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큼한 오렌지 컬러가 눈길을 사로잡는 이곳은 다양한 문화 공간의 기획, 브랜딩, 디자인을 총괄하는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프로젝트 엠지’의 또 다른 공간인 원포셰다. 주로 커피를 판매하고 있지만 단순한 카페로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원포셰는 수집 문화를 기반으로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선보이는 소셜 살롱형 에스프레소 바다. 누구나 사랑방처럼 편하게 들러 다양한 문화를 나누고 대화하며 즐기는 공간을 만들자는 생각에서 출발해 많은 이들이 한층 더 ‘표정 있는 삶’을 살면 좋겠다는 하지연 대표의 바람을 담은 곳이기도 하다. 최근 원포셰 오픈 준비 직전, 서울웨이브아트센터에서 <신비한 장난감 가게> 전시를 마친 하지연 대표는 모교인 한양대학교에서 실내건축디자인학과 겸임교수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바쁜 일정 와중에도 우아하고 모던한 스타일링과 애티튜드를 잃지 않는다. 클래식과 디테일의 가치를 그 누구보다 절감하는 그녀의 철학이 묻어나는 패션&라이프스타일 스토리를 공개한다.
평소 추구하는 패션 스타일은 무엇인가요?
평소 스타일은 심플하지만 디테일을 중시하는 편이에요. 블랙 컬러를 입어도 무채색 계열을 레이어드하는 톤온톤 스타일링을 자주 시도해요. 다른 사람들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겠지만, 핏도 소재도 다 다른 검정색 의류로 옷장이 가득 채워져 있어요. 재킷 등의 아우터는 넉넉하고 박시한 실루엣을 선호해요. 바지 바깥으로 티셔츠가 삐져 나오는 등 지저분한 걸 싫어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입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죠. 하의는 허리 라인과 핏에 예민해 무조건 몸에 맞게 수선해서 입어요. 상의는 V넥만 입는데, 제가 좋아하는 V라인이 따로 있죠. 겨울에는 얇고 슬림한 실루엣의 터틀넥을 즐겨 입어요. 소재도 중요하게 따지는데, 구김이 잘 안 가는 소재를 좋아해요. 평상시에는 옅은 패턴이나 작은 디테일이 있는 옷을 즐겨 입고, 특별한 날엔 반대로 화려한 패턴이 있는 옷을 입기도 해요.
스타일링 시 포기할 수 없는 패션 아이템이 있나요?
원래 주얼리보다는 시계를 즐겨 착용하는 편이에요. 시계 욕심이 많죠. 그중에서도 대학 입학 기념으로 어머니가 사주신 남색 까르띠에 시계, 아버지가 어머니 선물로 사셨다가 저한테 물려주신 브라운 컬러의 레이몬드 웨일 시계를 가장 좋아해요. 그 외에도 모은 손목시계만 10개 이상인데, 그날의 기분이나 옷 스타일링에 맞게 착용하고 있어요. 도면이나 이미지 등 손으로 설명하는 게 많은 직업이다 보니 반지를 착용해 손에 포인트를 주는 편이에요. 심플하고 간결한 스타일을 추구하다 보니 굵고 화려한 것보다는 얇은 실반지 여러 개를 레이어드하는 것을 좋아해요.
가장 애정하는 패션 브랜드와 그 이유는?
모던한 스타일을 선호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브랜드는 샤넬이에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심플한 스타일을 추구하다 보니 주얼리나 가방 또한 클래식한 아이템을 주로 착용하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샤넬이라는 브랜드의 우아함 때문이에요. 또 코코 샤넬이 디자이너로 일했던 당시의 늠연한 애티튜드를 좋아하죠. 클래식이 오래가는 이유는 굳건한 철학에서 나오는 변치 않는 가치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저에게 샤넬은 당당해서 멋진 브랜드예요.
런던에도 프로젝트 엠지 사무실이 있던데, 원래 런던에서 활동을 시작한 건가요?
