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개인정보 유출
카페 아르바이트생 A씨(25세, 여)는 최근 한 단골손님의 말에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단골손님이 A씨의 이름과 취미, 재학 중인 대학교의 이름을 줄줄이 꿰고 있던 것이다. 정보를 알게 된 경로를 묻자 단골손님은 SNS 해시태그를 검색해 A씨의 SNS 계정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후 A씨는 자신의 SNS 계정을 전부 비공개로 전환했다.
“갑자기 이름을 불러서 깜짝 놀랐어요. 심지어 제가 자주 가는 카페까지 알고 있어 위협감을 느끼기도 했죠.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 이후에는 SNS에 사진 한 장을 쉽게 올리지 못하겠더라고요.”
A씨만의 일이 아니다. 일상에서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크고 작은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전화번호를 알아내 사적인 연락을 취하는 경찰관, 배달 후 문자메시지로 호감을 표시하는 배달원 등 일종의 스토킹 사례가 연이어 발생하는 상황이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발표한 ‘2020년 사이버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성인 남녀 1,500명 가운데 신상 정보 유출 피해를 입었다고 답한 비율은 25.2%로 집계됐다. 개인정보 유출과 무관하지 않은 스토킹은 39.8%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여기에 SNS 계정으로 쉽게 개인정보를 취득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 고려하면 실제 피해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SNS 계정에 올라온 택배 송장 사진에 적힌 주소로 찾아가 세 모녀를 살해한 ‘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신상 정보 유출에 대한 불안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이 밖에도 개인정보를 빌미로 금전을 요구하는 ‘보이스 피싱(전화 금융 사기)’도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보이스 피싱 범죄 피해 규모는 매년 증가세를 보인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 피싱 피해 발생 건수는 총 3만 1,681건, 피해액은 약 7,000억원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19억원의 피해액이 발생한 셈이다.
파쇄기로 갈고, 스탬프로 찍어서 없앤다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사람들의 신경이 곤두서면서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가정용 파쇄기, 물파스나 아세톤, 정보 제거용 스탬프, ‘곽두팔’ ‘조덕철’ 같은 센 이름 리스트 활용, SNS 비공개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정보를 보호하고 나선 것이다.
휴대용 파쇄기는 주로 기업에서 안전하게 문서를 폐기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파쇄기의 축소판이다. 가격은 1만~10만원까지 다양하다. 택배 박스에 붙은 신상 정보가 기재된 송장이나 활동 이력을 유추할 수 있는 영수증, 정보가 담긴 개인 문서 등을 없앨 때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정보 제거용 스탬프는 도장형과 롤러형으로 나뉜다.
주소가 적힌 송장에 도장을 찍거나 텍스트가 묻어나는 롤러를 정보가 적힌 데 굴리는 방식으로 신상 정보를 제거할 수 있다. 스탬프는 1만원대 이하로, 비교적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다는 게 이점이다.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물품인 아세톤이나 물파스로도 신상 정보를 지울 수 있다. 프린트된 부분에 액상을 떨어트리면 번짐과 동시에 알아볼 수 없도록 변한다. 저렴한 가격의 향수나 알코올로도 대체 가능하다. 단, 제품마다 효과가 상이하다는 점을 알아두는 게 좋다.
1인 가구 여성을 상대로 하는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등장한 개인정보 보호 방법 가운데 ‘센 이름 리스트’도 각광받는다. 이는 여성임을 유추할 수 있는 이름을 기재하는 데 불안감을 느끼는 이들이 늘면서 등장한 것이다. 지난 2019년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한 30대 남성이 귀가하는 여성을 뒤쫓아 집 안으로 진입하려고 했던 사건이 알려진 후 확산된 방법이기도 하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상에서 확산한 ‘센 이름 리스트’에는 곽두팔, 조덕출, 육만춘, 권필상 등이 있다. 남성적이고 강한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이름으로 범죄의 표적이 되는 일을 방지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유사 시 남성이 녹음한 음성 경고 메시지를 틀어놓는 방법을 활용하는 이들도 적잖다. SNS 계정을 비공개 전환해 불특정 다수의 접근을 막는 이들도 늘고 있다. 무심코 올린 사진에 담긴 배경으로 자주 방문하거나 거주하는 지역을 파악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따른 것이다.
