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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병기 신재환

신재환은 첫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0년 넘게 도마라는 한 우물을 판 결과였다.

On August 2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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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 올림픽은 한국 체조 역사에 새바람을 예고하는 자리였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체조 역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의 영광을 안긴 양학선 선수를 보며 꿈을 키운 24살의 청년은 9년 만에 다시 체조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게 만들었다. 금빛 착지로 한국 체조의 재도약을 알린 신재환 선수는 아직도 꿈을 꾸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해도 될까요? 주변에서 금메달을 딴 소감을 많이 묻는데 아직도 실감 나지 않아요. 제가 뛰어서 손으로 도마를 짚고 날아올라 착지한 순간까지 모두 꿈처럼 지나간 것 같아요. 정신을 차리니까 시상대 위에 서 있더라고요. 메달을 목에 걸고 애국가를 듣고 내려왔는데, ‘진짜 끝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허무하기도 했어요.”

예선을 1위로 통과한 신재환은 1차 시기에 공중에서 3바퀴 반을 도는 난도 6.0의 ‘요네쿠라 기술’에 도전했지만 착지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이어진 2차 시기, 신재환은 난도 5.6의 ‘여2 기술’에 도전해 깔끔하고 힘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1, 2차 시기 평균 14.783점으로 1위에 올랐다. 신재환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메달을 확신했다. 2명의 출전 선수가 남았지만 메달 획득은 확정이었기 때문이다(러시아의 데니스 아블랴진이 신재환과 동점을 만들었지만 신재환의 난도가 더 높아 금메달을 차지할 수 있었다).

“동메달을 바라보고 올림픽을 준비했는데, 제가 시합을 다 끝내고 뒤에 선수 2명이 남은 상태에서 1등을 하니까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아, 2명만 더 이기면 메달 색이 바뀌는데’라는 마음이 들었죠. 내심 금메달을 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금메달을 거머쥐었지만 신재환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크다. 코로나19로 도쿄 올림픽이 1년 연기되면서 오랜 기간 쌓아 올렸던 체력이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2020년을 ‘내다버린 1년’이라고 표현했다.

“올림픽이 1년 미뤄지면서 초심을 잃고 해이해진 상태로 시간을 보냈어요. ‘내년의 신재환이 어떻게든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여태까지 하지 못했던 것들을 했죠. 가족이랑 맛집을 다니고 친구들과 술도 마셨어요. 아! 처음으로 친구들과 생일 파티도 했는데 기분이 묘해서 술을 마시고 울었어요.(웃음) 그리고 올해부터 다시 운동을 시작하고선 작년의 저를 원망했죠. 하지만 별다른 방법은 없었어요. 그냥 훈련으로 극복했죠.”

다시 체조선수 신재환 모드로 돌입한 그는 3개월 동안 몸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식단 관리를 시작했고, 새벽·오전·오후 3타임에 1시간 30분씩 웨이트트레이닝도 시작했다. 훈련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땐 야간 운동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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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환은 2020 도쿄올림픽 도마 결선 1차시기에서 공중에서 3바퀴 반을 도는 ‘요네쿠라 기술’과 도마를 짚은 뒤 공중에서 2바퀴 반을 도는 ‘여2 기술’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의 피땀 나는 노력 때문일까? 신재환은 한국 체조계의 비밀 병기로 불렸다. 165cm에 58kg의 체격으로 체조선수 중에선 근력이 약하고 유연성이 떨어졌지만 늘 훈련에 매진하며 꾸준한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근력과 체력을 끌어올렸다.

또 6종목을 고루 잘해야 하는 남자 기계체조에서 도마를 제외한 5종목(안마·링·평행봉·철봉·마루)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도마에서만큼은 따라올 자가 없었다. 끈기와 근성, 집중력으로 독보적이란 수식어를 얻은 신재환을 두고 체조계에서는 도쿄 올림픽에서 ‘한 건’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했다. 그가 업계의 기대를 받을 만큼 성장하도록 동기부여를 해준 존재는 그의 롤 모델인 양학선 선수다.

“학선이 형은 선배이지만 스승이에요. 형 덕분에 금메달을 땄다고 말하고 싶어요. 학선이 형이 70%였던 한국의 도마 수준을 95%로 끌어올렸거든요. 다른 선수들이 학선이 형의 수준을 따라가려고 노력하다 보니 한국 선수들의 도마 실력이 평균 이상으로 올라갔어요.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학선이 형이 ‘나 자신을 믿고 잘하라’고 말했는데 가장 현실적인 조언이었어요. 많은 힘이 됐어요.”