1960년대 런던의 건축 학교 AA스쿨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아키그램이라는 영국 건축가 그룹이 너무 좋아 2006년 영국 런던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런던예술대와 AA스쿨에서 공간 디자인과 도시 디자인을 공부한 후 바로 런던의 건축 회사에서 일하며 실무를 했고요. 그 후 현재 운영하고 있는 프로젝트 엠지를 런던에서 창업해 활동하다가 2017년 한국으로 왔어요.
여태까지 했던 작업 중 인상 깊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런던 있을 때 했던, 주영한국문화원의 한국 영화 아카이브 작업이었어요. 한국 영화 스캐너(K-film scanner)라는 콘셉트로 폴리카보네이트라는 건축자재를 실내에 사용했고, 다소 생소한 디자인을 시도했어요. 재료도 낯설고, 전자기기를 장착한 패널이 움직여야 해서 발주처를 설득하는 것도, 스스로 디자인 디테일을 풀어내는 것도 진짜 고생 많이 했거든요. 덕분에 2013년 서페이스 디자인 어워드(Surface Design Award) 공공 인테리어 부문에서 수상까지 했어요. 그때 아무 생각 없이 화장도 안 하고 시상식장에 갔는데 갑자기 수상자로 불려 세계적 건축가 에릭 페리와 민낯으로 사진을 찍어 정말 당황했던 기억이 나요. 당시 한국 영화가 영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한국인으로서 런던 현지에서 열리는 국제 어워드에서 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정말 기분 좋고 자랑스러웠어요. 이래서 다 해외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고 하나보다 싶었죠.
원포셰를 오픈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원포셰라는 이름은 ‘하나(one)’라는 뜻의 영어와 ‘주머니(poche)’라는 뜻의 프랑스어를 조합한 단어예요. 우리는 소중한 것, 잊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주머니에 담아요. 그리고 또 주머니에서 꺼내 사람들과 나누죠. 도시 디자인에서 작지만 미래의 발전과 소통을 위한 여유 공간을 포켓 스페이스라고 부르는데 거기서도 착안했어요. 디자인에 대한 열정 하나로 런던에서 일할 당시, 우연히 벨기에 브뤼셀로 출장을 가게 됐어요. 그때 오랜 타지 생활로 힘들었고, 점점 열정이 사그라들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우연히 들른 브뤼셀 장난감 박물관에서 수집가의 열정과 집념을 마주하고 큰 감명을 받았어요. 바로 관장님에게 만나고 싶다는 이메일을 드리고 그렇게 처음 만난 안드레 램돈크 관장님에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삶에 대한 희망과 타인과의 소통을 위한 수집의 가치를 배우게 됐어요. 이런 관장님의 베품을 ‘주머니’라는 모티브로 삼아 원포셰에 담아봤습니다.
원포셰의 시그너처 메뉴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로마노 인 포셰’예요. 귤청을 더해 새콤달콤한 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에스프레소와 저희가 직접 제작하는 레고 블록 모양 초콜릿, 그리고 벤딩머신을 할 수 있는 코인과 원포셰 스토리카드로 구성돼 있어요. 저희의 스토리와 따뜻한 마음, 그리고 재미를 함께 담은 세트 메뉴죠. 램돈크 관장님은 제가 박물관을 방문하면 늘 커피와 초콜릿을 주셨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귤을 싸 주시곤 했어요. 그래서 저에게 초콜릿은 환대, 귤은 마음의 상징이에요.
그렇다면 본인의 주머니나 가방에 꼭 챙겨 다니는 필수템은 무엇인가요?
평소 화려한 메이크업은 지양하는 데다 코로나19 이후 마스크가 일상화됐기 때문에 최근에는 간편한 제품에 자꾸 손이 가더라고요. 특히 틴티드 립밤은 대충 쓱 바르기만 해도 보습과 혈색 둘 다 해결할 수 있어 다양한 종류를 시도해봤어요. 그중 사용해보고 좋았던 제품을 2~3개 구매해 가방, 파우치, 사무실, 차 등에 구비해두고 수시로 바르고 있어요. 그리고 향을 좋아해 미니 향수는 늘 가지고 다닙니다. 특히 달달하고 스모키 한 향을 좋아하고, 프루티 계열과 우디 향도 즐겨 사용해요.