이 밖에도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SNS마다 다른 아이디 사용하기, 신분이 드러날 수 있는 사진은 공개하지 않기, 사진에 좌표 찍지 않기 등 개인정보를 드러내지 않고 게시물을 작성하는 팁 등이 올라와 있다.
관련 범죄, 처벌 수위는?
개인정보 노출 피해가 이어지면서 처벌 수위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일고 있다. 미미한 처벌 수위 때문에 관련 범죄가 근절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 등이 나서서 개인정보 불법 거래와 유통을 막으려고 했으나 타깃을 정해 치밀하게 벌이는 범죄를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우려가 있다.
배달원, 공무원 등이 전화번호를 알아내 사적으로 연락을 취하는 사례도 처벌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현행법상 업무 중 개인정보를 취득한 자는 법적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위협을 느꼈더라도 ‘스토킹처벌법’이 아닌 ‘개인정보보호법’에 해당한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처리자의 지시로 업무를 진행하면서 개인정보를 취득한 데 한해서는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보이스 피싱은 현행법상 징역 10년 이하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평균 피해액이 1인당 2,000만원을 넘고 피해액 환급률이 30%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처벌 수위가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보이스 피싱 피해 환급률(신고된 피해 금액 중 환수된 금액의 비율)은 지난 2017년 24.6%, 2018년 22.8%, 2019년 28.5%로 집계됐다. 한마디로 보이스 피싱을 당해도 피해 복구가 어렵다는 의미다.
급부상한 개인정보 보호 방법
가정용 파쇄기
주로 사무실에서 문서를 폐기할 때 사용했던 파쇄기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 가격은 1만~10만원까지 다양하다. 택배에 붙은 송장, 영수증, 개인 문서 등 잘게 찢어 버리기 번거로운 개인정보를 넣으면 된다. 특히 20~30대 1인 가구 여성에게 인기를 끈다고.
물파스&아세톤
각종 맘카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알려진 신상 정보 폐기 방법 가운데 가장 쉽기로 소문났다. 정보가 담긴 종이에 아세톤을 1~2방울 떨어뜨리거나 물파스로 문지르면 글자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이 2가지 대신 알코올, 저렴한 향수 등을 이용해도 송장의 잉크를 지울 수 있다.
스탬프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는 개인정보 보호 스탬프는 신상 정보가 적힌 종이에 롤러처럼 문지르거나 도장처럼 찍어서 사용하는 제품이다. 이름, 전화번호, 송장 번호, 집 주소 등의 개인정보가 드러난 부분에 스탬프를 찍어 덧칠하거나 롤러로 문지르면 개인정보를 제거할 수 있다.
‘곽두팔’ 센 이름 리스트
성별을 알아챌 수 있는 이름으로 불안하다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공유되고 있는 ‘센 이름 리스트’를 활용하자. ‘곽두팔’ ‘육만춘’ ‘최철황’ ‘조덕출’ 등이 대표적이다. 택배에 노출되는 이름이 강한 이미지를 풍긴다는 이유에서 활용되고 있다.
내 개인 정보, 어떻게 지키고 있나요?
2021년 5월 11일부터 18일까지 <우먼센스> 구독자 108명에게 물었습니다.
1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나요?
YES 93.8% NO 6.2%
2 언제 개인정보 유출 위험을 느끼나요?
스팸 전화(금융사, 마케팅 등) 75%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가 걸려올 때 14.6%
배달, 택배 등 낯선 이들과의 접촉 10.4%
3 실제 유출로 인해 피해를 입은 적이 있나요?
YES 20.8% NO 79.2%
4 (3번 질문에 ‘있다’고 답한 사람에 한해) 어떤 피해를 입었나요?
"해킹 피해로 50만원이 통장에서 인출되는 피해를 당했다."
"보이스피싱에 통장을 이용당한 적이 있다."
"SNS에 올린 아이의 사진을 도용당했다."
"모르는 사람이 SNS를 통해 만남을 요청한 적이 있다. "
"문자메시지의 링크를 잘못 눌러 피해를 입었다."
5 무분별한 신상 유출, 어떤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는지
49.1% 택배, 우편물 등 정보 폐기
34% 마케팅 정보 수신 약관 살펴보기
7.5% 가명 기재
3.8% 무인 택배함
5.6%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