사실 신재환은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거머쥐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는 청주 율랑초등학교 5학년인 12살 때 체조를 시작해 도마 특유의 ‘비틀기’ 동작을 많이 연습하다 보니 충북체고 시절 허리디스크 부상을 입었다. 너무 아파 걷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철심을 박는 수술을 했고 의사는 그에게 체조를 그만두라고 권했다. 하지만 신재환은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척추를 고정시키는 속근육을 단련시켜 체조장으로 돌아왔다.

“제가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운 좋게도 주위에서 저를 좋은 선수로 만들기 위해 애쓰셨어요. 고등학교 땐 체조를 그만둘 수 있다는 생각에 심적으로 힘들었지만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도록 주위에서 도와줬어요. 또 저를 국가대표 선수촌으로 이끌어주신 신형욱 감독님에게도 감사해요. 도마를 제외한 기계체조 5종목이 약한 저는 원칙대로라면 선수촌에 들어갈 수 없는데 감독님께서 주변 사람들을 설득했다고 해요. 감독님이 아니었으면 저는 도쿄 올림픽에도 출전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 외 이선성·조성민·김대은 코치, 신경환 트레이너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한 신재환은 도쿄 올림픽에 함께 출전한 김한솔 선수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김한솔은 올림픽 참가를 앞두고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신재환을 다독였다고.

“도쿄에 가기 전에 잘하고 싶은 마음과 긴장감이 저를 불안하게 만들었어요. 기술엔 자신 있었지만 경기 도중에 실수할까 봐 걱정돼 숙면하지 못했죠. 오죽했으면 스트레스 때문에 탈모가 왔을까요?(웃음) 제가 불안해할 때마다 한솔이 형이 제게 ‘너를 믿고 해. 네가 지금 최고야’라면서 격려해줬어요. 그러곤 ‘실수할 사람은 불안해하지 않아도 실수할 거고, 실수하지 않을 사람은 불안해도 실수하지 않을 테니 자신 있게 해’라고 말해줬죠. 한솔이 형 덕분에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어요.”

아직까지 도쿄 올림픽을 앞둔 그때 느꼈던 긴장감이 남아 있다는 신재환은 오는 10월 일본 기타큐슈에서 열리는 세계기계체조선수권대회와 2024년 파리 올림픽에 대해 말했다.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다음 올림픽에 출전한다면 절대 주변에 한눈팔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만약 예정대로 지난해 도쿄 올림픽이 열렸다면 한 120%의 자신감으로 시합에 임할 수 있었을 것 같거든요. 다음 대회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싶어요. 저의 이름을 딴 기술을 발전시켜야 되지 않겠느냐고요? 물론 신재환의 이름을 건 기술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과 의향은 있지만 파리 올림픽까지 3년밖에 남지 않았고 요네쿠라 기술에서 반 바퀴를 더 비트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은데…. 음, 그래도 일단 노력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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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 1년 미뤄지면서 초심을 잃고 해이해진 상태로 시간을 보냈어요. 가족이랑 맛집을 다니고 친구들과 술도 마셨어요. 아! 처음으로 친구들과 생일 파티도 했는데 기분이 묘해서 술을 마시고 울었어요.(웃음) 그리고 올해부터 다시 운동을 시작하고선 작년의 저를 원망했죠.

“웃음이 끊이지 않는 가정 꾸리고파”

출발부터 착지까지 4초라는 짧은 시간에 짧고 굵은 긴장감을 선사하는 것이 도마라는 운동의 매력이라고 진지한 얼굴로 말하던 신재환은 경기장 밖에선 천진난만한 청년이었다. 촬영 중간중간 자신이 카메라 앵글에 어떻게 담기는지 확인하곤 “이 모습을 보면 친구들이 놀릴 것”이라며 민망해하면서도 쑥스럽게 “멋있게 나오고 있어요?”라고 물었다. 그에게 모든 스케줄이 끝나고 휴식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냐고 물었다.

“아무 걱정 없이 놀고 싶어요. 보상 심리라고 할까요? 귀국 후 아버지와 간단히 술을 한잔했는데, 친구들과도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요즘 유행이라는 글램핑도 가보고 싶고요.”

