤버들에게는 늘 미안함이 있어요. 저로 인해 그동안 쌓아온 그룹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으니까요. 저를 원망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멤버들은 항상 제 걱정부터 했어요. 제가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힘이 되는 이야기를 많이 해줬죠.
최근 진행했던 인터넷 방송 이후 한차례 논란에 휩싸였어요(슈는 지난 4월 25일 인터넷 방송 플랫폼 <플렉스티비>에서 BJ로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다. 당시 그는 노출 의상과 함께 후원금을 받고 춤을 추는 모습으로 인해 진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방송 초반에는 진지하게 사과의 말씀을 전했어요. 제 잘못에 대해 언급하면서 용서를 구한다고 말씀드렸죠. 방송을 이어가다 보니 점점 많은 팬과 시청자가 접속했고 안부를 주고받으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었어요. 총 3시간 동안 방송을 했는데 무겁고 진지하게만 진행할 수 없어 다시 듣고 싶은 노래와 보고 싶은 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죠. 그리고 팬들이 오랜만에 보고 싶어 하는 군무를 췄고요. 방송 전체를 보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후원금에 대한 보답으로 춤을 춘 게 아니라는 것을요.
이번 논란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가벼운 마음으로 방송을 진행하지 않았아요. 항상 속죄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시간이 지나도 제 잘못은 덮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백 번, 천 번을 돌이켜봐도 제가 저지른 잘못은 정당화할 수 없는 일이에요.
행사 스케줄차 미국에 방문했는데, 일정을 마치고 바람을 쐴 겸 라스베이거스에 갔어요.
그곳에서 알게 된 사람이 도박으로 한 시간에 수억을 벌었다고 했어요. 순간 혹하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도박에 중독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돈을 벌어들였던 순간의 쾌감만 기억한다는 거예요.
저도 같은 이유로 도박에 빠졌던 거 같아요.
멤버들과도 연락을 끊고 지냈던 시간
1997년 1세대 걸 그룹 S.E.S.로 데뷔한 슈는 동시대 그룹 가운데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바다, 유진, 슈로 구성된 S.E.S.는 데뷔 타이틀곡 ‘I’m Your Girl’부터 ‘Dreams Come True’, ‘꿈을 모아서’, ‘달리기’ 등 메가히트곡을 다수 보유했다. 또 걸 그룹 최초로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콘서트 티켓을 매진시키는 기록을 세우며 아이돌 그룹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후배 그룹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각자의 활동을 이어가던 때 슈는 2010년 농구 선수 임효성과 결혼, 그해 첫째 아들 임유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2013년 일란성쌍둥이 딸 임라희와 임라율을 출산했다. 한 남자의 아내, 세 아이의 엄마로 인생의 2막을 연 그는 평범한 일상을 공개하며 대중과 소통했다. 그러나 2018년 한 매체 보도를 통해 수억원대 사기 및 불법 도박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슈가 도박 자금 명목으로 지인 2명에게 각각 3억 5,000만원과 2억 5,000만원을 빌리고 갚지 않았다는 것. 도박 사건에 이어 2020년 슈가 소유하고 있는 건물의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또 한 번 논란에 휩싸였다.
4년 전 이야기를 꺼내볼까 해요. 모든 게 밝혀졌을 때 심경이 어땠나요?
제가 저지른 일을 감당해야 할 때가 온 거라고 생각했어요. 밝혀진 이야기 가운데 해명하고 싶은 부분이 있었지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어요. 눈덩이처럼 불어난 채무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었어요.
당시 익명으로 보도된 기사로 인해 그룹 멤버인 유진이 사건의 당사자로 지목되기도 했죠.
그래서 바로 저라는 사실을 밝혔어요. 이 일과 무관한 유진이의 이름이 거론되는 건 말이 안 되니까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유진이에게 미안해요.
도박을 시작하게 된 경위가 궁금해요.
처음은 마카오에서였어요. 여행객들이 경험 삼아 해보는 수준으로 도박장에 다녀왔어요. 이후 행사 스케줄차 미국에 방문했는데, 일정을 마치고 바람을 쐴 겸 라스베이거스에 갔어요. 그곳에서 알게 된 사람이 도박으로 한 시간에 수억을 벌었다고 했어요. 순간 혹하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 뒤로 본격적으로 도박장에 다니게 됐어요.
도박에 중독되면 좀처럼 헤어 나오기 힘들다고 하죠.
삽시간에 사리분별이 안 되는 상황에 이르렀어요. 거액의 돈을 잃었는데 도박으로 만회할 생각을 하게 됐죠. 밤낮으로 방송 스케줄이 가득 찼던 시기였는데도 틈만 나면 도박장에 갔어요. 급기야 하루에 이자 10%를 지급해야 하는 돈을 빌리기도 했죠. 갚아야 할 돈이 생기다 보니 일상을 보내는 중에도 돈을 메워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어요. 도박에 중독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돈을 벌어들였던 순간의 쾌감만 기억한다는 거예요. 저도 같은 이유로 도박에 빠졌던 거 같아요.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도박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보면서 굉장한 공포심을 느꼈어요. 어떻게 해도 내가 지는 게임이라는 걸 깨달았죠.
