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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이 어때서

커밍아웃을 한 아들을 둔 엄마 비비안, 트랜스젠더 아들과 살아가는 엄마 나비의 이야기.

On December 2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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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차 소방공무원 나비(사진 좌측, 본명 정은애)는 트랜스젠더 ‘한결’의 엄마다. 딸에서 아들이 된 한결은 성전환수술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성별을 남성으로 정체화한 FTM(Female to Male) 트랜스젠더다. 27년 차 항공 승무원 비비안(사진 우측, 본명 강선화)은 21살에 커밍아웃을 한 아들 ‘예준’과 살아간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확립한 예준은 동성 연인과의 당당한 사랑을 키워가고 있다.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내 아들의 커밍아웃은 두 여성의 삶을 바꿨다. 동성애자 자녀를 분 부모들의 집합체인 ‘성소수자부모모임’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사회가 지운 성소수자들과 그 가족들을 만나 연대의 가치를 배웠고, 이전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확장됐다.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꿈 꾸고 있는 나비와 비비안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됐다. 영화 <너에게 가는 길>은 두 사람을 비롯해 ‘성소수자부모모임’ 회원들의 인권 활동을 조명한다. 만연한 차별 속에서 자신의 모습으로 떳떳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부모들의 이야기다. 성소수자인 아들에게 다가가는 길이자 과거보다 더 떳떳해진 자신에게 가는 길, 그 여정에 서 있는 나비와 비비안을 만났다.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비비안 올해 26살인 게이 아들 ‘예준’의 엄마 강선화입니다. 활동명은 비비안이에요. 현재 약 30년째 항공 승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어요.
나비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트랜스젠더였던 28살 아들 ‘한결’과 연대하면서 살아가는 엄마이자 소방공무원 나비라고 해요.

아이가 성소수자라는 건 언제 알게 됐나요?
비비안 5년 전이었어요. 저녁을 차리는데 아들이 식탁에 책 한 권과 편지를 두고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집을 나서더라고요. 편지를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문구는 “저는 남성 동성애자예요”였어요. 망치로 머리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죠. 살면서 단 한순간도 상상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편지에 “엄마, 아빠는 저를 변함없이 사랑해줄 거라고 믿기 때문에 고백하게 됐어요”라고 썼더라고요. 그 문장을 읽고 남편과 많이 울었어요. 아들이 힘들었을 시간이 떠올라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죠.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본인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7년 동안 숨겼다더라고요. 편지를 완성하는 데도 한 달이 걸렸대요.
나비 아이가 유치원 때부터 유독 여자아이를 좋아해서 레즈비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어렸을 적부터 남다른 성향을 가진 아이라고 받아들이다 보니 이상하게 보이진 않더라고요. 성인이 된 아이가 저에게 ‘성소수자부모모임’에 나갔으면 좋겠다고 권유해 모임의 존재를 알게 됐어요. 첫 모임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 “레즈비언의 엄마입니다”라고 말했는데 본인은 레즈비언이 아니라 트랜스젠더라고 밝혔어요. 그때 성전환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죠. 어렸을 때부터 남자가 되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아이에 대해 많은 부분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거죠. 왜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냐고 물었어요. 그런데 제가 은연중에 “여자로 살기 힘들다고 남자가 될 순 없다”고 말했대요. 무의식적으로 혐오 발언을 한 거죠. 그렇게 딸에서 아들이 된 아이의 엄마가 됐어요.(웃음)

아이의 성 정체성을 온전히 이해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나비 내 자식이 제일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컸어요. 당사자보다 힘든 사람은 없으니까요. 나는 성 정체성에 대해 열린 사고를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잖아요. 그만큼 누군가에게 마음 놓고 말한다는 게 힘든 현실이죠.
비비안 나비님과 같은 생각이에요. 아이들과 유대를 잘 쌓는 화목한 가정을 꾸려왔다고 착각하고 살았어요. 커밍아웃을 하는 동시에 가족의 행복이 무너질 것 같아 숨겨왔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단단히 잘못됐다고 생각했죠. 아들이 편지와 함께 줬던 책을 읽고 ‘성소수자부모모임’에 나가게 됐어요. 아들이 준 책은 동성애자 자식을 둔 부모들의 에세이였어요. 그리고 남편이 저보다 먼저 모임에 나갔어요.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한 결과예요.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으로 인해 상처받았던 적도 있었나요?
비비안 많이 받았죠. 초기에는 지인에게 받는 상처가 컸어요. 대부분은 저와 아들의 삶을 응원해주는데 종종 인연을 끊는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지금은 당당하게 괜찮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요. 저의 마음이 그만큼 단단해진 것 같아요. 사회에서의 비난은 여전해요. 매년 퀴어 퍼레이드에 참가하면 온갖 비난을 받죠. “부모가 잘못해서 자식이 비정상”이라는 말부터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이 난무해요. “너나 잘하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하하하. 다양성을 존중할 줄 아는 제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나은 삶이라고 생각해요.
나비 성소수자 인권을 논하는 현장에 나갈 때마다 사회가 냉정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요. 지인 중에도 혐오 표현이나 차별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기회에 인간관계를 정리하자’는 마음이에요.

