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업식·결혼식에 보내는 화환, 승진 축하 선물로 보내는 난 등 특별한 날에 조금은 뻔하고 전형적인 선물로 사용되던 식물. 서서히 우리 일상에 스며들기 시작하더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는 ‘식물 집사’, ‘반려 식물’이라는 말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불멍’, ‘물멍’에 이어 더디지만 매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식물을 한참 바라보는 ‘식(물)멍’도 트렌드가 됐다. 덕분에 카페나 전시장, 대형 쇼핑몰까지 플랜테리어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남는 돈으로 화분을 몇 개 들여놓는 것이 아닌 대놓고 식물원 콘셉트를 내세운 공간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정도다.
잘 키운 이파리
2021년 갑자기 등장한 신조어 ‘식테크(植Tech)’. “잘 키운 이파리, 열 주식 안 부럽다”는 말까지 나온 식테크 열풍의 이유를 알아봤다.
식물, 재테크와 만나다
‘식테크’는 식물과 재테크의 합성어로, 반려 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식물 중고 거래가 활발해짐과 동시에 생겨난 말이다. 처음부터 재테크라는 말이 붙을 만큼 식물 거래가 고가로만 이뤄진 것은 아니다. 5,000원 미만으로 소소하게 식물을 팔거나 무료 나눔을 하던 것에서 이제는 1,000만원을 웃도는 식물 거래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가격은 식물 종류와 부위에 따라 책정된다. 대부분 잎 한 장에서 시작하고, 잎 한 장을 사서 물에 꽂아 뿌리를 내린 후 새잎을 틔우면 다시 되파는 형식이다. 희소성 있는 제품을 구해 웃돈을 받고 되파는 ‘리셀테크(리셀+재테크)’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식물까지 리셀테크 품목이 됐다. ‘중고나라’에 따르면 식물 거래 건수가 최근 2년 사이 꾸준히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주요 실내 식물 3종(필로덴드론·알보몬·제라늄)의 상품 등록 현황을 보면 2020년 1월 1,911건이던 등록 건수가 2021년 3월에는 2,622건으로 2배 가까이 늘었고, 2021년 9월에는 3,866건을 기록했다. 재테크용으로 주목받는 식물은 보통 키우기 어렵거나 희귀한 품종이다. 그중 ‘알보몬’이라 불리는 몬스테라 보르시지아나 알보 바리에가타(몬스테라 알보)는 식테크 마켓 입문 단계에서 만나는 식물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몬스테라는 1만원 수준이지만 잎에 흰색이 섞인 몬스테라 알보와 노란색이 섞인 옐로 몬스테라 같은 무늬종은 잎 한 장에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에 달한다. 특히 ‘알보’라는 단어가 붙는 희귀 식물은 일반 녹색 식물보다 성장이 더뎌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다육이 역시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흰색, 금색이 섞인 경우에는 2,000만원 이상으로 가격이 책정된다.
식물, 수단이 아닌 환경의 일부
몬스테라 알보 외에도 필로덴드론, 안스리움 크리스털리넘, 무늬 아단소니 등도 식테크 마켓에서 인기가 많다. 식물이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는 원인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기 때문이다. 식테크 열풍이 불면서 희귀 식물을 찾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일부 수입 식물 계열에 수입제한 조치가 내려지면서 시장 공급이 제한됐다. 2021년 3월 일부 몬스테라, 필로덴드론, 안스리움 수입 식물 계열에 바나나뿌리썩이선충이 검출돼 수입제한 조치가 내려진 것이다. 기존 식물을 배양해 개체 수를 늘리는 시도를 했지만 전문 기술과 멸균 설비 설치 등 진입 장벽은 높고, 성공 확률은 높지 않아 무모한 도전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특히 몬스테라종은 수입제한으로 인해 대부분 개인 거래를 이용한다. 중고 거래 앱 ‘당근마켓’에 검색하면 꽤 많은 글을 볼 수 있을 정도. 하지만 종이 같거나 모양이 똑같다고 실제 영양 상태까지 똑같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잘 관리된 식물인지, 사진 찍을 때만 반짝 관리한 식물인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식물은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고, 언제 커팅했는지 등 배경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믿을 수 있는 셀러나 전문가에게 구입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렴한 식물종을 희귀 품종처럼 속여 판매하거나 약품 처리를 통해 인위적으로 변색한 잎을 파는 경우도 속속 생기고 있다. 판매 가치가 있고, 이른바 돈이 된다는 이유로 멀쩡한 식물에 약품 처리를 가해 판매하는 것은 사기는 물론 생명 존중 사상에도 위배되는 행동이다. 식테크 이전의 난테크 열풍에는 동양란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동양란 중에서도 풍란이 유명했는데 수형, 무늬, 색감에 따라 몇천만원까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잎사귀 하나에 100만원이 넘는 금액으로 거래된 적도 있다. 하지만 풍란은 대량생산이 가능해지자 가격이 폭락했고, 뒤늦게 시작한 사람은 대부분 테슬라 주식의 막차에 탄 사람처럼 큰 손해를 봤다. 식물을 순수한 마음으로 대하지 않고,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한다면 결국 좋은 결말을 맞이하기는 어렵다는 결말을 시사한다.
