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따의 일거수일투족은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가 몰고 다니는 억대의 외제 차와 명품 아이템부터 일상까지 모든 부분이 화제다. 염따는 ‘플렉스(래퍼들이 재력이나 소장한 명품을 드러내는 모습)’라는 단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한 소주 브랜드와 염따의 플렉스 컬래버레이션은 20대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Mnet 예능 <쇼미더머니 10>(이하 <쇼미10>)이 종영한 지 닷새 만에 그를 만났다. 스튜디오에 들어선 래퍼 염따의 손에는 명품 브랜드 L사의 가방이 들려 있었다. 그 안에서 다이아 반지와 목걸이가 나왔다. 플렉스 그 자체다.
프로듀서로 참여한 <쇼미10>이 막을 내렸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소위 <쇼미> 프로듀서는 래퍼로서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나.(웃음) 촉박한 일정 속에서 매번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은 힘들었다. 방송을 본 사람들은 알다시피 욕도 많이 먹었다. 후배들을 위해 진심으로 조언했는데 좋게 비치지 않더라. 그래도 방송 중에 전했던 모든 이야기는 진심이었다.
섭외 제안을 거절했었다고 들었다.
내 음악을 소비하지 않을 사람들을 위해 활동하고 싶지 않았다. 음원 사이트를 살펴보면 주로 10~20대가 내 음악을 듣는데 TV를 시청하는 연령은 그 위 세대다. 방송에 출연해도 내 음악으로 유입되지 않는 연령층인 거다. 그럼에도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쇼미10>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비즈니스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다.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 재미있게 놀다 보면 대중의 트래픽을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결과도 만족스럽다.
눈물을 보일 만큼 진심으로 방송에 임한 거 같다(염따는 <쇼미10> 2차 예선에서 절친한 사이인 래퍼 쿤타의 무대를 평가하다가 실망감을 드러내며 눈물을 흘렸다. 당시 쿤타가 프로듀서들의 조언을 장난스럽게 받아들였다는 이유에서다).
민망한 이야기지만, 그 정도로 울었던 게 거의 처음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감정들이 한 번에 밀려왔다. 쿤타 형이 무대를 잘 마쳤다는 기쁨이 컸지만 프로듀서들의 조언을 장난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곤 두려움과 걱정이 엄습했다. 무대에 한 번 더 설 수 있는 기회를 어렵게 얻어놓고도 진지하지 못한 형을 보는 게 힘들었다. 또 <쇼미10>에서만큼은 쿤타 형과의 개인적인 인연은 언급하지 말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함께 있던 프로듀서들에게 미안했다.
팀원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13살 참가자 송민영과 실력이 입증된 래퍼 산이 중 송민영을 선택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욕 많이 먹었다.(웃음) 프로듀서마다 래퍼를 평가하는 기준이 다르다. 기술의 완성도를 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매력을 중시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송민영 군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무대에 올라 랩을 시작하면 현장 분위기가 밝아진다. 행복 바이러스를 내뿜는 에너지가 있는 친구다. 현장에서 느꼈던 에너지가 화면에도 잘 담겼다면 좋았을 텐데 약간의 한계가 있었던 거 같다.
위선적인 모습을 버리기 위해 ‘플렉스’한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그에 맞는 옷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가난하고 힘들었을 때처럼 사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어그로? 음악을 위한 전략
염따의 인기를 가장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창구는 SNS다.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약 37만 6,000명. 게시물 1개당 1,0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릴 정도로 폭발적이다. 염따의 SNS는 원초적(?)이다. 재력을 드러내는 명품 플렉스는 물론, 과감한 노출 사진도 여러 장이다. 재치 있는 캡션 또한 화제다. 복도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에 “통행료는 K.I.S.S”라는 문구를 함께 올리는가 하면, 가수 제시와 찍은 사진에는 “제 여자친구입니다”라는 캡션을 달았다.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도 그만의 SNS 활용법이다. 실시간으로 팬들과 전화 연결을 한 뒤 또래 친구들처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다.
인스타그램의 인기가 상당하다.