아이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건 여성이 차별과 무관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나비 맞아요. ‘성소수자부모모임’ 참여 빈도를 성별로 나눠보면 엄마가 훨씬 많아요. 여성이자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 있죠. 아이의 일은 엄마의 관할이니까요. 안타까운 부분은 자녀의 성 정체성을 가정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거예요. 만일 이 상황을 사회적인 부분이라고 인지했다면 아빠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을 텐데 말이죠.
비비안 사실 아들이 커밍아웃을 하기 전에는 여성이 받는 차별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어요. 차별을 차별인 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고, 불합리한 일을 겪었을 때 시끄럽게 만들고 싶지 않아 지나칠 때도 있었죠. 아들 덕분에 사회를 보는 시야가 확장됐어요. 그리고 시끄럽게 해야 세상이 변한다는 것도 알게 됐죠. 개인적인 변화도 있어요. 이젠 사소한 일일지라도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매사에 차별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진 않은지 한 번 더 고민해봐요. 직장에서 후배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어요. 나와 동등한 입장에 있는 동료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하죠.

성소수자 외에도 성별, 능력, 장애 여부, 인종 등 세상에는 다양한 차별이 존재하죠.
비비안 맞아요. 아들과 저를 위해 시작한 활동이지만 무수히 많은 종류의 차별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차별을 없애기 위해 애쓰는 활동가가 많다는 사실도 알았죠. 각자의 활동 영역이 있지만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는 목표는 같다고 생각해요.
나비 비비안님 말이 맞아요. 성소수자 관련 행사를 할 때마다 이주 여성, 노동 관련 사회단체 등 많은 분이 힘을 보태주세요. 연대의 힘이 대단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들이죠. 지난날에는 개인적인 자아만 있었다면 활동을 통해 사회적인 자아가 생겼다고 생각해요.

4년의 제작기를 거친 다큐 영화 <너에게 가는 길>이 개봉했는데 주연으로서 소감을 전해주세요.
비비안 그동안 한국에선 성소수자를 다루는 영화가 많지 않았어요. 성소수자들이 우리 곁에 있다는 걸 인식할 수 있는 창구로 문화만큼 자연스러운 방법이 없는데 말이죠. 이 영화는 가까운 곳에 살아 숨 쉬는 모든 성소수자와 그 부모의 이야기입니다. 4년 가까이 촬영했는데 촬영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았어요.(웃음)
나비 비비안 님과 저의 이야기가 담겼지만 차별로 인해 고통받는 모두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영화가 제작되고 큰 스크린으로 완성본을 보는데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렀어요. 많은 분에게 우리의 이야기가 닿길 바랍니다.

나비와 비비안의 최종 목표가 궁금합니다.
비비안 아들에게 “여자친구 있어?”라고 물어보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어요. 교제하는 대상이 이성일 거라고 단정 짓지 않는 사회가 되길 바라죠. 그리고 사회에 있는 모든 부류의 소수자들이 세상 밖으로 당당하게 나왔으면 좋겠어요.
나비 내 아이가 바지를 입든 치마를 입든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세상을 위해 아들 한결이와 손을 잡고 나아갈 거예요.  

영화 <너에게 가는 길>

성소수자인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연대와 사회에 공고하게 자리 잡은 차별을 지우려는 목소리를 담았다. 성소수자부모모임(#PFLAG)의 협력 아래 사전 준비 8개월, 성소수자부모모임 정기 취재 17회 차, 밀착 촬영 2년까지 총 4년에 걸쳐 선보이는 작품이다. 21살에 커밍아웃을 한 아들을 둔 엄마 비비안과 트랜스젠더 아들을 키우는 엄마 나비가 주축이 돼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연주, 박현구(프리랜서)
사진
서민규, 게티이미지뱅크, 스플래시뉴스, CGV아트하우스, 빅히트, 왓챠, 그린나라미디어(주), 네이버책, 각 스타 SNS
참고도서
<선량한 차별주의자> <차이, 차별, 처벌>
헤어&메이크업
정일&송미(미러미러 청담)
2021년 12월호
2021년 12월호
에디터
김연주, 박현구(프리랜서)
사진
서민규, 게티이미지뱅크, 스플래시뉴스, CGV아트하우스, 빅히트, 왓챠, 그린나라미디어(주), 네이버책, 각 스타 SNS
참고도서
<선량한 차별주의자> <차이, 차별, 처벌>
헤어&메이크업
정일&송미(미러미러 청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