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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에 대하여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한다는 골자의 ‘차별금지법’이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다.

On December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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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은 ‘모든 분야에서 차별을 포괄적으로 금지하자는 것’으로 ‘평등법’으로 불리기도 한다. 21대 국회에는 ‘차별금지법’ 또는 ‘평등법’이라고 부르는 법안이 4개 발의됐지만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깊은 잠을 자고 있는 상황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11월 9일 전체회의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청원을 포함한 국민청원 5건의 심사 기한을 2024년 5월 29일까지 미루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처리했다. 차별금지법 관련 청원의 심사 기한인 11월 10일을 하루 앞두고 단 43초 만에 처리한 것이다.  

10명 중 8명이 ‘찬성’

2021년 5월 24일 동아제약 채용 성차별 당사자의 청원 글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국민동의청원이 시작됐고 22일 만에 10만 명의 국민이 참여했다.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차별금지법과 비슷한 평등법을 공동 발의했으며,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국민청원과 연계된 법안을 발의했다.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차별에 반대하는 법률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이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있던 와중이라 국민들의 실망도 크다. 지난해 6월 국가인원위원회의 국민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10명 중 8명(82%)이 한국에 만연한 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차별 금지 관련 법률을 제정하는 것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응답자의 73.6%는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도 존중받아야 하고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응답했다. 대다수의 시민들이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과 제도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것.

현재 국회 법사위에 회부된 차별금지법의 차별 금지 항목은 총 23개다. 성별, 장애, 인종, 나이, 학력, 고용형태 등이 포함돼 있다. 차별금지법을 이미 시행하고 있는 국가 상당수가 20개 내외의 차별 금지 항목을 명시하고 있어 차별 금지 항목이 많은 편은 아니다. 차별 금지 항목은 각 나라의 사회적·역사적·경제적 배경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신분제 사회의 잔재가 남아 있는 유럽의 나라들은 가문이나 혈통의 항목으로 명시한다. 보편적인 항목 외에 각 나라의 특색에 맞게 차별적 요소가 심한 것을 금지 항목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학력과 고용 형태가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교육부가 학력은 선천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닌 후천적인 노력으로 얻는 것이기 때문에 차별로 볼 수 없다며 차별 금지 항목에서 제외해달라는 의견을 냈다. 고용 형태의 경우 다른 나라에서는 사회적 지위라는 명목에 포함된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학력과 고용 형태(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7년부터 잠들어 있는 법안

차별금지법은 갑자기 이슈로 등장한 법이 아니다. 국회에 차별금지법이 처음 발의된 것은 지난 2007년. 노무현 정부 시절 정부 입법으로 처음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14년간 발의와 폐기를 반복하며 결국 이번에도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07년 법무부가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조항이 너무 많다는 반발에 부딪혀 차별 금지 항목 20개 중 성적 지향, 병력,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등을 포함한 7개 항목을 삭제했지만 역시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국회에서는 국민동의청원과 별개로 이미 제출된 차별금지법안들조차도 제대로 논의한 적이 없다. 논의 자체를 회피해놓고 논의 시한이 다가오거나 법안을 심사할 때가 되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역차별 소지가 있다”, “국민 여론을 좀 더 포괄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등 핑계를 대며 공론화를 미루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정치권이 대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해 처리하지 않는다는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일부의 우려와 달리 차별금지법이 모든 차별 금지 항목에 대해 일괄적인 기준으로 적용되는 것도 아니고, 차등을 금지하지도 않는다. 합리적인 이유와 근거를 제시하면 차등 대우가 용인된다. 우리는 이미 국제기구인 유엔으로부터 9차례나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동성애를 우려하는 종교계의 반발, 기업의 자율 경영을 방해한다는 재계의 반발 등이 끊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종교계가 모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조계종을 비롯해 불교계도 찬성하고 있고, 개신교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관련법 시행한 35개 국가