오늘부터 식물을 키웁니다,
김현경 @alphapurple
식물 일기를 기록한 <오늘부터 식물을 키웁니다>의 저자이자 식물과 스페인, 요리를 사랑하는 식물 집사. 일상에 완전히 녹아든 식물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처음 식물을 들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허전했던 집 안에 활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연스럽게 식물에 관심이 생겼는데, 그때 마침 친구가 꽃집을 오픈했고, 축하할 겸 친구에게 식물을 구입했는데 그때부터 식물 집사가 됐습니다.
가장 처음 들인 식물은 무엇인가요?
극락조화입니다. 선물받은 다육식물을 말려 죽인 적도 있을 정도로 식물을 제대로 키워본 적이 없었어요. 친구에게 이런 제 상황을 설명하고 실내에서 무난하게 잘 자라는 식물을 추천받았는데 그 식물이 극락조화였어요. 추천을 받기 전 저도 검색하면서 본 적이 있어 익숙했고, 무엇보다 잎 모양이 예뻐서 마음에 들었던 식물이라 친구의 추천을 바로 받아들였죠.
식물을 키우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나요?
‘호야 케리’라는 다육식물이 죽은 적이 있어요. 여름에 거실의 에어컨 바람을 피해 방 안에 두었는데 환기가 잘되지 않았고, 그해 여름은 유난히 푹푹 쪘던 탓에 환경을 버티지 못하고 죽었죠. 돌이켜보니 날씨도 문제였지만 다육식물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만 듣고 제대로 보살피지 않은 제 잘못이 크더라고요. 호야 케리를 계기로 식물은 혼자 알아서 클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이후로 크기, 종류와 상관없이 늘 반려 식물에게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유난히 애정이 가는 식물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처음 들인 극락조화에 특별한 애정이 가요. 극락조화에서 새잎이 나오는 걸 도와주겠다고 손으로 펴다가 잎이 찢어진 적도 있어요. 새잎은 처음에 빡빡하게 말려 있고, 점점 풀리면서 모양이 완성돼요. 풀리는 속도가 느린 것 같아 제가 살짝 손을 댔는데 ‘쭉’ 하고 찢어졌죠. 식물의 성장에 불청객이 된 기분이 들었어요. 식물도 자신만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걸 배웠죠. 제가 정한 기준이 아니라 식물 스스로가 정한 속도를 존중하게 됐고, 그 이후로는 느긋하게 기다리면서 응원하고 있습니다. 지금 극락조화는 쑥쑥 커서 180cm가 넘었어요.
식물과 함께 한 이후 삶에서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일상에 식물이 자리 잡았다는 점입니다. 이전에는 식물을 소품 정도로 여겼고, 식물을 키우는 건 전문가나 특별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관심이 거의 없었죠. 극락조화를 만나면서 지금껏 전혀 몰랐던 식물의 모습을 알게 됐어요. 새잎이 약 한 달에 걸쳐 나오는 것도 식물을 키우지 않았다면 몰랐겠죠.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게 재미있었고, 새잎을 틔우기 위해 긴 시간 애쓰는 모습도 놀라웠고요. 화분에 물을 주면 ‘쪼르륵’ 하면서 흙에 흡수되는 소리도 귀여워요. 바람에 일렁이는 잎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가라앉으면서 마음이 여유로워지고요. 집에서 저를 기다리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도 든든해요. 처음 식물을 들였을 때는 일방적으로 제가 돌봐야 하는 존재로 생각했는데, 시간이 꽤 흐른 지금은 함께 살고, 서로를 돌보는 사이가 됐어요.
<오늘부터 식물을 키웁니다>라는 책을 출간했는데요, 어떤 계기였나요?
꽃집을 운영하는 친구가 진행하는 플라워 클래스에 참여했고, 그 과정과 느낀 점을 콘텐츠 플랫폼 ‘브런치’에 ‘꽃을 다듬고 식물을 기릅니다’라는 제목으로 연재했습니다. 식물을 키우고 좌충우돌하면서 사고를 친 내용 등을 올렸죠. 그 글을 출판사에서 보고 출간 제안이 왔어요. 반려 식물 덕분에 오랜 꿈을 이룰 수 있게 됐죠. 이 책을 계기로 지금은 식물을 주제로 한 두 번째 책 출간을 준비하고 있어요.