세간에 사건이 알려진 후 심적으로 변화가 있었나요?
1년 반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어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는 것도 전부 두려웠어요. 그래서 사건과 관련해 외출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집에서만 지냈어요. 은둔 생활이 이어지다 보니 우울함과 무기력감이 점점 커지더군요. 현실적으로 생활비가 떨어지면서 정신을 차리게 됐어요. 저에겐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으니까요.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S.E.S. 멤버들과도 연락하지 않았나요?
수차례 전화가 왔었는데 일부러 받지 않았어요. 멤버들을 볼 면목이 없어 연락해달라는 내용의 문자에도 답장할 수 없었죠. 채무 관계를 비롯해 제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간 뒤에야 다시 연락할 수 있었어요. 그때 바다 언니가 이제부터는 본인 곁에 있으라면서 극진히 챙겨줬어요. 유진이도 저를 보호해줬고요. 지금은 자주 연락하고 만나면서 지내고 있어요. 저에게 있어 멤버들은 가족이나 다름없어요.
현재 채무 변제 상황은 어떤가요?
전부 해결했어요. 소유한 재산을 정리해 세입자들에게 전세금을 돌려줬고, 그 외 채무 관계에 있던 분들과 모든 금전적인 문제를 해결한 상태예요(지난 2019년 슈는 도박 등 혐의와 관련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도박은, 뭘까요?
죽음과 연결돼 있는 길이에요. 도박 중독은 무기력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특히 무서운 질병 같아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거짓된 희망을 안겨주죠. 그래서 억대의 돈을 잃어도 다시 벌어들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해요. 악의 고리를 끊지 못하면 현실 세계에서의 비참함을 견디지 못하고 도박에 더 몰두하게 돼요. 결국 도박에 중독된 사람에게 남는 건 갚아야 할 돈밖에 없다는 사실을 하루빨리 깨닫는 게 중요해요.
“이혼? 우리 부부는 잘 살고 있어요”
당시 남편과는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궁금해요.
평소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더군다나 제가 저지른 일만큼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남편에게는 제게 닥친 상황에 대해 털어놨어요. 고맙게도 남편이 먼저 이 일과 관련해 제가 나서야 하는 자리에 함께해줬어요. 지난 4년 동안 두 차례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 쓰러진 저를 업고 응급실에 데려간 사람이 남편이었어요. 중환자실에서 눈을 떴는데 남편이 곁을 지키고 있더라고요. 그때 흐트러지지 않기로 다짐했어요. 살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중환자실에 누워 남편에게 “커피와 빵이 먹고 싶다”고 말했어요. 살겠다는 의지를 담아 내뱉은 말이에요. 남편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요.
항간에는 두 사람의 이혼설이 돌기도 했어요.
어떤 이유에서 우리 부부가 이혼했다고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웃음) 저와 남편은 잘 살고 있어요. 우리 부부는 친구 같은 관계예요. 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커서 잘 싸우지 않고 각자가 지닌 결핍을 채워주는 사이죠.
아이들과는 어떻게 지냈나요?
엄마의 감정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반영될까 봐 걱정이 컸어요. 당시 제가 받았던 스트레스가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 악영향을 미칠 거 같았거든요. 그래서 아이들 앞에서만큼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각종 논란을 겪으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을 꼽으면요?
주변을 돌아보게 됐어요. 앞만 보고 살아오느라 놓쳤던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을 기억하기 위해 메모하는 습관도 들였어요. 뒤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리는 나이가 돼버려 기록이 필요해요.(웃음) 반대로 그동안 쌓아왔던 이미지를 잃었어요. 저만 무너지는 것이었다면 나았을 텐데… 가족과 멤버들의 이미지도 함께 손상됐죠. 저를 믿고 응원해주신 분들에게 실망감을 안겨드린 것도 평생 속죄해야 할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슈의 입장에선 가혹한 시간이었을 거 같아요.
깨달음의 시간이었어요. 스스로를 돌보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단 사실을 알게 됐고요.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저 자신을 예뻐해준 적이 없었어요. 더군다나 도박으로 삶이 피폐해졌을 때는 스스로를 굉장히 미워했죠. 그런데 많은 사람이 제 인생에서 떠나가는 것을 보면서 저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겠단 생각을 하게 됐어요. 다시 잘 살아보기로 다짐한 뒤에는 스스로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많이 해주고 있어요.
데뷔 26년 차입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어떤가요?
평범한 삶은 아니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대중 앞에서 마음껏 표현하면서 많은 분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어요. 그리고 저의 잘못으로 인해 모든 걸 잃기도 했고요. 어느덧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네요.(웃음)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제게 주어졌던 모든 기회에 감사해요.
끝으로 대중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실망시켜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저를 응원해주신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어요. 앞으로 기회가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받았던 것들을 보답하는 마음으로 살 거예요. 제 선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해낼 겁니다. 사회봉사명령을 받았을 때 요양원에 봉사 활동을 다니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 시간을 계기로 꾸준히 봉사 활동을 하게 됐고요. 앞으로도 작게나마 쓰임이 될 수 있는 자리라면 적극적으로 나가려고 해요.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슈는 과거의 영예를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겠다고 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슈는 출발점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