인터넷 친구들의 댓글이 너무 웃기다 (염따는 SNS로 소통하는 네티즌을 ‘인터넷 친구’라고 지칭한다). 내가 SNS 계정에 게시물을 올리면 서로 웃긴 댓글을 달려고 기를 쓴다. 그들의 성의에 보답하기 위해 라이브 방송을 하고 DM(다이렉트 메시지)에 답장을 보낸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재미인데, 인터넷 세상에서 놀 때 가장 신난다. 그리고 인터넷은 내 인생을 바꿨다. 2016년 1집을 발매했을 때 인터넷으로 대중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많이 성장했다. 당시 지하철을 탔을 때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 사람이 있다. 목덜미에 남은 수술 자국을 보여주면서 “병원에서 힘들었던 시기에 염따의 음악을 들으면서 이겨냈다”고 하더라. 내 음악을 들어주는 이들이 있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특히 10대에게 인기가 뜨겁다.
공통분모가 없는데 친밀함이 형성되는 게 신기하다. 인터넷의 흐름을 가장 빠르게 파악하고 그 세계를 움직이는 주축이 10대라고 생각한다. 정치, 뷰티, 요리 등 사람마다 온라인상에서 즐겨 찾는 카테고리가 다른데 재미를 추구하는 곳에는 늘 10대가 있다. 거기에서 우리가 만나는 거다.
대중이 염따에게 반응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염따라는 캐릭터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거 같다. 내 입으로 말하긴 쑥스럽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포인트를 알고 있다. 나만의 비결은 아니다. 지금까지 대중이 열광했던 콘텐츠나 캐릭터를 떠올려보면 파악할 수 있다. 가만히 있으면 별 탈 없이 잔잔하게 살아가겠지만 변화를 원한다면 움직여야 한다.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바탕으로 행동하면 반응이 따라오게 돼 있다. 물론 나는 대중의 반응을 얻는 과정에서 세게 혼이 나기도 했지만 말이다.
말한 대로 염따의 솔직함은 때때로 논란이 된다.
그렇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순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히려 가면을 벗고 솔직하게 살기로 했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행동하지 않는 거다.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에 따라 태도가 변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최대한 같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염따에게 인터넷이란?
인터넷은 인터넷일 뿐이다. 인터넷은 현실 세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의 감정과 사회적 현상이 빠른 간에 확산하고 변화하는 공간이다. 온라인상으로 많은 이와 소통하고 있지만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하려고 한다. 인터넷 세계에 몰두한 채 살았다면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을 거다.
‘플렉스(Flex)’라는 수식어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플렉스는 위선적인 모습을 거둬내는 방법이다. 갑자기 큰돈을 벌게 되면서 나를 둘러싼 주변 환경이 많이 변했다.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그에 맞는 옷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했을 때처럼 힘든 얼굴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위선적이지 않나. 명품뿐만 아니라 음악의 결에도 변화를 줬다. 음악은 내 삶을 풀어내는 창구고, 힙합은 가짜를 이야기할 수 없는 음악 장르라서 변주가 필요했다.
다 가져보니 어떤가?
사실 물질적인 부분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돈에 대한 미련이 없는 편이다. 삶에서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면 일이 잘 풀리고 큰돈을 벌어들이는 상황이 무서웠을 거 같다. 솔직히 스스로 노력한 만큼의 부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번 돈을 마음대로 쓰고 다니는 거다.
솔직한 사람인 거 같다.(웃음)
인간 염현수와 래퍼 염따의 간극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대중 앞에 나설 때와 실제 모습이 크게 다르면 불행해지기 마련이다. MTV <모스트 원티드>에서 VJ로 활동할 당시 지나가는 사람들과 인터뷰를 해야 돼서 항상 하이텐션을 유지했는데,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마다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혼자 있는 시간까지 들뜬 기분을 유지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방송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실생활이다. 캐릭터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해야 된다는 생각을 잊지 않는다.
“나는 광대, 관객이 없으면 무의미”
염따는 지난 2006년 싱글 <Where is my radio>로 데뷔해 약 15년 간 마니아층 사이에서 유명한 래퍼로 지냈다. 그가 빛을 보기 시작한 시기는 지난 2019년 유튜브 채널 <염따>를 통해서다. 음원뿐 아니라 먹방, 일상을 콘텐츠로 녹여내 주목도를 점차 높여갔다. 그 이면에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을 건드려야 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그의 전략이 담겼다. SNS 팔로어 100명 가운데 10명 정도가 자신의 음악으로 유입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100명이 아닌 1,000명이 SNS를 보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단다. 열심히 살면 성공한다. 염따는 간단명료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이 문장을 믿고 움직였다.
