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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의 원작자 정세랑

현재 국내 출판 신에서 가장 핫한 작가 정세랑은 마니아층을 거느린 젊은 작가다. 넷플릭스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On November 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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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는 심드렁한 듯 보이지만 기발하고 엉뚱하고 따뜻하다. 그래서 유달리 '마니아'가 많다.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출판사 민음사와 문학동네에서 편집자로 일하다가 장르 문학을 쓰기 시작한 작가는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하며 단번에 대세 작가가 됐다.

2010년 단편부터 2014년 연작 중편을 거쳐 2020년 하반기 최대 화제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보건교사 안은영>의 원작자로 시리즈의 대본을 썼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평범한 이름과 달리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젤리'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보건교사 '안은영'이 새로 부임한 고등학교에서 심상치 않은 미스터리를 발견하고, 한문교사 '홍인표'와 함께 이를 해결해가는 명랑 판타지 시리즈다. 정세랑 작가와 개성 넘치는 연출가 이경미 감독의 만남으로 제작 확정과 동시에 화제를 모았다.

정 작가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능력이 불편하고 부담스럽지만 아이들을 위해 싸우며 살아가는 안은영의 이야기를 통해 "선한 어른들이 아무 대가 없이 학생들을 지키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며 "안은영의 정체성은 그대로, 학교를 둘러싼 세계는 더 단단하고 입체적으로 강화돼 기쁘다"는 소감을 남겼다.


국내 소설이 영화화된 적은 많지만 시리즈물로 만들어진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동료 작가들이 많이 부러워하고 응원도 해줬을 것 같아요. 백영옥 작가님의 <스타일>, 정이현 작가님의 <달콤한 나의 도시>, 김탁환 작가님의 <불멸의 이순신> <황진이>, 박하익 작가님의 <선암여고 탐정단>, 송시우 작가님의 <달리는 조사관>, 문유석 작가님의 <미스 함무라비> 등 여러 작품이 큰 사랑을 받아 아주 드문 경우는 아니지만 동료 분들이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셨어요. 그 흐름이 이어지면 좋겠어요.


작가님의 작품이 처음으로 영상화됐는데, 소감도 궁금해요. 영상의 매력이 가득한 작품으로 완성된 것 같아요. 장면마다 많은 분이 얼마나 열정을 쏟아부었을지 느껴지더라고요. 혼자 하는 작업과 200명이 하는 협업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 기회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마니아를 거느린 몇 안 되는 작가입니다. 독자분들이 주시는 애정이 계속 써나갈 수 있는 연료가 돼 지칠 때 다시 일어나는 것 같아요.


국내 작가 중 이례적이게도 장르 문학과 순수문학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요. 저는 쓰고 싶은 주제에 가장 맞는 양식을 골라 유연하게 작품을 계속하고 싶어요. 경계선 너머를 탐험하고, 또 확장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요즘은 너무 쓰고 싶은 역사 추리소설이 있어서 자료를 모으는 중입니다.


평소 글 작업을 하는 패턴이 궁금합니다. 주로 오전에 새로운 분량을 쓰고 오후에 전날 쓴 부분을 고칩니다. 직장에 다니는 것처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일하고 주말에는 쉬고 있어요.


소설을 쓸 때와 대본을 쓸 때의 차이점은 어떤 것이었나요? 대본은 아무래도 예산을 고려해야 하니까 제약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제약들이 쓰는 재미를 주기도 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실현 가능하게 쓰면서 재밌을까 궁리하는 과정이 좋았어요. 소설은 그에 비해 예산이나 특수 효과를 고려하지 않고 그야말로 마음껏 쓸 수 있어 좋고요.


드라마 작업을 하면서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뭔가요? 여러 사람이 자신의 전문성과 재능을 빛내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게 즐거웠어요. 소설은 혼자 써서 좀 고립될 때가 있는데 영상 작업은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가 화학반응을 일으켜 좋은 자극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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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영' 캐릭터는 어떻게 떠올리게 됐나요? 2010년에 처음 단편으로 쓸 때 편집자로 일하면서 소설 작업도 하고 있었어요.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 글을 쓰느라 체력이 달렸는데, 투잡으로 힘들어하는 주인공을 떠올리게 됐죠. 친한 친구들이 교직 생활을 많이 해 영향을 받았고, 무심한 직장인인 듯 싶다가도 학생들에게 애정이 있는 모습이 멋져 보이더라고요. 눈에 띄게 밖으로 드러나는 열정도 있지만 은은하게 오래 타는 열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심드렁하게 심지 있는 사람들이 공동체에 기여하는 게 분명 있는 것 같아요.


그 상상력의 원천이 뭔가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시간이 꼭 필요해요. 멍하게 딴생각하는 사람을 보면 주변에서 뭐라도 하라고 하지만, 그런 시간이 창작자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현실에서 살짝 미끄러지는 걸 잡지 말고 풀어두는 거죠.


