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거닐기 좋은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가을 숲만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여름에 만들어진 열매가 싱그럽게 성숙되는 계절입니다.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자라는 열매들이 점차 익어가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죠. 가을은 식물들이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추운 날씨에 살아가기 어려운 자연이 스스로 잎을 떨어뜨리는 것이죠. 신기한 것은 동물과 식물의 상관관계입니다. 동물도 날이 점차 쌀쌀해지면 동면을 준비하는데 각종 식물이 퍼뜨리는 열매로 겨울을 버틸 먹이를 충당합니다. 인간과 동물, 동물과 식물 등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이 서로 얽혀 도움을 주고받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가을 숲의 볼거리를 소개해주세요. 각종 열매와 단풍입니다. 또 가을에만 피는 꽃과 풀들을 볼 수 있어요. 푸른 잎이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변하는 나무, 들판에 핀 꽃이 가을만의 볼거리입니다. 많은 이들이 아는 코스모스가 대표적인 가을꽃이고 이를 포함해 국화과가 가을에 많이 핍니다. 여름 꽃으로 알려진 해바라기도 가을까지 꽃이 핍니다. 또 계란꽃이라고 불리는 개망초도 이 계절에만 볼 수 있는 꽃이죠. 단풍, 꽃들을 시원한 날씨에 만끽할 수 있는 게 가을입니다.
‘숲 해설계의 아이돌’이라고 불리는데 작가님이 숲을 사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전라북도 임실 출신으로 자연 속에서 성장기를 지냈어요. 산과 풀이 많은 지역이라 어린 시절부터 나무와 풀들을 보면서 자랐죠. 어린 시절의 좋은 기억을 떠올리면 산에서 친구들과 나무에 열린 열매를 따 먹고 흙으로 장난을 치던 순간이 먼저 떠오릅니다. 또 성인이 된 뒤에 애니메이션 영화를 봤는데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에 푹 빠지게 됐어요.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를 스스로 찾아보는데 작가가 자연주의 성격을 가졌더라고요. 헤아려보니 제가 흥미롭게 읽은 책들도 자연과 관련된 책이었죠. 그때부터 식물, 숲, 생명 등 자연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꿈을 갖게 됐고 생태만화가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숲으로부터 위안을 얻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매번이요. 저뿐만 아니라 숲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사람들도 산책을 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평균 41%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숲에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치유되는 것이죠. 또 식물이 가진 생명력을 인간사에 접목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삶의 이치를 깨닫기도 해요. 언뜻 보기에는 비슷해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풀의 모양, 이파리의 개수 등이 저마다 달라요. 다양성이 존재하는 거죠. 속세에서는 다름이 틀림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은데 숲이라는 공간에서만큼은 다름이 다양함, 조화로움으로 공존한다는 게 신기해요. 어느 날 한 나무에 새살이 돋아난 것을 보고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고 새살로 덮는 게 참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살아가면서 받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존재는 타인이 아닌 자신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매번 숲을 찾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는데 도심에서 대신할 수 있는 숲 가운데 추천할 만한 데가 있나요? 남산이요. 남산 도서관 부근에 메타세쿼이아 몇 그루가 있는데 장관이에요. 또 계수나무 숲이 있는 구간이 있는데 가을이 되면 솜사탕 냄새로 가득해요. 단풍이 드는 시기에는 단 향과 함께 나뭇잎이 형형색색으로 치장해 아름다워요. 이 계절에 남산의 정상에 올라가면 느티나무가 단풍으로 물든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가장 좋은 숲이 어디냐”묻는 질문에는 항상 가까이에 있는 숲이 좋다고 말해요.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나온다고 알려진 편백나무가 울창한 장소는 전국에 몇 군데 없어요. 한 번 찾아가서 듬뿍 마시는 것보다 매일 찾아갈 수 있는 동네 공원이나 숲에서 자주 마시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요.
플로깅, 명상 등 숲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맞아요. 특히 치유를 목적으로 숲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죠. 숲 해설가를 양성하는 과정에서 여러 분야를 선택할 수 있는데 과거에는 숲길 안내자가 되기를 바라는 이들이 많았다면 지금은 산림 치유자 과정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아요. 위안과 치유를 목적으로 숲을 방문하는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이죠. 숲이라는 공간에 들어서면 세상과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마음이 복잡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무성한 풀과 나무, 속세의 소리가 아닌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그동안 정리하지 못한 번뇌를 곱씹고 힘을 얻는 거죠.
작가님이 가장 추천하는 놀이는 무엇인가요? ‘나무 친구 만들기’입니다. 숲에 있는 나무 가운데 한 그루를 친구로 정한 뒤 이름을 붙여주고 힘든 순간에 나무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는 거죠. 나무는 항상 제자리에 있어요. 내가 찾아갔을 때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존재입니다. 어린이들과는 ‘흙 케이크 만들기’를 해요. 과거와 달리 요즘 학교 운동장, 놀이터 등에서는 흙을 만지기 어렵거든요. 흙은 자연에서 식물의 생명을 지탱하는 큰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면역력에 좋은 균이 있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흙을 직접 만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함께 갓 돋은 새싹이나 새끼 곤충을 찾아 자연에도 생명이 시작된 ‘생일’이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케이크를 만들고 함께 축하 노래를 불러주죠. 또 생명을 다한 나무를 얇은 두께로 잘라 잘게 쪼개 ‘나무 퍼즐 만들기’를 해요. 오롯이 스스로의 힘으로 장난감을 만드는 경험을 통해 창의력을 기르고 성취감을 얻게 하는 데 목적이 있어요.
작가님에게 숲은 어떤 존재인가요? 제2의 고향 집이죠. 숲은 언제 찾아가도 따뜻함과 정이 느껴지는 공간이에요. 특히 숲에서 얻은 에너지는 일상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됩니다.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든든하게 먹은 느낌이랄까요? 매일 찾아가긴 힘들지만 마음이 답답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숲이에요.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숲길을 산책하는데 영감이나 아이디어가 샘솟아요. 복잡했던 마음도 자연스럽게 치유되고요. 저에게 가장 명쾌한 해결안을 제시해주는 게 숲입니다.
황경택 생태만화가
생태 놀이 코디네이터이자 생태 만화가. 또 숲 해설가로 활약하면서 다양한 연령층에 숲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직접 보고 듣고 만지는 체험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