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책방
‘미친 언어’ 시인 김승희
고등학생 때, 시를 만났다. 이전에도 시를 쓰거나 읽은 적은 있었지만 시가 그렇게 촘촘히 몸속을 파고든 경험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늘 학교에 늦던 같은 반 아이가 주말에 종로서적에서 사 왔다며 김승희의 시집을 내밀었다. 미친 언어에 순식간에 말려들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가 '불의 여인’ ‘언어의 테러리스트’ ‘초현실주의 무당’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에게 매혹된 것이 나뿐이 아니었다는 것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연자원은 슬픔 뿐이라고”(‘어두운 계단을 내려가며’ 중), “캐내도 캐내도 캐내도 폐광되지 않는 이 절망의 끝없는 채탄”(‘연립주택’ 중)에 줄을 긋던 그때의 나는 슬픔과 절망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검고 단단한 박쥐 우산살 같은 / 글씨들은 찢어진 우주를 / 홀로 깁고 있다”(‘글씨의 촛불’ 중)에 밑줄을 그을 때, 문학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막연하게 감을 잡고 있었을까. “길은 많으나 / 갈 수 없고, / 자유는 많으나 / 통행금지의 자유만 유효한 곳”(‘풍선껌 권하는 세상’ 중)이라는 문장은 내게 세상에 대해 알려주었다. “정말 두려운 건 / 삶이란, 꼭 언제나 반드시 / 어제의 무덤 위에서 살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지”(‘재개발지역에서’ 중)라는 시인의 목소리는 아직도 내가 삶의 고비에 서 있을 때면 아득하게 들려온다.
김승희는 1952년 3월 1일 광주에서 태어났다.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국어국문학과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모교의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었다. <태양미사> <왼손을 위한 협주곡> <미완성을 위한 연가> <달걀 속의 생>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도미는 도마 위에서> 등의 시집을 썼고 <산타페로 가는 사람> <왼쪽 날개가 약간 무거운 새> 등의 소설집을 냈다. 소월시 문학상, 고정희상, 질마재 문학상, 올해의 예술상, 한국서정시문학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시는 내게 절망도 적당히 해서는 안 된다는 준열한 선언 같은 것이었고, 앞서서 계속 계속 파고 들어가는 등짝 같은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에 그는 바닥에 닿았다. 그곳에서 찾아낸 것은 ‘그래도’라는 섬이다. “가장 낮은 곳에 /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그의 발견은 바닥에서 발견한 이들의 눈부심을 말한다. “그대 가슴속의 따스한 미소와 장밋빛 체온 /이글이글 사랑과 눈이 부신 영광의 함성”은 바닥에 있는 이들이 궁색하고 처연하리라는 짐작에 못을 박는다.
최근에 나온 <어머니의 음성같이 옛 애인의 음성같이>에서는 세계문학을 그의 시선으로 본다. 1992년에 나왔던 책을 손질해 다시 냈다. 당대 사람들을 뿌리부터 흔들었던 작품을 들려주는 그의 목소리가 의외로 따뜻하다. 절망의 가장 밑바닥에서 발굴해온 희망으로 책을 읽으니 삶이 다시 보인다. 그래서 그가 권하는 것은 ‘책의 즐거움’이 아니라 ‘책의 새로움’이다. 그곳에 절망이 있건 희망이 있건, 책을 통해 세계를 확장하는 과정은 기쁨일 수밖에 없다고. 책은 인생보다 크다고.
글 박사(북 칼럼니스트)
<#예능작가>
예능 작가 16명의 방송 이야기가 담긴 책. 예능 콘텐츠를 만들 때 거치는 과정에 대한 솔직한 대화를 엮었다. 한국 최고 예능 작가들의 프로 의식과 열정을 두루 느낄 수 있다. 김진태, 도토리, 1만6천5백원
<민사고 행복 수업>
민족사관고등학교 소속 심리학 교사 겸 진학상담부 상담 교사로서 느낀 점과 사례를 심리 전문가의 시선으로 정리해낸 책. 실제 수업 내용이 수록돼 교육 지침서로 꼽힌다. 김여람, 생각정원, 1만4천원
<악의 평범성>
<한라산>을 출간한 이산하 시인의 신작. 시인의 날 선 시선과 감성을 토대로 안온한 일상으로 포장된 오늘날, ‘적’을 만나 어떻게 빛을 발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편으로 빼곡한 시집이다. 이산하, 창비, 9천원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가장 좋은 시들만 골라 담았다는 나태주 시인의 말로 기대감을 모은 시집. 독자들이 즐겨 찾는 시들로 구성됐다. 시인은 사는 일이 힘들거나 어정쩡할 때 읽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나태주, 문화의힘, 7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