식물 집사가 된 후 생긴 일상 속 루틴이 있나요?
아침에 커피를 한잔하면서 화분을 살피는 습관이 생겼어요. 식물에게 “잘 잤니?”라며 인사를 건네는 저만의 방법이죠. 하루 일과를 마친 시간에는 식물을 살피며 건강 상태를 확인하거나 마른 잎을 손질합니다.
요즘은 ‘반려 식물’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식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늘었습니다. 초보 식물 집사에게 한마디 조언 부탁드립니다.
식물은 꾸준한 관심으로 자란다는 것. 무던해 보이는 다육식물도 매일 지켜보지 않고 관심을 주지 않으면 어느새 메말라 있을 수 있어요. 관심을 한꺼번에 쏟아붓기보다는 매일 조금씩 꾸준히 살펴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것 같아요. 식물과 함께하면서 긍정적인 영향력을 서로 주고받으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식집사 이니’
표슬인 @iinii_at.home
인스타그램에 식물이 자라는 과정을 기록하는 식물 집사. 식물을 가꾸고 살피느라 지루할 틈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처음 식물을 들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스스로의 의지로 식물을 들이게 된 건 자취를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집을 꾸미면서 허전한 공간에 초록이 더해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식물에 관심을 가지게 됐죠.
가장 처음 들인 식물은 무엇인가요?
알로카시아와 테이블야자, 홍콩야자를 처음 구입했어요. 너무 귀여워 퇴근하고 한참을 흐뭇하게 바라봤던 기억이 나요. 애정하면서도 애증하기도 하는 식물은 알로카시아입니다. 언젠가 천장에 닿을 듯 키가 큰 대형 알로카시아를 보고 반했는데, 정말 키우기 어려운 식물인 것 같아요.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거든요.
식물을 키우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있나요?
지금까지 식물을 키우면서 깨달은 점은 ‘너무 많은 관심을 주지 말 것’입니다. 처음에 식물을 키우면서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로 예쁘면 구매를 했고, 물만 주면 잘 자라는 줄 알고 지나가다가 눈만 마주치면 물을 줬어요. 정말 초보다운 행동이었죠. 과습으로 시름시름 앓는 식물을 보면서도 ‘물이 부족한가?’ 싶어 또 줬어요. 너무 과한 관심은 과습의 길이라는 걸 알게 됐죠. 초보 식물 집사들은 저와 비슷한 실수를 많이 할 것 같아요. 물을 제때 주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답니다.
식물과 함께한 이후 내 삶에서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심적인 안정을 찾았어요. 식물을 키우기 전 저는 매일 똑같은 일상에 드문드문 우울감을 느끼곤 했어요. 지금은 식물을 가꾸고 살피느라 지루할 틈이 없죠. 계절이 변하면서 식물이 어떻게 달라질지 기대하는 재미가 커요. 그렇게 식물과 시간을 보내다 보면 1년이 바쁘게 흘러가요.
SNS에서 식물 집사로서 일상을 공유하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처음에는 식물이 자라는 과정을 한눈에 보고 싶어 기록용으로 시작했어요. 지인들에게 식물을 보여주고 싶은데, 앨범에서 하나하나 찾는 것도 번거로웠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게 됐는데, 지금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식물 집사를 많이 알게 돼 더 즐거워요. 정보도 공유하고, 서로의 식물도 구경할 수 있죠.
식물 집사가 된 후 생긴 일상 속 루틴이 있나요?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커튼을 걷어요. 저희 집은 남동향이라 이른 아침에 햇살이 잘 들어오거든요. 그다음 물이 필요한 식물들에게 물을 주고, 벌레가 있나 살펴본 후 얼마나 자랐는지 보면서 ‘식멍’을 해요. 자연스럽게 식물이 많은 공간에 가는 것도 좋아하게 됐어요. 남편과 함께 주로 가는데, 제가 엄청 귀찮게 하면서 퀴즈를 내요. 이 식물이 우리 집에 있는지, 이름은 무엇인지 등이요. 1년 넘게 이런 생활을 반복했더니 최근엔 남편이 블랙 금전수와 토분을 직접 골라 구입하는 경지에 이르렀죠.
요즘은 ‘반려 식물’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식물에 관심 있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초보 식물 집사에게 한마디 조언 부탁드립니다.
우선 식물 집사의 길을 걷게 된 분들, 반갑고 환영합니다. 저는 식물을 키우면서 일상 속에서 많은 변화를 느꼈어요. 여러분에게도 식물이 힐링이 됐으면 합니다.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나의 시간과 관심, 정성, 노력을 나 외에 주변으로 나누는 일 같아요. 식물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도 내가 기른 식물을 선물하면서 나의 시간을 선물하게 되니까요. 행복한 식물 생활 하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