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부모를 닮는다고 했던가? 나는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주안이의 얼굴과 내 얼굴을 비교하며 눈이 닮았을까, 코가 닮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즐거워했다. 심지어 손톱과 발톱 모양까지 엄마, 아빠를 닮았다고 말하기 일쑤였고 아니면 할머니나 할아버지와 닮은 부분을 찾았다. 주안이가 우리 가족 중 누구의 어떤 부위를 닮았는지 찾는 것은 한동안 나의 즐거움이자 기쁨이었다.
생김새를 닮은 것보다 더 신기한 것이 있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아이가 부모가 좋아하는 것을 똑같이 좋아할 때나, 잘하는 것을 똑같이 잘할 때가 그렇다.나의 중학교 시절, 나의 시험 성적 평균을 올려주는 효자 과목은 한자였다. 그런데 요즘 주안이도 한자에 관심을 갖고 곧잘 외우는 모습을 보여서 좋다.
나는 어려서부터 자동차를 좋아했는데 주안이는 이것마저 닮았다. 나는 초등학생 때 운전은 어떻게 하는지, 키가 얼마나 커야 운전을 할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하루는 운전하는 사람 중에서 가장 키가 작은 사람을 찾고 그 옆에 서서 슬그머니 키를 비교해보기도 했다. 기억 속 저편에 있던 추억이 떠오른 이유는 바로 주안이 때문이었다. 얼마 전에 주안이가 내게 자동차가 어떻게 가고 멈추는지 물어보기에 "오른쪽에 액셀이 있고 왼쪽에 브레이크가 있다"고 알려줬다.
그로부터 며칠 후, 주안이가 패드에 운전면허 시험을 연습하는 앱을 내려받아 게임처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혼자 "하하" 웃으면서 신나게 한다. 그래서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물어봤더니 출발할 때 왼쪽 깜빡이를 켜지 않아서 감점을 받은 것이 웃기다면서 스스로 도로 연수 규칙을 습득하고 있었다. 하이고! 또 며칠이 지나고 보니 주안이가 앱 속에서 도로 주행을 연습 중인 차가 멋진 스포츠카로 변신해 있었다.
하루는 가족이 다 함께 차를 타고 나들이를 가는데 문득 주안이가 "아빠, 나는 운전하면 안 돼? 언제부터 운전할 수 있어?"라고 물었다. 일단 나이가 제일 중요하다고 이야기해줬다. 20살(만 18살)이 되면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그때부터 필기, 실기, 도로 주행 시험을 봐서 합격해야 한다고 알려줬다. 지금까지 살아온 만큼 더 살면 운전면허 시험에 도전할 수 있다고 말해주면서 우리 가족은 한바탕 신나게 웃었다.
주안이는 운전면허 시험에 탈락할 수도 있는지, 엄마와 아빠는 한 번에 시험에 합격했는지, 지금 주안이의 키로는 운전을 할 수 없는지, 아빠가 주차할 때 주안이가 변속기를 D에서 R로 이동해보면 안 되는지 등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주안이는 그날 온통 빨리 성인이 돼서 운전면허 시험을 보는 생각뿐이었다.
어쩜 내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어렸을 때의 나와 똑같은지…. 주차된 아버지의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수동 변속기를 무수히 변속하고, 자동차의 페인트가 벗겨지도록 세차를 했던 내 모습이 주안이에게서 보이기 시작한 것 같다.
생각이 이쯤 다다르자 내가 사춘기에는 어땠는지 생각해봤다. 부모님은 "준호는 사춘기에 속 한번 썩이지 않고 순하게 지나가서 고맙다"고 하셨지만 부모님의 큰 사랑으로 사춘기의 반항을 덮어주신 것 같다. 주안이의 사춘기 역시 내 사춘기의 거울이진 않을까? 지금의 나와 아내의 모습이 미래의 주안이에게 자양분이 되리라 믿는다. 그래서 사소한 것도 더 조심하면서, 가족을 더 사랑하면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 어른보다 아이가 더 낫다는 말이 문득 떠오르는 날이다.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지난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주안이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