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딘딘(본명 임철)과 슬리피(본명 김성원)는 힙합이라는 공통분모로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됐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이들은 8살 나이 차에 개의치 않고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끈끈한 관계가 됐다. 오늘, 내일, 모레, 한 달 뒤까지 텅 빈 스케줄러를 보면서 "꾸준히 작업하다 보면 언젠가 잘될 거다"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면서 점차 가까워진 것.
지난한 시간 끝에 두 사람은 각자의 무대에서 인지도를 높였고, 말끔한 차림으로 같은 시상식에 참석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여기에 화제성을 입증한 유튜브 콘텐츠 <네고왕 3>의 동반 MC로 발탁되면서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됐다.
두 사람은 8년 전 술잔을 앞에 두고 오갔던 바람이 하나씩 이뤄지고 있는 오늘이 신기하고 벅차기만하다. 언제까지나 강렬하고 유쾌하게, 그리고 위트를 잊지 않는 딘딘과 슬리피의 이야기.
'배드 캅'과 '굿 캅'의 조화
화제의 유튜브 콘텐츠 <네고왕 3>의 동반 MC로 활약하고 있다(<네고왕> 시리즈는 진행자가 프랜차이즈 기업을 상대로 음식, 물품 등의 가격을 협상해 일정 기간 할인된 가격으로 누릴 수 있게 만드는 내용의 유튜브 콘텐츠다. 시즌 1에선 가수 겸 방송인 황광희가, 시즌 2에선 방송인 장영란이 진행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딘딘 <네고왕 3> 출연 제의가 왔을 때 슬리피 형과 가장 잘 어울리는 방송이라고 생각했다. 방송에서 자신의 경제적인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슬리피 형과 가격 협상이라는 방송의 포맷이 섞이면 또 다른 재미가 탄생할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실제로 촬영을 해보니 정신은 좀 사납지만 잘하더라.
슬리피 딘딘이 "좋은 소식이 있다"고 말해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네고왕 3> 고정 출연 제의를 받았다고 하더라. 화제성이 큰 방송에 캐스팅된 것 자체가 영광인데 고정 출연이라고 해서 '이제 좀 풀리려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해 얼떨떨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평소 절친인 딘딘과 함께 하는 방송이라서 의미가 남달랐다.
전 시리즈 MC였던 황광희, 장영란의 활약이 뛰어나서 부담감이 있었을 거 같다.
딘딘 무조건 잘해내야만 하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슬리피 형을 믿었다. 형의 삶 자체가 네고의 연속이지 않나.(웃음) 형이 기업의 대표와 만나 협상하는 과정에서 내가 약간의 진행을 더하면 충분한 그림이 나올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슬리피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오히려 촬영하면서 부담감이 생겼다. 시청자의 요구 사항을 최대한 수용해야 한다는 마음이 커진 거다. 전 시즌과 비교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촬영하면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고 한다.
두 사람이 동반 캐스팅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딘딘 슬리피 형과 나의 케미인 것 같다. 또 슬리피 형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솔직하고 재치 있게 표현해 현실적인 네고를 보여주는 그림을 예상했다고 생각한다.
슬리피 시즌 1과 2에서 각각 남자와 여자가 진행을 맡았으니 시즌 3에서는 두 사람이 진행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주려고 한 게 아닐까? 연예계에 수많은 절친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우리를 선택해주셨다니 감사하다.
<네고왕 3>만의 관전 포인트를 꼽으면?
딘딘 '굿 캅과 배드 캅(온건 경찰과 악질 경찰)'을 연상케 하는 협상에서 유발하는 재미가 있다. 슬리피 형이 기업 대표에게 물건을 공짜로 달라고 요구하는 배드 캅의 역할을 하면 나는 마지막에 조율하는 굿 캅의 역할을 한다. 형이 물건값을 터무니없을 정도로 깎아 기업의 대표를 혼란스럽게 만든 뒤 내가 선심 쓰듯 바라는 바를 말하는 게 우리만의 협상 방식이자 관전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시도해보고 싶은 네고가 있나?
슬리피 자동차에 관심이 많아 최초로 자동차업계와 네고를 해보면 재미있을 거 같다. 또 피부 미용에 관심이 생겨 피부과 네고에 대한 바람도 있다. 시술이 저렴해지면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기쁜 마음으로 피부과에 방문하지 않을까? 댓글이나 SNS 반응에 따르면 떡볶이 브랜드와의 네고를 기다리는 네티즌이 많다. 개인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보단 많은 이들이 원하는 네고가 성사됐으면 좋겠다.
딘딘 워낙 술을 좋아해서 주류 브랜드와 협상을 원했는데 세금 정책이 복잡하고 규제가 까다롭다고 하더라. 경제적으로 얽힌 부분이 많다 보니 네고 브랜드를 정하고 협상하기까지 과정이 굉장히 복잡하다. 모든 부분을 고려했을 때 대중이 좋아하는 브랜드와 실현 가능성이 있는 네고를 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업계에서 유일하게 술친구가 돼준 사람이 슬리피 형이에요. 매일 둘이 만나서 아침까지 술을 마시고 잠깐 잔 뒤에 다시 일어나 또 술을 마셨어요. 그게 우리 관계의 시작이었죠.
