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추웠던 날씨 때문에 ‘집콕’을 했던 주안이와 나는 요즘 굳었던 몸을 풀기 위해 많이 움직이고 있다. 주로 집 앞을 산책하는데, 산책은 우리 둘의 갈증을 풀어주기엔 부족했다.
우리는 마주 앉아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주안이는 캠핑을 가고 싶어 했지만 내가 새로운 작품 연습을 시작했고, 공연 중인 엄마는 함께 떠날 수 없었기에 대안을 찾아 나섰다. 그러다 친한 동료 배우 이지훈 형이 최근 등산에 빠져 있는 것이 생각났다. 나는 바로 주안이에게 SNS 사진들을 보여줬다.
그러자 주안이는 예전에 할머니, 할아버지와 남산에 다녀온 적이 있다면서 남산 가는 길을 나에게 알려주겠다는 게 아닌가! 며칠 후 밤 10시쯤 주안이에게 잠자리에 들라고 한 뒤 소화도 시킬 겸 등산 코스도 알아둘 생각으로 아내에게 “남산에 다녀올게”라고 말했다.
그 순간, 자러 들어갔던 주안이가 ‘다다다다’ 하고 뛰어나오더니 “나도 갈래!”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내일은 등교하지 않고 온라인 수업이라 일찍 잠을 자지 않아도 괜찮아요”라며 나를 설득했다. 아들의 간절한 눈빛을 보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빠, 이쪽이야! 발 조심해! 힘들어? 아빠, 숨소리가 여기까지 들려!”
쉴 새 없이 쫑알대는 주안이의 목소리가 마치 노랫소리 같았다. 손을 잡고 등산길을 오르는데,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주안이의 행동을 발견했다. 등산길에 가로등이 촘촘하게 있지만 중간중간 살짝 어두워지기도 했는데 그곳을 지나갈 때 주안이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알게 됐다.
꾀꼬리처럼 쫑알쫑알하다가도 그런 행동을 하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럽던지! 그러다가 등산길 5분의 3쯤 올라갔을까? 주안이가 이런 말을 했다. “아빠, 나 졸리기도 하고 운동화를 잘못 신고 와서 발바닥이 아파. 돌아갈 거리와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 돌아가야 할 것 같아.”
결국 우리는 등산을 시작한 지 1시간 30분쯤 됐을 때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새벽 1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집에 들어와 함께 샤워하면서 다음에는 꼭 남산서울타워까지 올라가자고 약속했다.
대망의 남산서울타워 오르기에 도전하는 날. 주안이의 온라인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을 나섰다. 며칠 전에 갔던 길이라 중간중간 어디에서 쉬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서 지치지 않고 올라갈 수 있었다.
주안이가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 전동석 삼촌을 만나 셋이 함께 남산서울타워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주안이는 며칠 전 나에게 했던 것처럼 할머니, 할아버지와 남산을 오르며 알게 된 지식을 전동석 삼촌에게 들려줬다.
재미있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며 등산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따뜻하게 지내며 엄마, 아빠의 동료와도 잘 지내는 아들에게 고마웠다. 동시에 내가 가족과 직장의 구성원이자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도 생각해보게 됐다. 마치 아들이 내 인생의 길잡이 같았다.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지난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주안이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