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할 땐 수다를 떨고, 기분이 좋을 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롯이 그 기분을 만끽한다. 그리고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땐 청소를 시작한다.
나는 청소를 즐기지 않는다. 미루고 미루다가 때가 오면 기꺼이 한다. 설거지도 미루고 미루다 하는 편이었는데, 왠지 근심을 쌓아놓는 것 같아 올해부터 부지런히 하고 있다. 새해, 큰 결심이다.
마감이 시작되면 책상 청소부터 시작한다. 마치 의식과도 같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필기도구를 주워 담고, 정체 모를 과자 부스러기를 치운다. 종이컵을 치우고,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영수증과 명함, 종이, 젓가락, 포크, 비타민 등을 정리하고 버린다. 소독 티슈로 책상과 전화기, 키보드 등등을 단정히 닦고 나면 비로소 본격 마감이 시작됐음을 스스로 받아들인다. 자, 이제 당분간 동굴 속으로 들어가자.
나는 집에서 널브러져 있는 걸 좋아한다. 인간도 물건도 죄다 널브러져 있는 게 좋다. 좋다기보다 나쁘지 않다. 소파에 널브러진 채, 널브러져 있는 거실 바닥의 다양한 물체를 바라보면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진다. ‘아, 내가 예민한 성격이 아니어서 다행이야’ ‘저런 걸로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얼마나 피곤했을까’ ‘청소하며 청춘을 보낼 순 없잖아’ 흐뭇하다. 별꼴이 풍년이다.
고백하기는 뭣하지만 간혹 빨래를 널기 싫을 땐 거실에 널브러진 채로 둔다. 한 이틀 지나면 자연히 마른다. 그걸 지켜보는 이틀이 전혀 힘들지 않은 걸 보면 참 다행이다 싶다. 싱글라이프라 가능한 일이다.
그러다가도 어느 날 결심한 듯 아침 댓바람부터 고무장갑을 끼고 청소를 시작한다. 창문을 활짝 열고 비틀스의 음악을 튼다. 널브러져 있던 것들을 제자리에 놓는다.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을 한다. 테이블 구석구석을 닦고, 침구를 교체한다. 동시다발적으로 빨래와 설거지를 한다. 재활용품 분리배출을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한다. 그렇게 두어 시간 청소하고 나면 등줄기에서 땀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그런 뒤 잔잔한 팝을 들으며 맛있는 커피와 케이크를 한 조각 먹는다. 마지막 의식이 남았다. 샤워를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여기까지가 내게 ‘청소’다.
기분이 좋아진다. 이유는 모르겠다. 환경이 깨끗해져서? 운동한 듯 땀이 나서?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뭔가 ‘종합적’이다. 엊그제 나는 미루고 미루다 집 안 청소를 했다. 봄을 먼저 맞은 기분이랄까? 사나흘쯤 지나자 널브러진 것들이 하나둘 생긴다. 그냥 그 자리에 둔다. 나쁘지 않다.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카드’를 꺼내 들 것이다. 청소라는 비장의 카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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