다르고도 같은 두 사람
두 사람이 처음부터 지금의 티키타카를 자랑한 건 아니다. 첫 만남부터 딘딘에게 조언을 한 슬리피, 그런 슬리피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딘딘. 서로에 대한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네고왕 3>에서 보여주는 모습만으로도 두 사람이 반대 성향을 가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슬리피는 행동한 뒤에 생각하는 '돌진형'인 반면 딘딘은 생각한 뒤에 행동하는 '침착형'이다.
두 사람이 어떻게 친해졌나?
슬리피 성격은 다르지만 힙합, 게임, 술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었다. 처음에는 딘딘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다. 나이가 8살이나 많은 무명의 형이 조언하는 게 듣기 싫었던 거 같다. 그래도 모바일 게임 <몬스터 길들이기>를 하면서 삽시간에 가까워졌다. 또 래퍼들이 술자리를 갖지 않는 분위기여서 자연스럽게 술을 좋아하는 두 사람이 모이게 된 것도 친해진 이유 중 하나다.
딘딘 업계에서 유일하게 술친구가 돼준 사람이 슬리피 형이다. 한창 만날 때는 매일 둘이 만나서 아침까지 술을 마시고 잠깐 잔 뒤에 일어나 다시 술을 마셨다. 그러던 중 번갈아가면서 한 번씩 방송 스케줄이 생기고,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방송에서 자리를 잡게 된 거다. 지금은 일터에서 만나는 날이 많다.
서로의 성장을 지켜본 돈독한 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슬리피 종종 딘딘과 함께 방송하는 순간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매일 술 마시고 게임을 하던 우리 둘이 하나의 방송을 함께 이끌어간다는 게 믿기지 않고, 멋있는 일 같다. 딘딘은 다방면에 재능이 있고 센스가 뛰어나다. 래퍼로 알려지기 전 <쇼미더머니 2>에 출전해 준결승에 진출할 정도로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았고, 선을 넘지 않는 유머와 센스로 방송에서 빛을 보고 있다. 연예인으로서 성공할 수밖에 없는 기질을 타고났다.
딘딘 그런가?(웃음) 같이 잘돼서 좋고, 형의 일이 잘 풀리는 모습을 볼 수 있어 기분이 좋다. 옆에서 본 슬리피 형은 매사에 열정적인데, 특히 음악 작업을 할 때 엄청난 에너지를 분출한다. 좋지 않은 결과가 눈에 보여도 끝까지 도전하고 성의를 다 하는 모습은 형의 강점이자 내가 배워야 할 점이다. 열과 성을 다하면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과정에서 배우는 게 있으니까 말이다.
슬리피는 최근 8년 연애 끝에 결혼을 발표했는데 소감은?
슬리피 많은 분에게 축하를 받았다. 소속사에서 독립한 뒤 홀로 정착하기까지 은퇴를 고려할 만큼 버거웠는데 지금의 여자친구가 보듬어줘 견딜 수 있었다. 내 상황이 언제 나아질지 모르는데도 옆자리를 지켜주는 한결같은 모습에 결혼을 결심했다. 여자친구 덕분에 이전보다 단단한 사람으로 거듭났다고 생각한다.
딘딘 진심으로 축하할 일이다. 슬리피 형의 결혼 발표에 사람들이 축하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슬리피는 전 소속사와의 분쟁 이후 '피브이오'를 꾸려 방송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사장님으로 사는 게 쉽지 않을 거 같다.
슬리피 챙겨야 할 소속사 직원이 늘어 어깨가 무겁다. 겉으로는 혼자 일하는 것처럼 보여도 직원들에게 받는 도움이 크다. 소규모 회사이다 보니 수입이 줄어들면 적자가 나서 항상 긴장하고 있다. 모든 출연 제의를 거의 거절하지 않는 이유도 수입과 연관돼 있다. 사업가로 살아가는 게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웃음)
방송가에서 슬리피를 찾는 일이 늘었는데 이 기세를 몰아 출연하고 싶은 방송이 있는지 궁금하다.
슬리피 욕심내기보다 출연하고 있는 방송에서 내 몫을 제대로 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을 하게 된 지금의 상황이 감사하고 행복한 동시에 잘해내지 못할까 봐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있다. 그럼에도 기회가 된다면 KBS2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고 싶다.(웃음) 주변에선 결혼식도 하기 전에 욕심부리는 게 아니냐고 한다. 하지만 미리 준비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한다. 아빠가 됐을 때 아이와 함께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면 좋겠다. 더군다나 여자친구가 방송 노출에 뜻이 없어서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나에게 최적화된 방송이라는 생각이 든다.