해외의 경우에는 현재 35개 국가가 차별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다. 지난 1972년 차별금지법을 제정한 프랑스는 당시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 가입했고, 1960년대 NGO가 활발히 활동하면서 사회적 요구가 강했기 때문에 입법이 가능했다. 이후 1999년 동성 간 결합을 인정하고 2013년에는 동성 결혼을 인정했다. 이러한 차별금지법으로 인해 프랑스 국민 관용도가 증가했고 여성의 사회참여율도 늘었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도 줄어들어 7,000여 건이 넘는 동성 결혼이 이뤄졌고 이로 인한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은 없다고 한다. 독일의 경우 2006년 ‘일반동등대우법’이라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했다. 2017년에 ‘독일에서의 차별 경험’이라는 설문조사 보고서를 냈는데, ‘차별은 일부가 아닌 다수가 폭넓게 경험하는 문제’라는 점이 확인됐다. 일반동등대우법이 제정됐을 때, 많은 독일인이 이 법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부 소수 그룹을 위한 법률이라고 인식했던 것과 대비되는 결과다. 설문조사 응답자의 3명 중 1명이 지난 2년간 한 가지 또는 그 이상의 사유로 일반동등대우법상 차별을 경험했고, 그중 절반이 고용 영역에서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차별을 경험한 응답자 10명 중 6명은 차별에 대응했다고 답했다. 1992년 장애인 차별금지법을 도입한 오스트리아의 경우 도입 초기인 1994년 연간 1,200건에 달하던 피해 진정이 도입 후 10년 뒤인 2002년에는 500건으로 감소해 법의 효과성이 입증됐다. 지난 2010년 평등법을 제정한 영국은 2012년에 기업, 단체들을 대상으로 평등법 실행에 대한 평가를 실시했다. 그 결과 평등법 시행 이후 많은 조직에서 지난 2년간 일터에서의 평등 이슈에 대해 좀 더 의식하게 됐다고 응답했다.  

미국의 차별금지법에 해당하는 민권법은 인종, 피부색, 성, 출신 국가, 종교를 이유로 하는 고용상의 차별을 금지한다. 다만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차별은 허용하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합리적으로 차별이 인정되는 기준은 까다롭다. 단순히 사업상의 편의는 합리적인 이유로 인정되지 않고 이를 넘어 업무의 본질에 있어 필수적인 요건이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의 한 교도소에서 기존의 여성 교도관만으로는 늘어나는 여성 수감자의 몸수색 업무를 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남성 교도관에게 이를 맡겼다. 성폭행 신고가 급증했고, 곧바로 여성 교도관을 늘리기로 결정하고 110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이를 두고 교도관 노동조합이 지원자의 성별을 여성으로만 한정한 것은 민권법의 성별로 인한 차별 금지 조항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항소 법원은 프라이버시, 즉 여성 수감자들의 사생활 보호 문제와 안전상의 문제를 들어 충분히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주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물론 차별금지법이 능사는 아니다.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편견을 해결해줄 수 없고, 모든 심사가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차별금지법 제정은 다양한 차별 행위 중 무엇이 합리적인 차별이고 무엇이 부당한 차별인지를 정립하고 그러한 판단을 내리는 데 있어 따져야 할 다양한 요소를 정리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관행으로 받아들여져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비합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차별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시정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 

  • 영화 <캐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서로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 ‘테레즈’(루니 마라 분)와 ‘캐롤’(케이트 블란쳇 분)의 사랑 이야기. 이혼 중인 여성 캐롤과 남자친구와의 무미건조한 연애를 이어가던 테레즈의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 BBC 아메리카·왓챠 <킬링이브>

    첩보 요원이 되고 싶은 일개 정보국 직원 ‘이브’(산드라 오 분)와 사이코패스 킬러 ‘빌라넬’(조디 코머 분)의 이야기를 담은 코믹 추격전. 남성의 전유물로 여겼던 기존의 스파이물에서 벗어나 두 여성을 중심으로 친밀하고도 탄탄한 서사를 그려냈다.  

  • 영화 <벌새>

    1994년을 배경으로 14살 중학생 ‘은희’(박지후 분)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자신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 가부장적인 가정에서의 불합리한 일을 담백하게 조명한다. 이 세상의 모든 은희, 즉 당대를 살아낸 여성들에 대한 위로이자 앞으로 나아가야 할 세상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

    내가 당한 차별, 내가 무심코 행한 차별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드는 작가 김지혜의 에세이. 베스트셀러로 오른 바 있다. 성별, 장애, 나이, 종교 등 사회에 다층적으로 존재하는 차별에 대해 이야기한다.  

  •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귀족 ‘엘로이즈’(아델 에넬 분)가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멜랑 분)에게 결혼 초상화를 의뢰하면서 벌어지는 일. 그림을 매개로 만났지만 점차 서로에게 빠져드는 두 사람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렸다. 사랑의 기억과 서로에게만큼은 진심일 수 있는 두 여성의 아름다운 로맨스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 책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게>

    익숙하지만 낯선 존재인 것처럼 치부되는 장애인. 이 책은 장애인의 인권과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존엄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필요한 부분을 짚고 공생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한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연주, 박현구(프리랜서)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CGV아트하우스, 왓챠, 그린나라미디어(주), 네이버책,
참고도서
<선량한 차별주의자>
2021년 12월호
2021년 12월호
에디터
김연주, 박현구(프리랜서)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CGV아트하우스, 왓챠, 그린나라미디어(주), 네이버책,
참고도서
<선량한 차별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