본인만의 스킨케어 루틴이 있나요?
업무 강도가 세고 야근이 많은 편이라 피부에 신경 쓰지 못하다 보니 피부가 건조해지더라고요. 그렇다고 피부에 화장품을 두껍게 바르면 답답한 느낌이 들어 싫어하고요. 그래서 세안할 때 주기적으로 필링 젤을 사용해 불필요한 각질을 제거한 직후 미스트를 여러 번 분사해 수분을 충분히 채워줘요. 그런 다음 영양이 풍부한 에센스나 아이 크림을 얼굴 전체에 발라 마무리해요. 달팡 리바이탈라이징 오일 등 페이스 오일류를 바를 때도 많고요. 가끔 오이 팩으로 수분 보충을 하는 스페셜 케어도 빼놓지 않는답니다.
평소 메이크업 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이템은 무엇인가요?
피부 톤이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데다 건조하다 보니 커버보다는 톤 업에 신경 쓰는 편이에요. 미세한 펄이 살짝 가미된 수분감 있는 쿠션을 선호하고, 눈매를 강조하는 메이크업을 즐겨 해요. 눈이 크고 동그란데 쌍꺼풀은 없어 아이라이너보다 섀도로 음영을 많이 주는 편이죠. 메이크업 시 선호하는 컬러는 코럴인데, 제 피부 위에 얹었을 때 화사하게 밝혀주는 효과가 있더라고요.
일할 때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궁금해요.
소설책이나 만화책, 전시, 예술 작품이요. 특히 조각이나 공간 설치 작업 등을 보며 영감을 많이 얻어요.
쉬는 날에는 무엇을 하며 보내는 편인가요?
저는 휴일에 오히려 더 일찍 일어나서 산책하는 걸 즐겨요. 주로 집 앞 양채천을 걷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일부러 동네를 구석구석 빙빙 돌며 걸어와요. 좋아하는 카페에 들러 커피 한잔하며 멍때리는 것도 좋아하고요.
요즘 가장 몰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요즘은 원포셰에 완전 몰두하고 있어요. 공간 기획자이자 디자이너로서 다른 이를 위한 브랜드는 많이 오픈해봤지만, 자체 브랜드는 처음이기도 하고, 특히 제 인생 얘기와 취향이 그대로 담긴 공간을 오픈한 거니까요. 반짝 인기 있는 카페가 아닌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좋은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곳이 되기 위해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3월부터는 원포셰에서 전시와 공연도 시작할 예정이라, 준비에 한창입니다.
바쁜 스케줄을 거뜬히 소화해내는 비법이 있다면요?
사람이 저의 비결이자 재산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팀은 취향, 생각, 삶의 방식이 모두 비슷해요. 그래서 외근하다가 사무실로 들어가면 오히려 더 행복해져요. 진짜 사소한 걸로 낄낄거리며 웃고, 서로 놀리려고 안달이에요. 잠깐이지만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때문에 바쁘고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말씀해주세요.
올해는 원포셰에서 할 다양한 전시·공연·이벤트 기획에 힘쓸 예정이고, 그중 빈티지 장난감 전시가 가장 기대돼요. 원포셰의 모티브가 된 안드레 램돈크 관장님과 프로젝트 엠지 팀의 이야기가 담긴 스토리 북도 거의 막바지 단계라 올해 중반에 출간할 예정이에요. 그 외에도 다양한 공간 작업을 계속할 거고요.
행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표정 있게 사는 것’이요. 아무 감정도 없을 때는 주로 무표정하잖아요. 그와 반대로 내 삶에 주체적으로 임하면서 다양한 표정을 짓는 것이 더 좋지 않나요? 내가 좋아하는 일, 사람, 장소 등 좋고 싫음이 명확할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실수하거나 실패를 겪을지라도 내가 얼마나 삶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냐가 중요하더라고요.
인생의 모토가 무엇인가요?
다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요. 더 정확하게는 다정한 장난꾸러기가 되는 거예요. 오래도록 함께 즐기고 나누고 행복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런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