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벚꽃, 유채꽃, 매화꽃 등 각종 꽃놀이로 온 세상이 들썩인다. 휘날리는 벚꽃 잎에 설레고, 봄을 고대하는 이들이 많지만 사실 나는 봄을 썩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렇다 보니 꽃에 별로 관심이 없고, 꽃구경 명소를 찾아다니는 취향은 더더욱 없던 터라 그저 집 앞 아파트 화단이나 학교 캠퍼스, 근처 공원이나 하천을 거닐며 반강제적(?)으로 벚꽃을 감상한 게 전부다. 딱히 명소를 찾아가지 않아도 우리나라는 ‘벚꽃 공화국’이라고 해도 될 만큼 구석구석에 벚꽃나무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만개한 벚꽃을 보면서도 예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설렌다거나 감동을 받진 못했다. 그러다 보니 오직 꽃놀이를 목적으로 여행을 갔던 역사가 없다가 지난해 벚꽃 명소 중 한 곳인 하동십리벚꽃길을 방문했다. 이마저도 구례 근처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마침 벚꽃 시즌인데 딱히 할 것도 없던 터라 드라이브 겸 가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벚꽃 명소라지만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전혀 기대감이 없었다.
차로 달리다 보니 벚꽃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가도 가도 끝없이 핑크빛 벚꽃 행렬이 이어졌다. 거기다 오랜 세월이 지난 만큼 나무의 크기 또한 압도적이었다. 길 양옆으로 늘어선 벚꽃나무의 가지가 하늘을 가릴 정도로 뻗어 나와 마치 벚꽃 터널을 방불케 했다. 동화나 만화에서만 보던 꽃 나라에 온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심지어 그날은 하늘이 잿빛으로 물들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최악의 날씨였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북적이는 자동차와 사람들 속에서 잠깐 포토존에 내려 벚꽃과 함께 사진도 찍었다. 아무 데나 서서 카메라만 갖다 대도 벚꽃에 둘러싸인 인생 샷을 건질 수 있었다. 하동에서 구례까지 지역 경계를 넘나드는 장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곳인 데다 꽃구경을 온 많은 인파로 붐벼 결국 십 리를 모두 정복하지 못하고 길을 되돌아왔지만 이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하동십리벚꽃길은 웅장한 스케일과 아름다운 풍경 덕에 어느 누가 방문해도 만족할 만한 곳이지만, 아마 같이 간 사람과의 추억이 더해져 감동이 배가됐던 것 같다. 거기다 꽃구경이 목적이었던 여행은 처음이라 더욱 소중한 추억으로 남은 장소다. 올해도 그때 같이 갔던 친구가 벌써부터 또 다른 벚꽃 명소를 고르며 꽃놀이 계획을 세우는 중인데, 나도 슬그머니 꽃구경에 대한 기대감이 몽실몽실 피어오르고 있다. 함께 휘날리는 벚꽃 잎을 맞으며 또 다른 추억을 쌓을 그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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