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조금씩 공개 행보 나설 가능성도 있다.” 말도 많고, 논란도 많았던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를 향해 나오는 평이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언론에 모습을 일절 드러내지 않았던 김 여사. 그런 김건희 여사가 지난 5월 10일 열린 대통령 취임식을 기점으로 조금씩 공개 행보에 나서기 시작했다. 첫 직장인 퍼스트레이디이기도 한 김 여사가 남편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취임식날이 처음이었다.
취임식 때 착용한 의상도 화제였다. 대통령 배우자 의전을 담당하는 청와대 제2부속실은 50년 만에 폐지된 상황. 청와대 규모를 축소하고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과도한 의전을 없애는 취지에서다. 대신 김건희 여사는 이날 직접 중저가 맞춤옷을 전문으로 하는 국내 디자이너에게 의뢰해 제작한 옷을 입었다고 한다. 옷 색상과 디자인은 김 여사가 직접 정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번 대통령 취임식의 최대 화제 중 하나가 김건희 여사의 의상이었을 정도로 눈길을 끌었다는 평이다.
올 블랙 ▶ 올 화이트 의상 눈길
취임식 때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끈 것은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의 의상으로 구두까지 모두 흰색인 올 화이트 차림이었다.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김 여사는 순백의 원피스를 입고 윤 대통령의 뒤를 따라 걸었다.
허리에 리본으로 포인트를 준 무릎 아래로 떨어지는 A라인 코트형 흰색 원피스와 백색 구두는 화려하지 않지만 대통령 부인다운 품격이 느껴졌다. 이에 대해 김 여사 측은 “흰색은 어떤 색과도 조화를 이루면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처음으로 국민들께 겸손하게, 예의를 갖추고 인사를 드리는 자리라서 흰색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또 “비싼 옷이라는 느낌보다는 국민께 처음 인사드리는 자리에서 정갈하고 정돈된 느낌을 보여드리기 위한 차림”이라고 설명했다.
취임식이 전국에 생방송되는 가운데 김 여사의 의상을 두고, 한때 온라인상에서는 “명품 브랜드 디올의 640만원 상당의 제품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지만, 김 여사 측은 “김 여사의 사비로 구입한 중저가 맞춤옷 디자이너의 의상”이라고 곧바로 해명했다. 김 여사 측은 여러 언론의 질의에 “5월 10일 착용한 옷은 모두 영세상인으로부터 자비로 구입해 입은 옷”이라며 “김 여사가 소상공인에게 구입했다고만 설명했다”며 가격은 밝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김 여사는 원래 옷을 잘 사지 않는데 앞으로는 공식 석상에서 입는 의상들은 소상공인 상품 구매 장려 및 응원을 위해 계속 자비로 구해보려 한다”고 덧붙였다.
취임식에 앞서 이뤄진 현충원 참배 때는 정반대로 올블랙 의상을 착장했다. 오전 9시 50분 무렵, 검정 스커트 정장 차림으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자택을 나섰는데 이때는 3cm가량 낮은 굽의 검정 힐을 신었다.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의 참배 취지에 맞게 ‘진중함’을 주기에 충분한 의상이었다.
이날 김 여사의 의상을 놓고 “세련됐다”는 평이 나왔다. 서울에 거주하는 주부 양 아무개 씨(35세)는 “자신의 외모나 피부 톤을 잘 살릴 수 있는 색과 디자인을 고른 것도 그렇지만, 취임식이라는 행사 취지에 맞게 튀지 않는 색을 잘 선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취임식보다 오히려 김 여사의 의상이 더 화제가 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콘셉트는 ‘검소함’
조금씩 공개 행보를 시작한 김 여사의 의상 특징은 ‘검소함’이다. 지난 5월 3일 김 여사가 당시 윤 대통령 당선인을 대신해 충북 단양 구인사를 방문했을 때도 착용한 의상이 저렴하다는 점이 화제가 된 바 있다. 당시 입은 치마가 인터넷에서 불과 5만 4,000원밖에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
그보다 앞서 경찰견과 함께 자택 앞에서 산책 중 찍은 사진을 통해 공개된 아이보리색 슬리퍼는 3만원대의 상품인 것이 알려지면서 한때 주문량 급증으로 품절되기도 했다.
