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만족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투자하고 소비하는 이들을 뜻하는 ‘포미(FOR ME)족’. 건강(For health), 싱글족(One), 여가(Recreation), 편의(More convenient), 고가(Expensive)의 알파벳 머리글자를 조합한 신조어지만, 최근 들어 ‘나를 위한다’라는 의미 자체로 쓰이고 있다.
포미족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만족을 얻을 수 있다면 다소 값비싸도 과감하게 구매한다는 점이다. 저렴한 가격대 가운데 성능이 뛰어난 상품을 고르는 ‘가성비’보다 마음에 드는 상품을 선택하는 ‘가심비’에 초점을 맞춘 소비 트렌드. 포미족이 뜨자 이들을 잡기 위한 업계의 발 빠른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건강, 싱글, 여가, 편의, 고가…
애슬레저 룩 모으기에 푹 빠진 직장인 김지은(29세·여) 씨. 필라테스를 시작하면서 구매하기 시작한 운동복이지만 이제는 색깔별로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모으는 재미에 푹 빠졌다. 고가의 애슬레저 룩은 한 벌에 10만원을 훌쩍 넘지만, 운동할 때 자신을 가꾸는 만족감이 커 소비를 멈출 생각은 없다.
그는 “애슬레저 룩을 보는 재미와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골라 사들이는 일까지 만족한다”며 “필요 이상의 운동복을 모으는 건 사치가 아니냐는 주변의 핀잔도 있었지만 내 행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쁜 애슬레저 룩을 입는 재미가 운동의 원동력이 돼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투자하는 포미족. 고가 제품이어도 기꺼이 지갑을 연다는 점에서 자칫 ‘사치’와 비슷해 보이지만,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게 아닌 ‘자기만족’에 소비의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최근 들어 포미족은 단순한 제품 구매를 넘어 더 나은 라이프스타일을 구축하는 데 힘쓰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일상용품에서부터 가전제품, 명품, 여행 상품까지 포미족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열풍이다.
경제 불황 속에서도 백화점 명품 매장 앞에 늘어선 대기 줄, 건강관리를 위해 100만원이 넘는 피트니스 클럽이나 필라테스 센터 등록, 1대1 맞춤형 트레이닝과 같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일상에서의 투자는 물론 목돈을 들여 떠나는 여행 등 여가를 위한 소비도 아끼지 않는다. 또 기본적인 가전 구매를 넘어 스타일러, 식기세척기 등 ‘세컨드 가전’ 구매까지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모든 소비에 포미족의 손길이 닿는다.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희소성 있는 제품에도 열광한다. 포미족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기성 제품보다 커스텀 제품에 관심을 보인다. 한정판 의류, 굿즈를 쥐기 위한 움직임부터 식음료, 인테리어, 패션 등 모든 분야에서 맞춤 제작 서비스인 ‘커스터마이징’ 생산업체를 찾기까지 한다.
포미족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사회에 등장한 건 2000년대 후반. 경기 불황 속 자신의 신념에 따라 투자 방향을 바꾼 사람들이 하나둘 생기면서 출현했다. 집이나 자동차와 같이 큰돈이 필요한 소비 대신 자신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정도에 한해 지출하는 이들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포미족이 일상에 파고들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결혼, 부양가족에 대한 부담이 없는 ‘싱글족’도 큰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확산으로 각종 모임과 야외 활동 제한이 생기면서 자기 계발 열풍이 불어 포미족의 증가에 힘을 보탰다.
