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iaryong
결혼 후 서울 북쪽에 살던 박지현·안영아 씨 부부는 3년 전 이곳, 경기도 외곽의 한 도시로 이사 왔다. 친한 친구들의 추천으로 온 동네. 동네를 감싸 안은 산과 맑은 공기, 고즈넉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지금 집으로는 2020년 가을에 이사를 왔다. 무엇보다 부부의 마음에 드는 건 하루 종일 햇빛이 은은하게 스며드는 집이라는 점이었다. 영아 씨는 몇 차례 이사를 다니면서 햇빛이 사람의 감정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았다.
“예전에 살던 집은 동향이었어요. 햇빛이 아침에 5분 정도 반짝 들죠. 우리 집 앞으로 다른 아파트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어서 낮에도 어두운 집이었어요. 왜 햇빛을 자주 쬐어야 하는지 그곳에서 알았어요. 하루 내내 집에 있는 날에는 이유 없이 울적해지곤 했거든요.”
이제 부부는 집을 고를 때 우선순위로 방향을 가장 먼저 고려하게 됐다. 그렇게 신중하게 고른 집이 지금 사는 곳이다. 집 계약 전 몇 차례 다녀가며 방향을 체크하고 구조 등을 확인했는데, 부부가 마침 원하던 방향과 구조였다. 부부는 요즘 다시 그들의 취향에 맞게 집을 꾸미는 데 열중하느라 분주한 일상을 보낸다. 특히 섬세하고 완벽한 성향의 남편 지현 씨는 실행에 옮기기 전 거치는 시뮬레이션 과정이 재밌다.
“사진 편집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우리 집과 새로 들어오는 아이템이 어우러지는지 확인해요. 예를 들면 새하얀 벽에 하나씩 아이템을 올려보는 거죠. ‘이 정도면 괜찮겠다’는 판단이 서면 실행해요. 대부분 시뮬레이션해본 것과 비슷하게 완성돼요. 이 방법은 실패 확률을 줄이고 만족도는 높이죠.”
부부의 취미가 된 ‘인테리어’
집을 가꾸는 것은 곧 부부의 취미가 됐다. 둘은 작은 소품 하나도 의논해 구입한다. 또 취미와 취향이 맞는 부부의 집은 어려서부터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했던 소년과 어려서부터 방 꾸미기가 취미였던 소녀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특히 그녀는 작은 방 안에서 늘 변화를 시도했다고.
“어릴 적부터 방 꾸미는 것을 좋아했어요. 침대, 책상, 서랍장 정도만 겨우 들어가는 작은 규모의 방이었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가구를 이곳저곳으로 옮기곤 했죠. 지금도 소품을 자주 옮기곤 해요. 이걸 딸 예원이 그대로 닮은 것 같아요.”
새해에 초등학생이 되는 8살 예원과 결혼 후 3개월 뒤부터 함께 살고 있는 10살 된 강아지 사랑이까지 가족은 넷이다. 집은 주방과 거실, 안방과 예원이 방으로 나뉘고 사랑이의 공간은 거실 한편에 마련돼 있다. 방 하나는 아직 미완성이다. 2월이면 운동방 또는 서재 겸 공부방으로 변신할 예정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집을 한마디로 말하면 ‘조화로움’이다. 기본은 화이트 컬러. 곳곳에 밝은 컬러로 포인트를 줬지만 소품 하나를 고를 때도 신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화이트에 밝은 컬러를 매치하는 것을 선호해요. 컬러는 익숙한 공간에 활력과 재미를 줘요. 하지만 잘 못 고르면 그것만큼 촌스러운 게 없어요. 그릇된 선택을 하지 않으려고 심사숙고해요.”
부부는 이사를 오면서 머릿속에 큰 그림을 그리고 인테리어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나갔다. 기존 주방 옆 알파룸은 문과 벽을 철거하고 가족이 식사하는 근사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ㄷ자형 주방은 싱크대와 상부 장을 철거하고 아일랜드 주방을 만들었다. 싱크 볼과 인덕션은 지현 씨가 직구한 것이다. 코로나19, 구조상의 문제 등으로 지난한 과정을 거쳤지만 지현 씨는 하나하나 완성해가는 과정이 좋다.