세련된 김 여사의 의상들이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화제이기도 하다. 대통령 부인의 패션 아이템이 너무 사치스럽거나 너무 저렴하다는 인식을 주면 국민들로부터 부정적인 여론을 이끌어내 남편인 대통령의 정치 행보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대통령 선거 때부터 여러 논란이 있었던 터라, 공개 행보를 자제했던 김 여사는 여전히 “낮은 자세로 조용히 윤 대통령을 내조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김 여사는 액세서리 착용은 최소화하고, 옷 역시 검소한 가격대의 상품을 주로 착용하면서, 논란이 일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와 차별화를 두는 모습이다. 이에 대해 윤석열 정부 측 관계자는 “김정숙 여사 논란을 보면서 김건희 여사의 검소함이 인간적인 모습을 전달할 수 있다는 내부 평이 있었다”며 “공개적인 행사를 최소화하겠지만, 노출돼야 하는 장소가 있다면 평소 김 여사가 가진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주려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취임식 다음 날인 5월 11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출근길을 1층까지 따라 나와 배웅하기도 했다. 김 여사는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자택 앞에서 반려견들과 함께 윤 대통령을 배웅했다. 윤 대통령이 차량에 탑승해 용산 집무실로 떠나자 김 여사는 반려견들과 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대통령의 배우자인 만큼 공개 행보 참석은 불가피하다. 실제로 김 여사는 대통령 취임식 전에도 비공개 활동을 이어왔으며, 특히 동물보호와 환경문제에 목소리를 내왔다. 지난 4월 28일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았고, 4월 30일에는 유기견 행사에 참여했다. 다만 당장 공개 활동을 진행하기보다는 조금씩 행보를 넓히는 식으로 여론을 고려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 여사는 대선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국정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배우자의 최우선 역할”이라며 “영부인이라는 호칭보다 대통령 배우자라는 표현이 좋다”고 말했다. 논란이 될 것을 우려해 자신이 대표를 맡고 있는 전시·기획사 코바나컨텐츠는 폐업하거나 휴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부정적인 여론은 여전히 김 여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공개 행보에 부정적인 여론이 과반을 넘는 점도 지나치기 어렵다. 여론조사 기관 미디어토마토가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5월 3~4일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 남녀 1,015명에게 ‘김건희 여사의 향후 행보는 어떠해야 한다고 보는가’라고 질문한 결과 응답자 중 66.4%가 “조용히 내조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답했다. “기존 영부인처럼 적극적인 역할에 나서야 한다”는 응답은 24.2%에 그쳤다. 윤 대통령 측도 이를 우려하는 분위기다. 박주선 대통령취임준비위원장 역시 지난 5월 9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저희도 조용한 내조를 하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윤 대통령도 그런 말씀을 늘 하셨다”며 김 여사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구속시킨 윤석열, 에스코트한 김건희
5월 10일 열린 취임식에서 눈길을 끈 사람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다. 국정 농단으로 탄핵된 뒤 2017년 3월 31일 구속 수감됐던 박 전 대통령은 이날 5년여 만에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보라색 재킷과 회색 바지 차림으로 등장한 박 전 대통령은 취임식이 진행되는 동안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자리를 지켰다. 박 전 대통령은 윤 대통령이 취임사를 마무리하자 박수를 보냈다.
흥미로운 장면도 있었다. 윤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박 전 대통령과 함께 단상에서 내려오면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포착된 것. 화기애애한 모습이었는데 행사가 끝난 후 박 전 대통령이 차량에 오르자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나란히 서서 다시 인사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윤 대통령과 김 여사의 환송을 받으며 취임식장을 떠났다.
취임식답게 전직 대통령과 새로 취임한 대통령 간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사실 윤석열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은 악연이 깊다. 윤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집권 시절인 2013년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 특별수사를 맡은 검사였는데, 당시 윗선의 수사 외압이 있었다고 주장한 뒤 박근혜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소위 ‘찍힌 검사’가 돼 좌천을 피할 수 없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던 윤 대통령은 2016년 국정 농단 사건에선 특검 수사팀장을 맡아 박 전 대통령을 구속 기소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을 한 달여 앞둔 지난 4월 12일 대구 달성군 박 전 대통령의 사저를 찾아가 “인간적인 안타까움과 마음속 미안함을 말씀드렸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날 김 여사가 박 전 대통령을 에스코트하는 모습을 놓고 정치권에서 과거 윤 대통령 부부와 박 전 대통령의 인연이 다시 입방아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후문이다.
노소영과 최태원이 한자리에…
취임식 참석자를 살펴보니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등 4만 1,000명이 초청됐는데, 단상에 자리 잡은 1,000명의 귀빈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전직 대통령 가족들, 기업이나 경제단체장들이 대거 참석하면서 이혼소송 중인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고 노태우 전 대통령 장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취임식에 각각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1,000명의 귀빈이 자리 잡은 단상 가장 중앙 안쪽에 윤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 문재인 전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나란히 앉았다. 윤 대통령의 뒤쪽으로는 대법원장, 국회의장 등 5부 요인과 정당 대표 등 주요 인사들이 자리했고, 그 옆으로 전직 대통령 및 유족들의 자리가 마련됐다.
전직 대통령 중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석했고, 수감 중인 이명박 전 대통령을 대신해 김윤옥 여사가 참석했다. 고 노태우 전 대통령 측은 장녀 노소영 관장이, 고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은 부인 이순자 여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철 김영삼민주센터 상임이사도 참석했다.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있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는 건강상 장거리 이동이 어렵다는 이유로 불참했다.
경제계 주요 인사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가 모두 참석했다. 또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 구자열 한국무역협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최진식 중견기업연합회장 등 경제단체장도 참석했다. 이 중에서 최태원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는 상황. 이번 대통령 취임식에 4대 그룹 총수와 경제 6단체장이 모두 참석한 셈이다.
해외 귀빈들도 취임식에 방문했다. 왕치산 중국 부주석,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전 총리를 비롯해 할리마 야콥 싱가포르 대통령, 포스탱 아르샹주 투아데라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메가와티 수카르노 푸트리 인도네시아 전 대통령 등이 참석했다. 미국 측 귀빈으로는 엠호프 해리스 부통령의 부군을 비롯해 마틴 월시 노동부 장관, 아미 베라 하원의원, 메릴린 스트릭랜드 하원의원, 토드 킴 법무부 차관보, 린다 심 대통령 인사담당 특별보좌관이 방한했다. 최근 화제가 된 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의 원작 소설 작가 이민진 씨도 이날 취임식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예인으로는 배우 김부선, 가수 태진아,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에 출연한 배우 오영수 등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 특히 김부선과 태진아는 강렬한 패션으로 시선을 집중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