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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하는 문학

치유하는 과정을 언어로 쓰는 작가, 요시모토의 문학 세계.

On March 2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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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의 본명은 요시모토 마호코다. ‘바나나’라는 독특한 필명을 지은 이유는 붉은 바나나꽃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별과 국적을 알 수 없는 모호한 이름이라서라고 한다. 밖에서 규정된 한계에 제약받지 않으려는 태도는 가풍일 수도 있겠다. 그의 아버지는 진보적 사상가이자 문학평론가인 요시모토 다카아키이고, 그의 언니 하루노 요이코는 만화가다.

유명한 아버지를 둔 까닭에 후광을 입었다는 오해도 샀지만, 그는 초기작인 소설 <키친>에서부터 벌써 그만의 독특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그러한 집안에서 자라난 경험이 어떠했는지를 묻는 이에게 “가족이 같은 직업군에 종사한다는 것은 다른 직업에 대해 배울 기회가 적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물론 장점도 있다. 그는 “하지만 나는 그 덕분에 내 작품 세계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의 첫 작품은 대학 졸업 작품으로 예술학부 부장상을 탄 ‘달빛 그림자’이겠으나 그의 실질적인 데뷔작은 ‘달빛 그림자’를 포함한 짧은 소설 3부작을 묶어 완성한 <키친>일 것이다. 유일하게 가까운 이가 죽고 난 뒤의 상실감을 낯선 이의 도움으로 치유하고, 또 함께 겪은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카이엔 신인문학상, 이즈미 쿄카상을 받으며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1988년에 출간된 이 책은 전 세계 18개국 이상에서 번역되며 250만 부가 넘는 판매 부수로 그의 인기를 증명하고 있다.


그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치유’다. 이는 그가 지향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글의 방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읽는 사람이 책을 덮으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글을 쓰겠다고 결심했어요. 온천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 같은, 열이 났을 때 약을 먹어서 열이 내리는 것 같은 그런 치유의 과정을 언어로 쓰기로 한 거죠. 그런 작품을 읽은 사람은 잠시 동안 다른 세상에 들어가 무섭고 기분 나쁜 체험을 하더라도 반드시 출구를 찾게 돼요. 마치 유령의 집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내가 처한 현실이 그저 유령의 집 체험 같은 거라고,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은 독자들은 그를 찾았다. 그의 인기는 ‘바나나 현상’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았다.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해외에서의 인기도 만만치 않다. 일본 내에서도 수상 경력이 적지 않지만 <티티새>로 이탈리아의 스칸노상, <암리타>로 이탈리아의 펜디시에 문학상과 마스케라다르젠트상 문학 부문을 수상했고, 2000년에는 <불륜과 남미>로 프랑스의 뒤마고 문학상을 받았다. 상을 준 적은 없지만 우리 또한 바나나의 ‘치유력’ 영향권 아래 있다. 그의 손을 잡고 유령의 집을 탈출한 독자들이 적어도 한 마을은 이룰 테니까.

 

 이달의 신간 

  • <서영동 이야기>

    소설 <82년생 김지영>으로 현대적 반향을 일으킨 조남주 작가의 신작 소설이다. 저자는 오늘날 주요한 화두인 부동산 문제를 통해 하루하루 계층의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현대인의 분투와 욕망을 섬세하게 그려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예리하게 파고든다. 조남주, 한겨레출판, 1만5천원

  • <소녀와 노인 사이에도 사람이 있다>

    작가, 작사가,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 등 여러 영역에 발을 걸친 채 젊지도 늙지도 않은 어중간한 나이 40대를 받아들이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일상을 유쾌하게 그린 에세이. 청춘과 나이 듦 사이에 있는 이들에게 삶을 음미할 힘을 전한다. 제인 수, 라이프앤페이지, 1만6천원

  • <엄마 휴직을 선언합니다>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이라는 통념에 맞서 엄마 휴직을 선언하고 바깥양반이 되기로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엄마 휴직의 계기부터 남편과 역할을 바꾸면서 부부와 아이에게 나타난 변화까지 6개월의 여정을 생생하게 담았다. 권주리, 교양인, 1만4천원

  • <취향 육아>

    ‘사교육 없이 꼬마 과학자를 키운 엄마’, ‘가정식 책육아를 실천한 엄마’란 타이틀의 저자 이연진이 베스트셀러 <내향육아>에 이어 내놓은 에세이. 세상의 육아 속도와 방식이 버거웠던 내향인 엄마로서 자신만의 리듬으로 일상을 꾸리기까지의 경험담을 담았다. 이연진, 웨일북, 1만5천원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김지은
박사(북 칼럼니스트)
사진
김정선, 각 출판사 제공
2022년 03월호
2022년 03월호
에디터
하은정, 김지은
박사(북 칼럼니스트)
사진
김정선, 각 출판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