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주> <그것만이 내 세상> <사바하> <타짜: 원 아이드 잭>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에 출연하며 어느새 충무로 원톱 주연으로 자리 잡은 박정민이 올 추석 극장가 출격을 앞두고 있다.
영화 <기적>은 오갈 수 있는 길은 기찻길밖에 없지만 정작 기차역이 없는 마을에 간이역 하나 생기는 게 유일한 인생 목표인 ‘준경’(박정민 분)과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박정민은 극 중 4차원 수학 천재 준경으로 열연해 몰입도를 높인다. 준경은 언제 기차가 올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상황에도 다른 길이 없어 철로로 오갈 수밖에 없는 마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기차역을 세우려고 하는 인물이다.
애초, 박정민은 고등학생을 연기해야 하는 부분에서 출연을 망설였지만 연출을 맡은 이장훈 감독과 미팅 후 출연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감독은 소지섭·손예진 주연의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2018)를 연출한 바 있다. <기적>에는 박정민 외에도 이성민과 임윤아가 출연한다. 화상 인터뷰를 통해 박정민을 만났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보고 많이 울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극 중 준경이 처한 상황에 많은 관객이 공감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는 기차역을 세우려고 노력한 적은 없지만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나. 그 길에는 항상 장애물이 있다. 그걸 고민하는 부분에서 마음이 움직였다.
앞서 언급한 ‘꿈’은 무엇인가? 애초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영화감독이 아니라 배우가 되고 싶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배우가 되는 게 유일한 꿈이 됐다. 어떻게 하면 배우가 될 수 있을지를 많이 고민했다. 그 고민은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다. 아직도 나는 누가 시키지 않는 이상 “배우 박정민입니다”라는 말을 못 하겠다. 언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싶다. 그렇게 되기를 꿈꾼다.
실제 고등학생 박정민은 어떤 학생이었는지 궁금하다. 사춘기가 늦게 와서 과도기를 겪었다. 중학생 때까진 존재감 없는 조용한 학생이었는데 언젠가부터 나도 인기 있는 학생이고 싶었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에 외향적으로 바뀌었다. 축제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춤추고 랩도 했으며, 영화를 찍어 상영도 했다. 공부 빼고 학교의 모든 일을 다 챙기는 학생이었다.(웃음)
간이역을 만든 준경처럼, 간절해서 이뤄진 기적 같은 일이 있나? 그 과정에 있는 것 같다. 물론 중간중간 작은 기적이 일어나서 행복할 때도 많았다. 그런 기적들이 일어나길 바라면서 지내고 있다. 대학에 합격했을 때, 배우로 데뷔했을 때 그 과정에서 좋은 분을 많이 만난 것도 모두 기적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준경 캐릭터와 실제 모습의 싱크로율도 궁금하다. 성격적인 부분에서 비슷한 점이 있다. 고집도 어느 정도 있고 무모한 면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준경보다는 순한 편이다.(웃음)
극 중 준경은 이사 가기 싫어서 혼자 집을 지킨다. 살면서 고집스럽게 행동했던 적이 있나? 부모님과 같이 살기 싫어서 고집스럽게 행동했던 적이 있었다. 결국 나와서 살고 있다. 내 성격이 하나에 꽂히면 꼭 해봐야 하는 성격인 것 같다.
팬데믹 시기에도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 꾸준히 출연하고 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뭔가를 할 때 재미있다. 그게 원동력이다.
<기적> 촬영 현장이 아주 훈훈했다고 들었다. 큰소리 한번 나지 않는 촬영장이었다. 여러 사람이 있으면 한 번쯤 큰소리가 날 법한데 얼굴 붉히는 일 없이 서로 존중하며 재미있게 촬영했다. 함께 출연한 이성민 선배가 권위 있는 모습이 아니어서 덕분에 모두가 편했다. 좋은 추억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기적> 속에는 추억에 빠질 법한 레트로 소품이 종종 등장한다. 기억에 남는 아이템이 있나? 예전에 정수기처럼 누르면 쌀이 1인분씩 나오는 쌀통이 있었는데, 그게 촬영장에 있었다. 엄청 반가웠다.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와 비디오 플레이어도 반가운 아이템이었다.
