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난 화가가 아니야. 미술을 사랑할 뿐이지.” 가수 겸 화가로 활약하고 있는 조영남(76세)이 그림 대작 관련 사기 혐의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개인전으로 대중과 만난다.
그는 지난 2011년 ‘호밀밭의 파수꾼’이란 제목의 그림을 판매할 때 구매자에게 제3자의 보조를 받아 그림을 완성했다는 것을 고지하지 않은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 2016년 기소된 뒤 약 5년간의 법정 공방을 이어온 조영남은 지난해 6월 대법원으로부터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로부터 1여 년 뒤인 지난 5월 비슷한 혐의로 받은 추가 기소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아 약 6년간 이어온 ‘그림 대작 사건’에서 자유로워졌다.
조영남에게 그림은 자유를 표현해낼 수 있는 창구다. 무대에서 기량을 펼치는 것만으로 해소할 수 없는 에너지를 그림으로 풀어내며 내면의 또 다른 자신을 만난다고.
7월 3일부터 경기도 이천 ‘비씨조명’ 1층 전시실에서 열리는 조영남 개인전 ‘아트를 밝혀라’는 화가 조영남 그림의 시그너처인 화투를 소재로 한 작품부터 대작 의혹으로 은둔 생활을 했던 지난 6년간의 심경을 담은 작품이 다수 포함돼 기대를 모으고 있다.
개인전 ‘아트를 밝혀라’에 대해 소개해달라. 오롯이 미술에 집중할 수 있던 때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다. 대작 논란으로 방송에 출연하지 못했을 때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그림만 그렸다. 미처 말하지 못했던 심경과, 공판을 이어가면서 달라진 생각을 그림에 반영했다(조영남은 법정 공방을 이어갈 당시 발가벗은 자화상 등 기존 작품과 사뭇 다른 분위기의 작품을 공개한 바 있다).
‘그림 대작 사건’에서 연이어 무죄를 선고받았다. 무거웠던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 됐다. 지난 2017년 1심에서 유죄(당시 조영남은 사기 혐의로 인정돼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가 선고되면서 전 국민에게 사기꾼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이후 대작 논란의 진위 여부를 가리면서 칼럼 연재, 방송 출연 등을 할 수 없게 됐다. 떳떳한 모습을 잃지 않으려고 했으나 지난 6년간 죄를 지었다는 생각을 떨친 적이 없다. 아픈 기억이지만 ‘미술 애호가’에 불과했던 나를 프로 화가인 것처럼 알린 계기이기도 하다. 몰랐던 사람까지 논란을 지켜보면서 내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거다.
법정에 설 때마다 ‘현대미술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는데 무슨 뜻인가? 재판에서 무죄판결이 나면서 현대미술의 정의에 대해 모호했던 부분이 조금이나마 풀렸다고 생각한다. 또 미술이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예술로 다가서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말이기도 하다. 음악, 글 등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예술인데 그림은 그렇지 않다. 소수의 영역에 속하는 사람만 향유해 소위 ‘문턱이 높은 예술’이라고 불리지 않나. 내가 그림을 그리는 걸 몸소 보여주면서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분야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여전히 일각에서는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비판은 자유의 영역이다. 욕하고 싶다는데 내가 말릴 수 있나.(웃음) 어찌 됐든 조영남의 그림을 한 번이라도 봤다는 거니까 나쁜 의미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종종 평론가들이 내 그림을 두고 혹평하는데 전문가가 내 그림을 평가했다는 것 자체가 근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만족하는 그림이란 건 없다.
‘아트테이너’로 활약하고 있는 후배, 동료들의 행보를 어떻게 바라보나? 흐뭇하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전부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림뿐 아니라 음악, 춤, 바둑 등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주저 말고 일단 질러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 걷고 있는 길과 상관없는 분야라도 괜찮다. 연기하는 사람이 붓을 잡는 게 엉뚱한 짓이라고 여기는 건 편협한 사고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얻은 영감이 본업에 좋은 영향을 주기도 한다. 무엇이든 많은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하다.
‘아트테이너’ 중에서 작품성과 관련해 구설수에 오르는 경우도 있다. 기죽으면 지는 거다. 배우 구혜선, 가수 솔비 등 후배들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한마디로 기막히다. 각자가 가진 명확한 세계관과 개성이 그림에 그대로 드러난다. 작가로서 개성을 갖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인데 그걸 해낸 거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시도하는 것부터 대중 앞에 작품을 공개하는 것까지 엄청난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도전은 언제나 아름답다는 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조영남에게 그림이란? 프리덤(freedom, 자유). 누구나 자유를 갈망하지만 쉽게 가닿지 못한다. 그런데 미술의 세계는 자유가 바탕이 된다. 예를 들어 그림을 그릴 땐 잔디가 푸른색이라는 일반적인 개념을 과감하게 깨어버릴 수 있다. 검은색일 수도 있고, 붉은색일 수도 있는 거다. 음악으로 평생을 살아왔는데 그 안에서 느꼈던 예술적 갈증, 표현의 한계를 미술로 풀어낸다. 삶에서 느끼는 속박을 과감하게 무너뜨리는 창구인 셈이다. 또 그림을 그리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음악을 만들 때는 박자, 음정, 화음 등 지켜야 할 규칙이 많은데 그림은 마음 가는 대로 표현해낼 수 있다. 아마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으면 미대에 갔을 거란 생각이 드는 게 젊은 시절부터 그림에 대한 관심이 컸다. 예술이라는 큰 개념 안에는 음악, 미술, 문학, 시, 사진, 건축 등 다양한 분야가 있다. 결국 음악이든 미술이든 한통속이라는 거다.
미술적 영감은 어디에서 얻는가? 영감이라고 하면 보통 운명처럼, 불현듯이 다가오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닌 거 같다. 나 같은 경우에는 살아가면서 느낀 감정, 머릿속에 떠오르는 하나의 이미지를 붓으로 끄집어내면서 그림을 완성해간다. 그렇기에 미술적 영감이라는 건 내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나만의 작품, 내 그림이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선 ‘어떤 것을 그리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이 콜라병을 재해석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지 않았나. 무엇을 그려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끊임없이 한다.
본인의 작품 활동을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나? 감상은 오롯이 관람객의 몫이다. 개인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작품을 달리 받아들인다. 1973년 첫 개인전 이후로 기회가 닿을 때마다 전시를 열고 있는데 초창기에는 내 그림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그림을 그려오면서 평가나 해석은 관객에게 맡기는 게 맞다는 걸 깨달았다. 단지 바라는 게 있다면 재미있게 읽혔으면 좋겠다. 나는 한평생 재밌게 사는 방법을 연구해온 사람이다. 한 번 살다가 떠나는 인생, 재밌게 살자는 게 삶의 철학이다. 또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내 그림을 보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헛걸음하지 않도록 멋있는 그림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끝으로 화가 조영남의 향후 행보가 궁금하다. 나는 화가가 아니다. 미술을 사랑할 뿐이다. 화가라고 하면 전문성이나 뛰어난 재능이 바탕이 돼야 하는데 나는 단지 그림 그리는 것을 사랑하고 결과물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수준이다. 그렇기에 화가라는 명칭보다는 ‘미술 애호가’라고 하는 게 맞다. 스스로를 화가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시작이 그러했듯 끝까지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 정도로 남고 싶다.
조영남 개인전 ‘아트를 밝혀라’
일시 2021년 7월 3일~8월 15일
장소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서이천로 343 1층 전시장
문의 1577-66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