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숙한 분위기가 감돌던 국회에 유모차가 등장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32세)은 지난 7월 생후 2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자신의 일터인 국회로 향했다.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던 그녀의 품에는 아이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이날 용혜인 의원은 출산 전 대표 발의한 일명 ‘국회 회의장 아이동반법’(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의 통과를 촉구했다. 국회 회의장 아이동반법은 24개월 이하 자녀를 둔 남녀 국회의원이 불가피한 이유로 아이를 돌봐야 할 때 본회의장에 동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아이를 안고 법안의 필요성을 말하는 그녀는 단호했지만 본보기로 아이와 함께 국회 출근을 결정하기까지 두려움이 컸던 게 사실이다. 태어난 지 갓 50일이 지난 아이와 첫 외출을 앞두고 머릿속에 그려뒀던 시뮬레이션을 수없이 반복했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트림을 시킨 뒤 출근길에 올라 의원실로 향하기까지의 모든 일이 아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의 이목이 집중되는 국회에 간다는 사실보다 아이와 함께 세상에 첫걸음을 뗀다는 데 대한 공포감이 컸다. 하지만 용혜인은 일과 육아라는 두 가지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포기해야만 하는 여성들의 생애를 당연하게 여기는 시대가 끝나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아이를 일터에 데리고 가는 게 흔한 일은 아니죠.(웃음) 현재 민간 기업에서는 아이와 직장에 동행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 않지만, 국회는 아이를 동반할 수 없도록 금지해요. 이는 사회에 대한 현안을 다루는 국회에서 정작 아이를 키우는 여성에 대한 의식 제고가 부재한 상황이라는 뜻이기도 해요. 저는 의정 활동을 하는 국회의원인 동시에 아이를 돌봐야 하는 엄마예요. 일과 육아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이 필요하고 두 가지 중 하나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이와 함께 국회로 갔어요.”
용혜인 의원이 아이를 안고 공식 석상에 선 사진이 전파를 타자 대중은 즉각 반응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는 것을 안다는 공감과 지지의 목소리가 컸지만 단지 보여주기에 급급한 퍼포먼스라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용기와 다짐으로 이뤄냈던 아이와의 첫 출근을 마친 그녀는 하루를 곱씹으며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결코 달갑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줄 알았던 행동에 예상치 못했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고 기사에 달린 수많은 댓글 중에는 ‘직장에 왜 아이를 데리고 나오냐’는 말들이 있었다. 이를 본 용혜인 의원은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어렵다는 여성들의 성토가 타인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적으로 출생률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는데 아이를 낳아 키우는 책임은 여전히 개인이 짊어지도록 해요. 어린아이를 둔 엄마들을 보는 사회의 시선은 어떤가요? 냉정하기만 합니다. 물론 아이가 어릴 때부터 사람들과 함께 사는 방법, 타인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 방법을 교육해야 하지만 이를 학습하기까지 시간이 걸려요. 어떻게 보면 불편함을 느끼면 울고, 걷거나 뛰고 싶은 충동이 들면 행동하는 게 아이들의 특징인데 세상은 엄마를 탓하기 급급하죠. 달갑지 않은 시선에 상처를 입은 엄마들은 위축되고 결국 외출을 꺼리게 돼요. 상황이 악화되면 사회와 단절한 채 우울증을 겪기도 하고요.”
저는 의정 활동을 하는 국회의원인 동시에 아이를 돌봐야 하는 엄마예요. 일과 육아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이 필요하고 두 가지 중 하나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이와 함께 국회로 갔어요.
워킹맘도 ‘운’이 있어야 될 수 있다
지난해 제21대 국회의원 비례대표로 선출되면서 여의도 정치에 발을 들인 용혜인 의원. 국회 안에서 한 손에 꼽히는 90년대생 청년 정치인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지만 그녀에게 정치는 수단일 뿐이다. 용혜인 의원은 정계 입문 전 사회운동을 이어오면서 세상을 바꾸는 일에 대한 갈증을 느꼈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국가 시스템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자리 자체를 찾지 못해 소외되는 이들까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기본소득’을 실현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뜻을 함께할 사람을 모았고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규탄하는 사회운동인 ‘가만히 있으라’를 계획하고 행동하면서 필요한 곳에 힘을 보탰다.
자타 공인 ‘생활 밀착형 정치’로 수를 둔 용혜인은 시대의 흐름을 읽고 변화에 발맞춰 정치가 기능해야 한다고 믿는다. 사각지대가 존재하지 않는 복지제도의 필요성, 만연한 차별을 법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골자의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에 주력하는 데에도 민생에 대한 용혜인 의원의 마음이 녹아 있다. 모두가 살 만한 세상, 정치라는 권력이 필요한 곳에 쓰여야 한다는 사실을 늘 유념하는 그녀다.
“정치인의 생명은 나이가 아니라 감각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요. 시대의 변화와 사회에 필요한 부분을 읽지 못하는 순간 정치인으로서 생명이 끝나는 거죠. 코로나19로 일자리가 줄어들었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또 일터에 정착하지 못하고 실업급여로 연명하는 이들이 역대 최대 수치를 기록했다는 기사가 매달 나오는 상황이죠. 국민의 삶이 힘들어지고 있다는 건 국가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해요. 이는 시대의 변화를 가장 먼저 수용하고 바뀌어야 하는 게 정치라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죠.”
