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이 모여 자녀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가 있다.
“아이 성향이 문과야, 이과야?”
아이가 중학생쯤 되면 문과인지, 이과인지 빨리 파악하지 못한 부모들은 조바심이 난다. 아이가 명확히 말해주지 않거나 특징이 분명히 보이지 않으면 진로를 찾는 일이 어려워질까 봐 강박에 시달리는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아이를 문·이과로 재단하려는 제도가 오히려 아이의 미래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창의·융합형’ 교육이 등장했다. 그 결과 올해부터는 문·이과 구분 없는 통합형 수능을 치르게 됐다. 걱정과 기대감이 반반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문·이과 통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도달해야 하는 아이의 미래에 대한 목표 설정이다. 문·이과 구별이든 통합이든 스스로 해내고 싶은 목표가 있어야 그 과정이 더 큰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닐까?
목표가 없다는 학생이 너무 많다.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대학생도 부지기수다. 무조건 시키는 대로 끌려가다 보니 스스로 목표를 세우거나 성취해본 경험이 적은 것이다. 목표를 세워 성취하는 일도 훈련이 필요한데, 무엇보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도 과정의 목표 설정과 성취가 반복되는 연습이 필요하다. 매일 하는 공부니까 오늘은 대충 이만큼만 한다거나 시간이 되는 데까지만 한다거나 안 되면 내일 해야지 하는 등 목표 설정이 모호하면 그 결과물 역시 분명하지 않다.
아이들이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나는 각자의 목표를 적는 노트를 한 권씩 준비했다. 그리고 아침 출근 전, 식탁에 둘러앉아 아이들과 각자의 노트를 펴서 날짜를 쓰고 자신의 목표를 적었다. 오늘 하고 싶은 일이나 해야 하는 일을 하나씩 열거하고 거기에 맞는 목표치를 스스로 정하게 했다.
엄마의 오늘 목표는 ‘점심시간에 빨리 밥 먹고 30분 산책하기’ ‘집에 오면 자기 전에 영어 테이프 30분 듣기’ ‘저녁 먹고 보드게임 1시간 함께하기’ 같은 식이다. 아이들도 각자의 노트에 하루 목표를 정했다. ‘학습지 5페이지 하기’ ‘게임 20분만 하기’ ‘학원 다녀와서 숙제 빨리하고 친구랑 1시간 놀기’ ‘영어책 10페이지 읽기’….
아이들에게 지킬 수 없는 무리한 분량은 적지 못하게 했다. 실천할 수 있을 만큼 적는 것이 목표였다. 그리고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나면 아이들과 해낸 일과 하지 못한 일을 체크했다. 성취하지 못한 일은 다른 색 펜으로 표시해 다음 날로 넘기거나 일주일 동안 다른 시간에 해결할 수 있도록 정리했다.
노트에 보이도록 하나하나 적어놓으니 빠질 일도 없었고 무슨 일을 했는지 일주일 치의 성과도 보였다. 주말이면 다 같이 둘러앉아 노트를 펼쳐 스스로 체크했다. 이뤄낸 일에 대해서는 원하는 것으로 충분히 보상해주었다. 좋아하는 캐릭터나 만화책을 사준다거나, 아니면 토요일에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게 해준다거나 다소 과해도 원하는 걸 기념으로 제공했다.
목표 노트 체크는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좀 귀찮은 듯해도 목표 달성에 따른 보상이 제때 제대로 이뤄진다면 규칙적인 속도감이 붙는다. 목표와 계획을 갖게 할 때는 실천할 만큼의 목표를 정하도록 해야 스트레스가 없다. 처음에는 조금 여유 있게 목표량을 설정해 실천 뒤 보상을 얻는 재미를 알게 해주는 것도 좋다.
스스로 세운 목표를 스스로 실천해 보상을 얻게 되면, 다음 목표를 세워 실천할 때 집중도가 달라진다. 중학생 때부터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성취욕의 근성을 길러야 오래도록 공부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이때 목표 노트를 이용하면 꽤 효과를 볼 수 있다.
글쓴이 유정임
MBC FM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작가 출신으로 현재 부산·경남 뉴스1 대표로 근무 중. 두 아들을 카이스트와 서울대에 진학시킨 워킹맘으로 <상위 1프로 워킹맘>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