주중엔 선수촌에서 열심히 운동하고 주말엔 술을 마시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했다는 신재환은 귀국 후 아버지와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며 회포를 풀었다. 그는 금메달 획득 후 이어진 인터뷰에서 포상금 사용 계획을 묻는 질문에 “집에 빚이 있어서 청산하고 나머지는 저축하겠다”고 말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제가 포상금을 받으면 집의 빚을 갚겠다고 해서 집에 빚이 많다고 오해가 생겼는데 정정하고 싶어요. 아버지께서 헬스장을 운영하시는데 코로나19로 경제적 타격을 받아서 생긴 빚을 갚겠다는 의미였어요. 아버지는 택견·태권도 도장, 헬스장을 운영하며 저희 3남매를 키워주셨거든요.”

신재환은 도쿄에서 귀국 후 아버지 목에 금메달을 걸어주며 항상 모자라고 철없는 아들이었지만 앞으로 효도하는 아들이 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는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에 체조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화려하게 날아올라 발길질을 하는 택견을 보고 자란 신재환은 공중에 뛰어오르는 걸 두려워한 적이 없다. 오히려 더 높이 뛰어오르고 싶어서 도마 종목을 가장 좋아했다.

“택견 선수 출신인 아버지는 마샬아츠(무술)도 하셨는데, 어렸을 때 저희 3남매에게 마샬아츠를 많이 알려주셨어요. 그래서일까요? 저희 3남매 모두 운동을 했어요. 남동생은 체조에서 다이빙으로 전향했다가 부상 때문에 그만뒀고, 여동생 역시 다이빙 선수로 활동했었어요. 되돌아보면 아버지의 영향으로 저희 3남매가 자연스럽게 운동을 접하며 자랐던 것 같아요.”

아버지를 ‘친구 같은 아버지’라고 표현한 신재환은 아버지처럼 가정적인 스타일의 가장이 되고 싶다. 자녀보다 아내를 먼저 생각하는 다정다감한 남편이 되고 싶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나를 믿고 결혼해준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 아버지가 그러시거든요. 저희 부모님은 항상 신혼부부처럼 즐겁게 살려고 하세요. 그래서인지 저희 집엔 날마다 웃음이 끊이질 않아요.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장난을 자주 치는데, 아버지는 그 장난을 즐겁게 받아주시거든요. 저도 부모님처럼 항상 웃음이 넘치는 가정을 꾸리고 싶어요.”

신재환에게 이상형을 묻자 “얼굴은 안 봐요. 성격은 사귀면서 맞춰가는 거죠”라는 애매한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가정을 꾸리고 싶은 시기는 명확했다.

“제가 안정적이라고 느낄 때 결혼하고 싶어요.‘워라밸’을 지킬 수 있는 시기가 적당할 것 같아요. 바쁜 것도 좋지만 쉴 땐 푹 쉬는 게 좋은 것 같거든요. 제가 그런 삶을 살 수 있어야 아내도 자녀도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30살쯤에 가능하지 않을까요?”

신재환이 조금 더 먼 미래에 안정적인 삶을 꾸릴 것이라 기대하는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그의 최종 목표는 금메달리스트가 아닌 교직에 있기 때문이다. 먼 훗날 교단에서 교수라는 직함을 다는 것이 그의 꿈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선수촌에 입촌한 후부터 교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살면 좋겠다는 생각에 교수를 꿈꾸고 있어요. 스포츠 교육학을 공부하고 석사·박사과정을 밟고 싶어서 대학원에 등록했는데, 등록금을 내자마자 올림픽 출전이 결정돼 휴학했어요. 제대로 공부한 뒤에 학생들을 지도하며 살고 싶어요.”

그에게 “10년 뒤 신재환은 어떤 모습일 것 같냐”고 물었다. “34살…”이라며 고민하던 그는 “공부하고 있을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신재환에게 국가대표 체조선수는 최종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다. 그의 성장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지은
사진
이대원, olympic·combatsportsaddict·olympics 인스타그램
스타일링
최영주
헤어&메이크업
정일&송미(체체쌀롱)
2021년 09월호
2021년 09월호
에디터
김지은
사진
이대원, olympic·combatsportsaddict·olympics 인스타그램
스타일링
최영주
헤어&메이크업
정일&송미(체체쌀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