평소 좌절할 일이 있을 때는 마인드컨트롤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자포자기 혹은 심기일전? 둘 중 고르자면 자포자기에 가깝다. ‘할 수 있어’라는 마음보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힘들어하다 후회한들 변하는 것은 없으니까 하던 일을 계속하는 스타일이다.
극 중에서 준경은 아버지에게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해서 아버지와 사이가 서먹했는데, 실제로는 어떤 아들인지 궁금하다. 굉장히 무뚝뚝한 아버지와 아들이다. 대화다운 대화를 거의 나누지 못했다. 마음은 안 그런데 많이 부딪쳤던 것 같다. 뒤돌아서면 후회하지만 실천하는 게 쉽지 않다. 살가운 아들이 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내가 갑자기 변하면 아버지가 걱정하실까 봐 예전보다 안부 전화를 자주 드리는 정도다.(웃음)
함께 출연한 걸 그룹 ‘소녀시대’ 출신 배우 윤아 씨의 엄청난 팬이라고 들었다. 촬영하며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우리 나이 또래 남자들은 모두 ‘소녀시대’ 팬이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윤아 씨를 만났을 때 어색하진 않았다. 윤아 씨가 워낙 성격이 좋아 급속도로 친해졌다. 덧붙이자면, 예전부터 윤아 씨에 대한 좋은 얘기를 많이 들었다. 실제로 만나보니 환상이 아니라 진짜였다. 인간적인 사람이어서 다가가기 쉬웠다.
<기적>은 극 중 인물들에게 각자만의 기적을 선사한다. 이 작품을 만나 일어난 변화나 기적이 있나? 이 작품을 만나고 크게 변했다. 나는 늘 무언가를 혼자 해내야 하는 성격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남의 도움을 받는 방법을 몰랐다. ‘내가 잘해야지 남이 도와줘서 잘하면 무슨 소용이야’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만나고 내가 살고 있는 동굴에서 한 발짝 빠져나왔다. 나는 내 세계가 깊은 사람인데, 그걸 벗어나게 해준 이 영화가 고맙고 사랑스럽다. 그래서인지 현장에서 고맙다는 말을 참 많이 했다. 그게 기적이다.
영화 한 편으로 자신만의 깊은 세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니 놀라운 경험인 것 같다. 감독님의 영향이 컸다. 감독님과 나는 비슷한 면이 많은데 다른 면도 많다. 감독님 말씀이 되게 멋진 어른이 해주시는 말씀같이 딱딱 꽂혔다. 35살밖에 안 된 배우가 영화 한 편을 책임지겠다고 땅굴 파고 들어가서 스트레스 받고, 또 정답을 찾으려고 하는 모습이 속상하셨는지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를 만나고 유쾌해졌다. 그리고 다음 현장에선 더 유쾌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는 나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느꼈다. 당연한 사실인데 잊고 있었다.
<기적>을 홍보하면서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인기 코너 ‘한사랑 산악회’에도 출연했다. 반응이 뜨거웠다. 내가 홍보팀에 먼저 제안했다. 제일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이 <피식대학>인데, 결국 내 욕심을 채운 것도 있다. 막상 촬영해보니 너무 재미있어서 더 팬이 됐다. 개봉이 밀려서 미안한 마음에 그분들을 따로 찾아뵙기도 했다. 열정! 열정! 열정!
최근 주목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면? 너무 많은데, <정영진 장항준의 편의점 클라쓰>와 <아싸 최우선>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즐겨 보고 있다. 후자는 ‘아싸’의 전형을 보여주는 채널인데, 너무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