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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LSENSE

고개 들어 홀드를 보라

술보다 더한 행복은 없다고 믿었던 나에게 더 큰 행복이 생겼다.

On March 2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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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으로 내적 친밀감을 쌓은 작가가 있다. <일도 사랑도 일단 한잔 마시고>의 저자 권용득이다.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듯 술에 얽힌 에피소드가 담겼다. 애주가인 나로서 이만큼 흥미로운 책이 있을까? 조금씩 아껴 읽으려고 했는데 앉은자리에서 마지막 장을 덮었다. 곧 작가의 SNS를 찾았다. 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그의 일상은 인간적이고 흥미로웠다. (사실 술 이야기를 할 때가 제일 반갑고 재미있지만) 그런 그가 어느 날 클라이밍에 빠졌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두 병 마시던 술을 한 병으로 줄이며 컨디션 조절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어? 안 되는데. 알코올 러버를 이렇게 잃을 순 없는데. 마음 한구석에 비통한 감정이 피어났다.

비슷한 시기에 클라이밍을 시작했다는 지인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운동에도 트렌드가 있다는데 이제는 클라이밍이 인기의 파도에 올라탄 것인가 싶었다. 그렇다고 관심이 생기진 않았다. 소문난 겁쟁이인 내가 안전장치 없이 맨몸으로 벽을 오르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클라이밍 취재를 해야 할 일이 생긴 게 아닌가. 그것도 암장에서 직접 클라이밍에 도전해보는 거였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암장에 들어섰다. 웬걸, 너무 신났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상황에서도 다시 오를 생각만 하게 된다.

매력을 꼽자면 확실한 성취감이다. 클라이밍은 오롯이 나의 힘으로 한 발씩 나아가는 운동이다. 그렇기에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톱홀드까지 향하는 모든 과정이 소중하다. 절대 가닿지 못할 것 같던 홀드가 손에 잡히는 순간, 그런 순간이 하나씩 모여 하나의 문제를 풀게 됐을 때의 쾌감은 말 그대로 끝내준다. 그리고 복잡한 생각을 거짓말처럼 잊게 만든다. 문제를 푸는 데만 몰두해 나를 괴롭히는 일들로부터 잠시나마 떠나올 수 있다. 심지어 암장에 모인 사람들이 “나이스!”를 수없이 외치며 나의 성공을 본인의 일처럼 기뻐해준다. 전쟁 같은 삶에서 쉽게 느끼지 못하는 평화와 행복, 사랑이 클라이밍장에 있다. 내가 봤다.

무엇보다 클라이밍을 만나면서 큰 변화를 맞았다. 술보다 더 큰 행복은 없다고 믿었던 굳은 신념에 금이 갔다고 해야 할까? 여유가 생기면 무조건 암장 생각부터 난다. 술 마실 시간에 홀드 한 번 더 잡아야겠다는 마음이다.

“<우먼센스>가 너에게 클라이밍을 남겼구나.” 양손에 밴드를 붙이고 생활하는 나에게 부장님이 건넨 말이다. 그렇다. 나는 클라이밍 정기 회원권을 끊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암장에 간다. 출퇴근길에는 클라이밍 영상을 보고, 내가 다니는 암장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오는 카탈로그 영상을 보면서 연구한다. 심지어 암장에 가는 꿈까지 꾼다. 클라이밍 찬양 글을 쓰기엔 형편없는 실력이지만, 기필코 클린이(클라이밍+어린이) 신분에서 벗어나 높은 홀드를 척척 잡는 멋쟁이로 등극할 테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연주
일러스트
킨주리
2022년 03월호
2022년 03월호
에디터
김연주
일러스트
킨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