주목을 받기까지 15년이 걸렸는데 힘들었던 적은 없었나?
대중의 피드백이 없을 때 가장 힘들었다. 음악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고쳐나갈 텐데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거다. 음악을 듣고 판단해주는 사람들이 없으면 아티스트로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간이 반복되면 정체되고 걸어가야 할 길까지 잃게 된다.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하다.
음악을 꾸준히 만들다 보면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래서 스스로와의 약속을 충실하게 지켰다. 음원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마감 시간을 정해놓고 목표를 설정한 뒤 실행에 옮겼다. 생각해보면 실행력이 부족해 음악을 완성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더 잘 빚어야 한다는 마음에 시작조차 못 하기 때문이다. 성공의 핵심은 일단 열심히 만드는 거다. ‘열심히 하면 잘된다’는 진리를 진심으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단언컨대 열심히 해서 안 되는 건 없다.
꼭 성공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나?
가장의 무게를 느끼면서다. 7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항간에 ‘금수저’ 래퍼라는 소문이 있더라.
아버지가 생전에 의사였다는 이유에서 퍼진 소문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30평대 아파트에 거주한 평범한 5인 가족이다. 엄청난 재력으로 덕을 봤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19살 때 독립해 오롯이 내 힘으로 오늘을 맞았다.
래퍼 더 콰이엇과 소속사 공동대표를 지내고 있다(염따는 2020년 11월 동갑내기 래퍼 더 콰이엇과 함께 ‘데이토나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우리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일을 결정하는 데는 이견이 없다.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고 믿어준다. 더 콰이엇은 엘리트 코스를 밟아 래퍼로서 성공한 반면 나는 길바닥 코스로 빛을 봤다. 서로 가진 무기가 달라 공유하고 나눌 부분이 많다.
음악적 영감은 어디에서 얻나?
스스로에게서 발견하는 편이다. 내면을 들여다보면 꺼낼 수 있는 감정과 서사가 많다. 나만 할 수 있는 음악은 나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음악적으로 독점권을 가진 사람이고 싶다.
가장 좋아하는 한 문장은?
“살아 숨 셔.” 몸 세 군데에 타투로 새긴 문장이다(염따는 입고 있던 옷의 소매를 걷어 타투를 보여줬다). 정규 앨범 이름을 ‘살아 숨 셔’ 시리즈로 내놓을 만큼 애정이 있다. 거창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문장이 주는 뉘앙스가 좋다. 어감도 좋고, 듣기도 좋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나는 광대고, 광대에게 가장 필요한 건 관객이다. 관객이 없는 무대에 오르는 것과 듣는 이가 없는 음악을 만드는 것만큼 슬픈 일이 없다. 광대의 분장이 아무리 완벽해도 봐줄 사람이 없으면 무슨 소용일까 싶다. 앞으로도 무대 앞 객석에 관객을 꽉 채우기 위해 노력하겠다.
‘무물’ 염따가 답했다
좋아하는 색 노란색.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다. SNS 피드만 봐도 그렇지 않나.
추천하는 맛집 미미족발. 주로 배달시켜 먹는다(인터뷰를 마친 저녁 염따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족발 사진이 올라왔다. 혹시 미미족발일까?).
염따에게 음악은 ◦◦◦이다. 여자친구. 곁에 있으면 좋고 없을 때는 생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예쁠 때도 있고, 미울 때도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카페 원픽 음료 아이스아메리카노. 큰 걸로 두 잔이면 하루가 지나간다.
최애 명품 브랜드 루이 비통. 다른 건 글쎄?
좋아하는 아티스트 나.(웃음) 음악을 만든 뒤에 혼자 듣는 시간이 가장 좋다.
피처링하고 싶은 사람 래퍼 구본겸. 최근 곡 작업을 하면서 이 친구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곡과 잘 어울릴 거 같다.
플레이리스트 최애 음악 래퍼 황세현의 ‘인스타 그만’. 같은 소속사에 있는 친구인데 감각이 있다. 어제도 들었다.
라이프 롤 모델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성공한 사람.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건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