방송 활동에 욕심이 있는 거 같다.(웃음)
슬리피 그렇다. 지금까지는 단발성으로 출연한 프로그램이 많았지만 앞으로는 내가 가진 색채나 캐릭터를 드러낼 수 있는 방송에 안착하고 싶다.
우리는 래퍼이자 가수예요. 무대로 대중을 만나기보다 방송에 얼굴을 비추는 날이 많아도 음악하는 사람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아요.
딘딘은 요즘 일과 결혼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일 행보를 이어간다.
딘딘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다. 방송 스케줄이 끝나면 틈틈이 작업실에서 음악 작업을 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음악에 대한 흥미가 커진다. 예전에는 원하는 피처링이 성사되지 않거나 작업이 마음처럼 풀리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요즘은 같이 호흡을 맞춰보고 싶은 사람들과 일을 할 기회가 많아 잘하고 싶은 욕심과 원동력이 생겼다.
지난해 9월부터 SBS 파워FM <딘딘의 뮤직하이> 단독 진행자로 활약하고 있는데, 라디오의 매력을 말하자면?
딘딘 집에서 가장 편안한 상태로 있는 기분이다. 출연 제의를 받았을 당시에는 매일 같은 시간에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어린 시절 즐겨 들었던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에 대한 로망을 이룰 수 있겠다 싶어 시작하게 됐다. 라디오 진행을 시작한 뒤로 알게 된 건 마음이 치유된다는 거다. 컨디션 난조로 하루 종일 다운돼 있다가도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집에 돌아오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일만 하다 보면 지치는 날이 있을 텐데.
딘딘 하루 평균 4~5시간씩 자면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데, 체력적으로 버거워지는 게 느껴져 조금씩 조율하려고 한다. 예전에는 기회가 찾아오면 무조건 출연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 전체적으로 방송 프로그램에서 요구하는 리액션이나 포맷에 어울리지 못할 거면 차라리 고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욕심이 많아 일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딘딘과 슬리피는 바빠진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아티스트로서 활동을 이어간다. 선보이지 못한 음악을 갈망하고 더 나은 노래로 대중을 만나기 위해 연구를 거듭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래퍼라는 본질을 잃어선 안 된다는 게 그들만의 원칙이다.
두 사람 모두 다방면에 걸쳐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정체성을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하겠나?
딘딘 한마디로 '딘딘은 딘딘' 같은 사람이다. 한 PD님이 "너는 방송, 음악, 진행을 모두 잘하는데 그게 문제야"라고 말씀하셨다. 무엇이든 잘하는 건 좋지만 한 분야에서 뛰어나지 못하다는 아쉬움을 말씀하신 거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도 괜찮고 모든 방면에서 점점 더 발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음악이든 예능이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딘딘이라는 캐릭터와 역량을 확장하면 좋겠다. 물론 활동을 이어가는 데 가장 중심이 되는 분야는 음악이다. '딘딘 하면 예능이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본업을 끝까지 이어가고 싶은 욕심이 있다.
슬리피 우리는 래퍼이자 가수다. 무대로 대중을 만나기보다 방송에 얼굴을 비추는 날이 많아도 음악하는 사람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관계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슬리피 형 같은 동생. 딘딘은 8살 차이가 나는 동생인데도 조언하는 데 망설임이 없고 방송이나 일상에서 많은 도움을 준다. 딘딘 덕에 MBC 예능 <진짜사나이>에 출연하게 됐는데 이후로 방송 스케줄이 눈에 띄게 늘었다. 기분이 울적하거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친구이기도 하다. 나한테만 잘하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살뜰하게 챙겨 의리 있는 친구로 통한다.
딘딘 끝까지 함께하고 싶은 동료. 세상에 동료는 많지만 좋은 동료, 계속 보고 싶은 동료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슬리피 형은 오래도록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다. 내가 어디에 가든 그곳에 형이 있었으면 좋겠다.
끝으로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전해달라.
딘딘 9월에 미니 앨범 <소음집> 선공개곡을 발매한다. 나의 노래가 누군가에게는 소음일 수 있지만, 반대로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앨범명을 정했다. 11월쯤 앨범 발표를 목표로 하는데, 지금까지 해왔던 음악과 달리 노래로만 구성할 예정이다. 앨범을 발매하고 연말을 맞이하면 올 한 해는 잘 지냈다는 생각이 들 거 같다.
슬리피 당장은 결혼 준비로 정신이 없겠다.(웃음) 그리고 싱글 앨범을 준비하면서 지금 참여하고 있는 방송을 잘해내는 게 목표다.
적당한 패기, 스스로를 향한 자신감, 지난한 시간을 지나온 이의 단단함. 두 사람의 말과 눈빛에서 복합적인 오라가 풍겼다. 딘딘과 슬리피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확신할 수 있는 건 지금보다 더 강렬하고 유쾌할 거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