이 같은 소비 성향은 주로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에서 나타난다. 블로그나 유튜브와 같은 1인 미디어의 영향이 커진 사회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세대이며, 주체성이 뚜렷하다는 특성이 있다. 이들은 개인이 생산자와 소비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프로슈머(prosumer)라는 개념이 등장하는 데 영향을 미쳤고, 일차원적인 필요에 의해 재화를 지급하고 무언가를 얻는 소비의 개념을 넘어 ‘투자하는 이유’에 ‘자기만족’을 포함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자기만족의 시대
포미족의 선택을 받기 위한 업계의 움직임도 발 빠른 상황. 유통업계부터 IT업계까지 너나없이 포미족의 소비 패턴을 파악한 제품들을 연이어 선보이고 있다. 업계를 막론하고 내세우는 마케팅 포인트는 ‘욕구 충족’. ‘가치를 사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아 포미족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또 브랜드 이미지 관리로 선한 소비를 했다는 만족감까지 선사하고자 한다.
밥값보다 비싼 디저트가 불티나게 팔리는 현상이 이어지자 카페업계는 고급화 전략으로 포미족을 사로잡고 있다. 지난 2019년 한국에 처음 입점한 한 커피 브랜드는 커피와 디저트를 페어링한 커피 오마카세로 이목을 끌었다. 예약제 운영, 1인당 2만원이 넘는 가격에 시간제한까지 있지만 희소성에 가치를 둬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가전업계는 제품의 가치를 향상하는 전략으로 ‘취미 가전’에 관심을 보이는 포미족을 공략한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 외출 제한 등 집에 있는 시간이 늘게 되는 상황을 분석해 TV·냉장고·세탁기 같은 필수 가전뿐만 아니라 룸시어터, 데스크톱, 스피커 등 수요 증가에 힘을 싣는다. ‘나만의 영화관 만들기’ ‘뛰어난 시청 경험’ 등 혹하게 만드는 마케팅 문구를 비롯해 인테리어 소품처럼 보이는 세련된 디자인까지 어느 하나 놓치지 않아 포미족의 지갑을 열게 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호텔업계. 해외 여행길이 막히면서 경제적 타격을 입었지만, ‘호캉스(호텔+바캉스)’ 열풍이 불면서 다시금 활력을 찾고 있다. 호텔업계는 요식업 브랜드와 협업, 특정 계절에만 즐길 수 있는 메뉴로 구성한 뷔페, 고가의 패키지 등으로 승부를 본다. 특히 호텔에서 고가로 이용할 수 있는 부대 서비스를 한데 넣은 패키지는 힐링을 선사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나에게 집중하는 이들’을 뜻하는 신조어
미코노미
나를 뜻하는 ‘Me’와 경제를 뜻하는 ‘Economy’를 합친 용어로 나를 위한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 트렌드를 의미한다. 제레미 리프킨의 저서인 <소유의 종말(The Age of Access)>에서 처음 언급된 개념이며, 포미족과 마찬가지로 가치 있는 선택이라면 고가의 물품을 사들이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게 특징. 귀족 소금으로 소문난 히말라야 소금의 매출이 증가한 것, 세컨드 가전의 구매율이 오른 것도 미코노미족의 소비 성향과 연관이 깊다. 내 마음에 들면 비싸도 사고 본다는 ‘나심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나나랜드’와도 비슷하다.
네오싱글족
디지털 시대의 독신주의자를 지칭하는 신조어로 ‘혼자임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네오싱글족은 탄탄한 경제력과 디지털 활용 능력을 갖추고, 자발적으로 독신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독신과 다른 개념이다. 이들은 강한 자의식을 바탕으로 남에게 방해받는 것을 꺼리며,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높은 기술력을 갖춰 소비 능력도 만만치 않다는 특성을 지닌다.
일코노미
숫자 1과 경제를 뜻하는 ‘Economy’의 합성어로 혼자만의 생활을 즐기며 소비 활동을 하는 사람이나 무리를 뜻한다. 혼밥(혼자 밥 먹기), 혼술(혼자 술 마시기) 등 혼자서 즐기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등장한 용어로, 1인 가구가 늘면서 나타난 소비 트렌드 중 하나다. 일코노미족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의 중요성이 커지자 업계에서도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1인용 식당, 1인용 배달 음식, 1인용 밀키트 등 1인 가구를 타깃으로 한 상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