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마다 대체 불가한 연기력을 선보였던 배우 설경구가 이번엔 정치인 역할로 돌아왔다. 영화 <킹메이커>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는 정치인 ‘김운범’과 존재도 이름도 숨겨진 선거 전략가 ‘서창대’가 치열한 선거판에 뛰어들며 시작되는 드라마를 그린 작품이다.
극 중 설경구는 정치인 김운범 역을, 이선균은 서창대 역을 맡았다. <킹메이커>는 제70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돼 극찬을 받았던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후 <불한당>)의 변성현 감독과 주요 제작진이 의기투합한 영화다. 5년 만에 다시 변성현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게 된 설경구는 “<불한당> 이후 변성현 감독을 100% 믿고 가고 있다”는 말로 강한 신뢰감을 드러냈다.
승리에 목적과 수단의 정당성이 동반돼야 한다고 믿는 정치인 김운범과 승리를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선거 전략가 서창대의 이야기는 시대와 분야를 막론하고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만인의 딜레마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정당한 목적을 위해 과정과 수단까지 정당해야 하는지, 아니면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감수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역할, 연기하기 어려웠다”
변성현 감독 및 <불한당> 제작진과 재회했는데 소감이 어떤지?
<킹메이커>는 <불한당>을 촬영할 때 받은 시나리오다. 그래서 당시 촬영하면서 드문드문 <킹메이커>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이왕이면 <불한당> 스태프와 모여 다시 한번 해보자 싶었다. 미술감독의 경우엔 다른 영화에 참여하지 않고 긴 시간 동안 <킹메이커>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저도 시간이 맞아서 참여하게 됐다.
결과물을 본 소감도 궁금하다.
팬데믹으로 개봉이 늦어지면서 몇 달 전 스태프끼리 먼저 봤다. 그때는 영화 전체가 안 보이고 내 모습만 보게 되더라. 아쉬운 연기가 눈에 많이 들어왔다. 이번 언론시사회에서 다시 봤을 땐 저번보다 영화 자체가 보이긴 했다. 사실 나는 내 영화를 객관적으로 못 본다. 감독님이 만족하는 것 같아 ‘그런가 보다’ 했다.(웃음) 처음 봤을 때보다는 낫더라. 이 작품뿐 아니라 모든 작품이 늘 아쉽다. 아쉬운 내 연기만 많이 보인다.
연기하는 인물이 워낙 많이 알려진 실존 인물이다. 부담은 없었나?
김운범은 아시다시피 고(故) 김대중 대통령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처음에는 캐릭터 이름도 ‘김대중’이었다. 실명에 대한 부담이 있어 이름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이름을 바꾸니 조금 나아지긴 했는데, 너무 유명하고 존경받았던 인물이라 부담이 됐다. 그래서 처음엔 이 역할을 하는 게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배우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크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감독님에게 다른 배우를 추천하고 상대역인 서창대 역할을 내가 하면 안 되겠냐고 묻기도 했다. 그만큼 부담이 큰 상태에서 촬영을 시작했고, 지금도 관객의 시선이 걱정된다. 결과적으로 연기하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이번에 정치인 역할을 했으니, 올해 선거를 대하는 기분이 남다를 것 같다. 배우이기 전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통령이 가져야 할 가장 큰 덕목은 뭐라고 생각하나?
이번 시나리오에서 좋아하는 대사가 있었다. 조우진 배우의 대사였는데, “당신의 대의가 김운범이면 나의 대의는 각하다. 정의는 승자의 단어다”라는 대사다. 정치가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목 이전에 각자의 정의를 위해 싸운다. 또 각자가 생각하는 정의도 다르지 않나.
<킹메이커>의 ‘킹’ 김운범을 연기하면서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뭔가? 그리고 ‘킹메이커’ 이선균 배우와의 호흡도 궁금하다.
이 작품은 ‘킹’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킹메이커’에 대한 영화다. 내 캐릭터는 영화에서 큰 판을 깔아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흔들림 없이 제자리에 있는 역할이다. 그 안에서 이선균 배우가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 ‘킹메이커’ 역할이다. 그런 생각으로 작업에 임했다. 덧붙여 말하면, 이선균이라는 친구는 기본적으로 참 좋은 사람이다. 감정 기복도 없고 멘털도 강하다. 단단하고 든든한 사람이라 편안하게 촬영했다.
이선균 배우를 추천했다고 들었다.
시나리오를 읽다가 이선균 배우가 떠올랐다. 영화 <자산어보> 때도 시나리오를 읽다가 변요한 배우가 생각나서 이준익 감독에게 추천한 적이 있다. <킹메이커>를 읽었을 때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방영 중이었다. 종종 그 드라마를 봤는데, 이선균을 보면서 그 역할에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불한당>에 이어 <킹메이커>, 곧 개봉을 앞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길복순>까지 변성현 감독과 연이어 작업 중이다.
솔직히 말하면 정치 이야기를 즐기는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한당> 제작팀과 다시 작업하고 싶은 마음에 선택했던 게 <킹메이커>다. <불한당>을 하면서 서로에게 신뢰가 쌓였다. <길복순>은… 글쎄 모르겠다. 그냥 계속 같이하게 되는 것 같다.(웃음). 물론 내가 “내 나이대 역할은 무조건 나한테 와야 한다”고 변 감독에게 협박을 하긴 했다.(웃음) ‘길복순’은 캐릭터 이름이다. 전도연 씨가 맡았다. 부부로 나오는데 내 분량은 많지 않다. 재미있을 거 같아서 했다.
새로운 캐릭터 도전, 혹은 익숙한 동료들과의 협업 등등 이번 영화를 통해 얻은 것을 꼽아본다면?
뭘 얻으려고 작품을 하진 않는다. 뭘 얻었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단지 작품에 참여한 것 자체가 이미 얻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 캐릭터도 해보고, 새로운 배우들과 호흡도 맞추지 않나. 결국 사람이 남는 것 같다. 이 영화의 큰 미덕은 배우 보는 맛이다.
앞서 자신의 연기를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다고 언급했는데, 아내인 송윤아 씨는 평소 작품과 배역에 대해 의견을 주는지도 궁금하다.
일에 대해 조언하거나 관여하진 않는다. 배우로서 존중할 뿐이다.
지난해 영화 <자산어보>로 주연상을 휩쓸었다. 베테랑 배우지만 트로피가 늘어날 때마다 느끼는 남다른 감회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영화 초반에 많이 받았다. 그래서 영화를 하면 당연히 해외 영화제도 많이 나가고 상도 많이 받는구나 하는 오만한 생각을 했었다. 너무 힘들어 참석하지 않은 영화제도 있었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10여 년 상이 끊기더라.(웃음) 그러다가 <불한당>으로 지난해 상을 많이 받았다. 데뷔 초반에는 멋모르고 받았지만 지금은 신인상을 받는 것처럼 떨린다. ‘상의 무게’라기보다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크다. 상 받으려고 연기하는 건 아니지만 너무 감사한 일이다. 상은 열심히 하면 오는 것 같다.
연기 잘하는 대표적인 배우다. 영감을 주는 배우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누구라고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겠지만, 같이 작업하는 모든 배우가 서로에게 영감을 주면서 작업한다고 생각한다. 스태프도 마찬가지다. 작품 안에서 주고받는 영감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