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이제 한풀 꺾였다. 집에서 주안이랑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냉동실 문을 열었다. 아뿔싸! 날씨 때문일까? 사두었던 아이스크림이 똑 떨어졌다. 나는 장난으로 주안이에게 "주안아! 집 앞에 자주 가는 편의점 알지? 거기 가서 아이스크림 몇 개만 사 와"라고 말했다.
주안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아빠는 언제부터 혼자 다녔어?"라고 질문했다. 오!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내가 어떻게 혼자 갔다 오냐" 또는 "같이 가자"는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말이 나왔다.
여차저차 대화를 마무리하고 주안이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나는 주안이의 생각이 궁금해서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주안이는 아빠가 몇 살 때부터 혼자 돌아다녔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중학생이 된 후부터 혼자 다닌 것 같다고 답했다. 당시 집에서 학교가 멀어서 입학 초에는 친구 무리의 부모님들이 돌아가면서 자동차로 등하교를 시켜주셨는데,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등하교했다. 어느 날엔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기도 했고, 대중교통으로 40~50분이 걸리는 교회도 혼자 다니기 시작했다고 말해줬다.
내 이야기를 들은 주안이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나도 3년 뒤에 혼자 다닐 수 있어?"라고 물었다. 그러더니 곧바로 "지금 혼자 사촌 동생 집에 갔다 와볼게. 학원 수업을 취소해줘"라는 게 아닌가. 아들의 말이 진심인 것 같기도 했지만 학원을 가기 싫은 생각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최근 나는 아들이 어떤 말을 해도 믿기로 다짐했기 때문에 차분하게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주안이가 혼자 갈 수 있다는 걸 아빠도 충분히 알지만 주변에 위험한 것이 많아서 아직은 안돼"라는 말을 시작으로 이유를 설명했다. 자동차가 위험하고, 어린이가 혼자 다니면 주변 어른들이 걱정하고,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등등 여러 이유를 말하자 주안이는 "나도 아직은 쪼~금 무서울 것 같아"라고 답했다.
어찌나 귀엽던지. 그러면서 몇 년 뒤 주안이가 처음으로 혼자 돌아다닐 때, 내가 멀리서 티 나지 않게 따라다니면서 봐주기로 약속하고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주안이와 나는 다른 세대지만 비슷하게 성장하는 것 같다. 나도 어머니에게 "언제부터 혼자 다닐 수 있을까?"라고 물으며 혼자 다니는 것처럼 느껴지게 어머니는 멀리 떨어져 걸어오라고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내 아들도 그때의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나이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이 느껴진다. 항상 품 안에 안고 다니던 이 귀여운 녀석이 어느새 이렇게 자랐다는 것이 감사하면서도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들과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밝고 건강하게 자라는 아들에게 더없이 감사하고, 그런 아들이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다.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지난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주안이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