용혜인 의원이 소속된 기본소득당의 이름은 거창하기만 한 정치적 대의에서 벗어나자는 당 구성원들의 염원이 담겼다. 국민의 삶과 직결된 정치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포함하고 당이 대표적으로 추진하는 의제인 기본소득을 실현하겠다는 포부까지 더한 것이다.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는 소득이다. 기존에 존재하는 연금, 실업급여 등 일자리를 중심으로 이뤄졌던 소득 제도에서 소외된 이들까지 모두가 받을 수 있도록 한다.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을 언급했던 초기에는 여야를 막론하고 비판이 이어졌다. 누군가는 노동이라는 신성한 가치를 훼손한다고 말했고, 다른 누군가는 경제 논리에 어긋난다고 삿대질했다.
하지만 차기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기본소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핵심 공약으로 내걸면서 각광받는 의제로 거듭났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발생한 일자리 문제, 경제 불황에 따라 새로운 소득의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더해지는 상황이다.
“처음에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이야기했을 때는 모두가 입을 모아 유토피아적 발상이라고 했어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말이 있는데 시대에 맞지 않는 명제라고 생각해요. 코로나19를 비롯해 4차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사람의 노동이 필요하지 않은 부분이 점차 늘어나 일자리에 문제가 발생했어요. 요즘 세상에 누가 굶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지만 경제 상황 악화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아사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게 현실이에요. 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회가 되면서 노동자 중심으로 이뤄졌던 각종 복지제도를 손봐야 하는 시점이 된 거죠. 그런 의미에서 기본소득은 필연적인 제도라고 생각해요.”
용혜인 의원이 주력하는 의정 활동에는 엄마와 아빠를 위한 법안이 다수 포함됐다. ‘국회 회의장 아이동반법’, ‘육아엄빠 연차휴가 보장법’ 등이 그것이다. 그가 추진하는 육아 관련 법안의 대상은 엄마가 아닌 부모다. 일과 육아의 균형은 엄마와 아빠가 함께 맞춰가야 한다는 데서 출발했다.
용혜인 의원 부부는 남편이 육아휴직을 낸 뒤 가사를 도맡고 있다. 아내 용혜인의 의정 활동을 존중한 데 따른 결과다. 용혜인은 이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상황을 ‘운이 좋아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 아빠의 육아휴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곳이 많지 않을뿐더러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공고한 고정관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출산 후 복직해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데도 운이 필요해요. 친정이나 시가 식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되거나 남편이 육아휴직을 쓸 수 있어야 하죠. 저 같은 경우에는 남편이 같은 당에서 일하고 있어 남편의 육아휴직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지만 보통 아빠가 육아휴직을 사용한다는 건 꿈같은 이야기나 다름없죠. 출산한 여성을 일터로 보내는 제도는 있는데 남성을 가정으로 보내는 제도는 없어요. 임금격차에 대한 문제를 풀고 남성이 가사에 힘쓸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보통 아빠가 육아휴직을 사용한다는 건 꿈같은 이야기죠. 출산한 여성을 다시 일터로 보내는 제도는 있지만 남성이 가사에 보탬이 되도록 만드는 제도는 없어요. 남성이 가사 분담을 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해요.
소수도 소외도 없는 정치
그녀가 사회의 사각지대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난으로 교통비 3,600원이 없어 등교하지 못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단다. 한평생 가정과 사회의 요구에 맞춰 살았던 부모님이었기에 재기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었지만 부모님을 위해 국가가 해준 일은 없었다. 먹고사는 일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던 용혜인 의원은 성인이 된 이후 진로를 결정할 때 안정적이라고 알려진 공무원 시험에 도전했다. 하지만 2014년 언론 보도를 통해 세월호 참사를 목격했고 무력감에 빠졌다. 용혜인 의원은 당장 안정적인 자리를 찾아 제 몫을 해내면서 사는 삶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국민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빠져나올 수 있도록 기능하는 게 국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보고 겪어온 국가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더라고요.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졌을 때 집이 있다는 이유로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비통했어요. 아직도 당시에 느꼈던 좌절감과 회의감이 선명해요. 그리고 하루아침에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이대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세상을 바꿔야만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해졌던 계기예요.”
용혜인 의원이 국회에 입성한 지 1년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4년의 임기 중 절반이 지났지만 처음으로 국회의 문턱을 밟고 들어섰던 날에 다짐했던 일들은 잊은 적이 없다. “왜 정치를 하는가?”라는 물음에는 언제나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원하기 때문”이라는 답이 먼저 떠오른다는 그녀다. 훗날 정치를 위해 정치를 하는 날이 오면 누군가 문제점을 지적하기 전에 먼저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말하면서 항상 마음을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경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제가 위대한 힘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세상을 바꾸는 일에 함께하고 싶어요. 누군가는 ‘어떻게 세상을 바꾼다는 소리냐’며 코웃음을 칠 수 있는데 역사를 돌아보면 세상이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늘 있었고 같은 마음이 모여 변화를 가져왔거든요. 100년 전까지만 해도 신분이 없는 사회가 올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거예요. 가능하지 않다고 하는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게 제가 생각하는 정치고, 의정 활동의 방향성이에요. 이름이 아닌 성과가 남는 정치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제보다 나은 오늘, 그 힘으로 더 좋아질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정치. 용혜인 의원이 말했듯 역사는 수많은 오늘이 모여 발전해왔다. 그늘이 없는 사회를 갈망하는 정치인 용혜인 의원이 만들어낼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