“코로나19 탓에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배가 늦춰지거나 주방 상판 스케줄이 틀어지고, 빌트인 가구 사이즈가 애매하게 맞지 않으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출 때까지 문제가 좀 있었어요. 싱크 볼 배관도 맞지 않아 속을 좀 태웠는데 이케아 배관으로 겨우 해결했죠. 문제가 하나하나 해결되고 우리 집이 완성돼가는 순간 크게 성취감을 느낍니다.”
이렇게 완성한 주방은 영아 씨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 됐다. “생각해보면 주부는 대부분의 시간을 주방에서 보내잖아요. 요리 하나를 하더라도 준비하고 조리하고 먹고 치우고 설거지하는 모든 일이 주방에서 이뤄져요. 예전부터 예쁜 주방을 갖고 싶던 꿈이 이뤄졌어요. 이곳에서 가족을 위해 더 정성껏 요리해야겠어요.”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한 일상의 공간
거실 천장에는 실내 공기 순환과 사랑이의 호흡기 건강을 위해 실링팬을 달았다. 가드닝과 사랑이를 위한 영아 씨의 제안이었다. “이사 오면서 식물을 제대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사랑이를 위해서도 필요했죠. 아래의 먼지를 위로 보내는 역할을 해요.”
예원이의 방은 영아 씨가 특별히 신경 써 인테리어한 공간이다. 파스텔 톤의 침구와 원형 커튼, 갈런드는 물론 아기자기한 장난감이 아이방 특유의 유쾌한 분위기를 풍긴다.
“예원이가 태어날 때부터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요. 장난감은 모두 제가 고른 건데 예원이가 자기 의사 표현을 하는 나이가 되면서 ‘뽀로로’를 들이려고 하네요. 저는 늘 예원이가 데려온 뽀로로를 숨기죠. 같은 과정을 반복하는 모녀의 작은 신경전이랄까요.”(웃음)
그녀는 해가 들지 않는 집에 살던 시절, 주변에 지인도 친구도 없어 집을 꾸미면서 안정을 찾고 활력을 얻었다고 한다. 코로나19 시대 전부터 강제 집콕을 하면서 웬만하면 예쁜 것으로 집을 채우고 싶었다. 그런 과정을 거친 후 부부의 집은 모든 시간을 슬기롭게 보낼 수 있는 공간이 됐다. 이제 그녀는 친구들에게 인테리어 팁을 건넬 정도로 리빙 인플루언서가 됐다.
결혼 후 더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진 지현 씨는 인테리어 리빙 브랜드는 물론 브랜드의 역사까지 줄줄이 꿰고 있을 정도로 리빙 전문가가 다 됐다. 그러면서 생각한 것이 오래된 것들의 변하지 않는 가치다. 수백 년 전 만든 제품이 여전히 아름다운 이유를 골똘히 생각하기도 한다. 결론은 집을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아름다운 것들로 채우고 싶고, 또 집은 가족의 삶이 묻어나는 공간이길 바란다. 그는 하루치의 업무를 마치고 돌아와 처음 마주하는 집의 분위기는 컨디션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퇴근할 때 어서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죠. 공간이 화사하고 예쁘면 귀가하는 순간 피로감이 싹 사라집니다.”
영아 씨는 이곳으로 이사 오고 나서 또 하나의 취미가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젖히고 산 위로 해가 붉게 떠오르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이다. 여기에 그녀가 좋아하는 커피 한 잔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지현 씨는 거실 한편에 놓아둔 스피커에서 재즈나 클래식 선율이 흐르는 순간 온갖 근심과 걱정이 사라진다. 그렇게 부부는 그들의 취향을 오롯이 품은 집에서 안정감을 찾고 만족감을 얻는다. 어쩌면 집을 이토록 아름답게 가꾸는 건 그들의 인생을 아름답게 꾸리는 일일 것이다.
COUPLE’S FAVORITE
박지현·안영아 씨 부부의 일상이 담긴 리빙 아이템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