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알츠하이머 치매 투병 중
‘당대 최고의 여배우’라는 표현은 윤정희(본명 손미자)에게는 결코 부족하지 않다. 문희, 남정임과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의 원조인 윤정희는 1967년에 데뷔해 무려 3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15년여의 공백을 딛고 2010년 컴백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였다. 데뷔 초부터 정상급 여배우였던 윤정희는 <시>를 통해 국내 유수의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은 물론이고 칸영화제 등에서 전 세계 영화인들의 극찬을 받았다. 이미 <시>를 촬영할 당시 알츠하이머 초기였던 윤정희의 투병 사실은 병세가 심해진 뒤인 2019년 11월 대중에 공개됐다. 윤정희의 알츠하이머 투병 사실 자체도 대중에게는 큰 충격이었는데 2021년 설 연휴를 앞두고 불거진 ‘윤정희 방치 논란’은 더 큰 충격과 논란을 야기했다.
‘프랑스서 홀로 방치’ vs ‘아주 평온한 상태’
현재 윤정희는 딸 백진희 씨가 돌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윤정희의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딸 진희 씨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윤정희의 투병 사실을 공개했다.
당시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백진희 씨는 “올해 초까지도 함께 지내셨는데, 그야말로 아빠가 버티신 거죠. 의사들도 그렇게 얘기해요. 어떻게 엄마와 동행하면서 연주를 다니셨냐고”라고 말했다. 딸 진희 씨는 윤정희가 자신의 바로 옆집에서 지내고 있다고 밝혔다. “파리 근교의 호숫가 마을에 엄마를 위한 집을 구했다”며 “간호사들이 돌아가며 24시간 돌보고 전문의들이 집을 방문해 치료해주고 있는데 하루 세끼 식사는 내가 직접 챙기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딸의 얘기에 백건우는 “정성을 다해 엄마를 보살피고 있는 딸한테 고마울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윤정희의 동생들이 나섰다. 최근 윤정희의 동생들은 언론사에 배포한 공식 입장을 통해 “윤정희가 귀국하여 한국에서 따뜻한 보살핌을 받기를 바라고 있다. 만약 허용된다면 형제자매들이 진심으로 보살필 의지와 계책을 갖고 있다”며 “청와대 및 문화부, 그리고 영화인협회에서는 윤정희의 근황을 자세히 살펴주시어 그녀가 노후에도 가장 평안하고 보람 있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미 딸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윤정희를 동생들이 한국으로 데려와 진심으로 보살피고 싶다며 청와대와 문화부, 그리고 영화계에 도와달라고 밝히고 있으니 여기까지만 보면 분명 ‘미담’이다.
결코 재산 분쟁은 아니라지만…
문제는 아무리 미담일지라도 조금만 삐끗하면 막장 드라마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윤정희가 뉴스메이커가 된 까닭은 이런 미담 때문이 아닌 ‘방치 논란’으로 인해서다. 논란은 윤정희의 동생들이 지난 2월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그들은 “(윤정희가)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홀로 투병 중이다. 방치된 채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보낸다”며 “감옥 같은 생활을 한다. 우편물을 보내도 반송된다. 인간의 기본권은 찾아볼 수 없다. 필요한 약을 제때 복용하지 못하면 치명적인 사태가 올 수 있어 염려된다”고 주장했다. 아픈 윤정희가 이국땅 프랑스 파리에 방치돼 있다는 소식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백건우 측은 즉각 이런 의혹을 부인했다. 최근 국내 공연을 위해 귀국한 백건우는 “윤정희는 하루하루 아주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 인터뷰에서 밝혔듯 딸 진희 씨의 옆집에서 가족과 법원이 지정한 간병인의 돌봄을 받으며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윤정희의 동생들이 딸 진희 씨와 프랑스 법원에서 소송을 벌였다는 사실까지 알려졌다. 프랑스 법원이 딸 진희 씨를 윤정희의 재산 및 신상 후견인으로 지정하자 윤정희의 동생들이 이의를 신청하는 소송을 제기했는데 결국 2020년 9월에 패소 했고 다시 항소했지만 11월 최종 패소한다. 그리고 3개월 정도 지난 시점인 2021년 2월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린 것이다.
재산 및 신상 후견인 지정을 두고 소송을 벌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중은 윤정희를 서로 돌보기 위한 미담이 아닌 재산 분쟁일 가능성에 주목한다. 이렇게 장르가 막장 드라마로 급변했다. 프랑스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윤정희는 배우자 및 딸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현재 안전하고 친숙한 환경에서 안락한 조건을 누리고 있다”며 “배우자와 딸이 윤정희에게 애정을 보이지 않아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고 금전적 횡령이 의심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동생들은 “백진희는 프랑스 시민이지만 (소송을 제기한) 세 동생은 외국 국적으로 시작부터 불공정한 재판이었다”며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자칫 동생들이 국내 법원에서 다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윤정희의 동생들은 결코 윤정희의 재산을 둘러싼 분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모든 재산의 처분 관리권이 백건우와 딸 진희 씨에게 있고 형제자매에게는 아무런 권한이 없음을 공식 입장을 통해 밝혔다. 프랑스에서의 소송 역시 동생들이 후견인이 되기 위한 목적이 아닌 조카딸은 후견인이 되기에 부적절한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석연치 않은 구석은 남아 있다. 동생들은 공식 입장을 통해 진희 씨가 프랑스에서 태어나 국적을 취득하고 자랐으며 부모와의 불화로 10여 년 동안 연락을 끊고 지냈고 매우 특이한 가정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이유로 조카딸을 못 미더워한다는 것이다. 누나를 위한다는 이유로 누나의 외동딸을 지나치게 공격하는 것으로 보이는 데다 ‘특이한 가정생활’을 언급한 부분은 사생활 침해로 보일 수도 있다.
재산 다툼이 아니라면서도 윤정희가 1971년에 건축된 여의도 시범아파트 두 채(36평, 24평)를 1989년과 1999년에 구입했고, 그 외 예금 자산이 있다며 그의 국내 재산을 매우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어 ‘윤정희의 재산이 윤정희를 위하여 충실하게 관리되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현재 윤정희의 재산이 윤정희를 위해 관리되지 않는다는 뉘앙스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윤정희의 동생들이 재산 분쟁 때문에 ‘윤정희 방치 논란’을 공론화한 것은 아니겠지만 ‘윤정희의 재산이 윤정희를 위해 관리되기 위해서’일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는 없어 보인다.
게다가 공식 입장을 통해 밝힌 ‘형제자매들이 진심으로 보살필 의지와 계책’ 역시 윤정희의 재산을 활용하는 방식일 수 있다. 실제로 윤정희의 동생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프랑스와 서울에 아파트 5채를 소유 중인데 이 가운데 한 채만 처분해도 간병비가 충분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