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커피 마시기 좋은 계절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외교관인 탈레랑은 커피를 "악마같이 검지만 천사같이 순수하고 지옥같이 뜨겁지만 키스처럼 달콤하다"고 표현했다. 하루 50잔 이상의 커피를 마신 것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문학가 발자크가 남긴 커피 예찬도 있다. "커피가 위로 미끄러져 들어가면 모든 것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념들은 위대한 군대처럼 전쟁터 앞으로 나가고 싸움은 벌어진다." 커피를 향한 이들의 묘사가 근사하다.
현대사회의 모습도 저들의 절절한 커피 사랑과 별반 다르지 않다. 커피는 어느새 우리 일상에 일용할 양식이 됐고, 흡사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됐다.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거나 카페 테라스에 앉아 에스프레소 한 잔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더 이상 뉴욕 맨해튼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가을 냄새가 짙어졌다. 요즘처럼 찬 바람 살랑이는 계절에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이 더 간절하다. 커피도 제철이 있다고 하는데, 여름의 기력이 쇠하고 날이 선선해지는 가을은 커피를 마시기 딱 좋은 시기다. 현재 전 세계 국가의 3분의 1가량 50개국 이상에서 재배하는 커피는 대부분 북회귀선과 남회귀선 사이 '커피 벨트(Coffee Belt)'에 위치하는 국가에서 재배한다.
보통 12월부터 3월까지 커피를 수확하고, 좋은 품평을 받은 원두는 5~6월 배를 타고 약 한 달여 지나 우리나라에 도착한다. 신선하게 로스팅한 원두가 완전한 커피 한 잔으로 나오는 시기가 바로 가을이다. 게다가 가을은 로스팅하기 알맞은 습도와 온도, 날씨까지 갖췄다.
알면 더 맛있는 커피의 역사
검붉은색의 시큼하고 쌉싸래한 열매는 어떻게 커피가 돼 우리를 황홀하게 할까? 사실 커피를 먼저 발견한 건 염소다. 염소를 돌보는 일을 했던 에티오피아의 목동, 칼디는 어느 날 저녁 한 식물의 잎사귀와 빨간 열매를 먹은 염소들이 유독 힘차게 뛰노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호기심에 열매를 직접 먹어봤는데, 피로감이 사라지고 정신이 번쩍 들며 황홀한 느낌이 드는 것을 확인했다고 전해진다.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커피는 아랍의 순례자들을 통해 중동 지역으로 넘어가 고급 음료로 개발됐다. 이후 십자군전쟁을 통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유럽을 정복했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커피의 향과 각성 효과에 열광하며 문예부흥과 함께 커피의 부흥도 시작됐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건 구한말이다. 1882년(고종 19) 외국과 통상협정이 이뤄지면서다. 이후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던 고종 황제가 커피를 처음 마셨고, 또 즐겨 마셨다고 전해진다.
커피도 트렌드가 있다
우리는 대부분 이탈리아 사람들의 방식으로 커피를 즐긴다.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내린 커피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며 세계인의 삶에 뿌리내렸다. '에스프레소' '카페라테' '마키아토' 등 커피 이름만 자세히 들여다봐도 이탈리아어가 제법 많다. 커피 원액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더해 연하게 만든 것이 '아메리카노', 따뜻한 우유를 더한 것이 '카페라테', 우유에 우유 거품까지 더한 메뉴가 '카푸치노'다. 이 외에도 변형된 여러 가지 커피 메뉴가 있다. 하지만 모두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어야 탄생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부는 스페셜티 커피 열풍은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직접 커피 산지를 찾아 여행하는 청년 커피홀릭(Coffee-holic·커피 마니아)도 생겨났다. 까다로운 기준과 공정을 거치는 스페셜티 커피는 특정 산지와 품종, 재배법이나 정제법을 대표할 만큼 품질과 가치가 뛰어난 커피를 말한다. 스페셜티 커피를 제공하는 브랜드와 보급 매장도 여럿이다.
우리나라에 스페셜티 커피 열풍을 가속화시킨 건 지난해, 미국에서 시작한 스페셜티 브랜드 블루보틀이 들어오면서부터다. 일반 커피 전문점과 달리 손님이 직접 원두를 고를 수 있고, 원두와 커피 우려내는 방식에 따라 맛도 다르다. 주문과 동시에 원두를 갈아 핸드드립 방식으로 커피를 만들기 때문에 '슬로 커피'로 알려졌다. 블루보틀 이후에는 스페셜티를 내놓는 작고 개성 있는 커피 전문점이 여럿 생기고 있다. 스페셜티 커피는 이제 동네 카페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됐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가정에서 커피를 즐기는 문화가 생겨났다. '홈 카페' 열풍은 관세청 수출입무역 통계만 봐도 알 수 있다. 올 1월부터 7월까지 우리나라 커피 수입량은 9만 355톤으로, 전년 동기 8만 5,749.8톤보다 5.37% 증가했다. 약 400번 휘저어 탄생하는 '달고나 커피'도 홈 카페에서 탄생했다.
커피와 건강에 대한 이야기
커피는 건강에도 도움을 주는 기특한 음료다. 커피에는 카페인을 포함해 다양한 성분이 들어 있다. 카페인은 쓴맛이 나는 알칼로이드의 일종으로 신경 자극 물질이다. 순간 집중력과 암기력을 향상시키고 단순한 편두통에도 효과를 보인다.
또 커피는 골다공증 위험을 감소시킨다. 폐경 여성이 하루 1~2잔 커피를 마시면 뼈 건강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골밀도 검사를 받은 폐경 여성들을 대상으로 커피와 골다공증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결과, 커피를 하루에 1잔 마시면 33%, 2잔 마시면 36% 골다공증 위험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커피는 간 건강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2,700여 건의 간암 환자를 포함하는 통계 자료들을 종합·분석한 결과,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간암에 걸릴 위험도가 43% 감소했다. 대한간학회는 2018년 만성 간 질환자가 커피를 마시면 간암 발생 억제에 도움이 된다는 진료 지침을 발표했다. 해외의 수많은 연구 결과를 토대로 커피의 간암 억제 효과를 학회의 공식 입장으로 진료 가이드라인에 명시한 것이다.
하지만 커피에 반응하는 정도는 나이와 건강 상태에 따라 개인차가 있다. 하루 카페인 섭취 권장량도 따로 정해져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정한 우리나라 국민의 카페인 하루 섭취 기준은 성인 400mg 이하, 임산부 300mg 이하, 어린이·청소년 2.5mg/kg(체중) 이하다. 이 기준에 따르면 캔 커피 4.8캔, 커피믹스 8.3봉, 캡슐커피 5.4잔, 커피 전문점 커피 3.3잔이 하루 섭취 권장량에 해당하는 양이다.
우리의 뜨거운 커피 사랑
우리나라는 '커피 공화국'으로 불릴 정도로 커피를 향한 사랑이 뜨겁다. 관련 통계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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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 해 동안 카페에서 마신 커피 매출액은 2007년 6억 달러 세계 7위에서 2018년 43억 달러 세계 3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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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
우리나라 커피 소비량은 성인 1인당 연간 353잔(2018년 기준)이다. 평균 매일 한 잔가량 커피를 마시는 셈. 세계 평균 132잔의 2.7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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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1999년 이화여대 앞에 1호점을 연 스타벅스는 올 2월 기준 1,008곳을 운영 중이다. 스타벅스는 '스타벅스 지수'라는 경제 지표가 생길 정도로 일상의 공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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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
국내 커피 전문점 수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20년 식품외식 통계에 따르면 국내 커피 전문점 수는 2016년 5만 1,551곳에서 2017년 5만 6,928곳, 2018년 6만 6,231곳 등으로 매년 5,000곳 이상 새로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