'안은영'은 히어로예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히어로의 조건이 있다면요? 약한 사람을 돕기 위해 자기 이익을 내려놓는 사람, 이해받지 못하고 오해만 받아도 계속해나가는 사람, 보편적인 것과 어긋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보상을 바라지 않으면서 세계에 친절한 사람이오.


'젤리'를 퇴치할 수 있는 많은 도구 중 익살스러운 '무지개 칼'과 '비비탄 총'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가볍고 접으면 가방에 들어갈 수 있고, 고장 나도 쉽게 교체할 수 있어서요(웃음). 또 안은영이 최대한 다치지 않도록 근거리 무기와 원거리 무기가 다 있었으면 했어요.


시리즈는 소설보다 좀 더 그로테스크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드라마의 톤을 이렇게 결정한 이유가 있나요? 협업은 다양한 해석이 덧붙는 과정이라, 원작에서는 저변에 깔려 있었던 그로테스크함을 수면으로 더 끌어올렸죠. 특히 안은영의 외로울 수밖에 없는 내면에 집중하려고 했는데 바뀐 톤과 잘 어울리지 않나 생각해요.


이경미 감독과의 협업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지 궁금해요. 제가 쓰는 방식은 수채화처럼 겹겹이 얹는 식이고 감독님은 유성 매직으로 확실한 선을 긋는 듯한 개성이 있어 결과적으로 리듬이 독특한 시리즈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캐릭터를 감독님과 함께 만들며 가장 염두에 뒀던 부분이 있다면 뭔가요? 안은영과 학생들의 관계를 깊고 섬세하게 다루고 싶었어요. 그 관계가 안은영의 정체성과 결부되니까요. 학생들에게 가지는 관심, 애정, 사명감이 자연스럽게 드러났으면 했어요.


소설과 시리즈 속 안은영의 느낌이 사뭇 달라요. 원작은 '일상 속 히어로' 같은 차분한 느낌이었다면 영상 속 안은영은 '튀어요'. 감독님과 정유미 배우의 해석이 합쳐진 결과물인데, 만족해요. 저는 촬영 현장을 잘 모르지만, 현장에서만 탄생하고 빚어지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요? 생동감이 넘쳐서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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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의 SNS에는 작가의 추천 작품을 비롯해 작가의 이런저런 취향을 만날 수 있다. @serang_c


많은 배우가 함께 작품을 하고 싶은 감독으로 이경미 감독을 꼽아요. 애초에 이 감독이 연출을 맡는다고 했을 때 어땠나요? 예전부터 감독님의 작품을 챙겨 봤는데 보고 나면 오랫동안 생각나더라고요. 줄거리 전체가 떠오를 때도 있고 장면장면의 잔영이 오래 남기도 하고요. 그렇게 마음에 달라붙어 지워지지 않는 작품을 어떻게 만드는지 평소 궁금했기 때문에 맡아주셔서 기뻤죠.


작업 과정에서 느낀 이 감독의 연출 특징이 있다면요? 원작을 치밀하게 들여다본 후 과감하게 변화를 추진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러니까 '천재적인 점프'를 하는 게 감독님의 연출 특징이에요. '거기서 그런 점프를?' 하고 따라가다 보면 탁월한 도약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돼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안은영이 섹슈얼하지 않길 바랐어요. 이 작품에는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었거든요. 작품의 색채를 옅게 하더라도 현실 속 직업인에 대한 존중이 우선됐으면 했어요.


그 외 작가님이 생각하는 <보건교사 안은영>의 명장면, 명대사,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면요? 크게 웃었던 장면은 남주혁 배우가 "아이고, 다 날아가네"였는데 애드리브였다니 믿기지 않아요. 마음 저린 장면들은 안은영이 '백혜민'의 입에 옴을 넣어주고 쓱 닦아주는 장면과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엉엉 우는 장면이었어요. 보신 분들은 아마 공감이 갈 거예요. 정유미라는 배우는 어떻게 그런 울음을 연기하는지, 보고 있자니 같이 울고 싶어지더라고요. 제일 곱씹는 부분은 안은영이 '화수'에게 "내가 실수하거나 실패하면…" 하고 말하는 대사요. 그 대사를 쓰면서 안은영의 두려움이 원작을 쓸 때보다 제대로 보게 됐어요. 고립된 채 방어선이 되는 사람의 아슬아슬함에 대해서요.


원작 속 세계 혹은 작가님의 상상이 잘 구현됐다고 느낀 장면은요? 옥상 세트와 철조망이 머릿속에서 그대로 꺼내진 것 같아 좋았어요. 안은영이 욕조에 흉터가 많은 몸을 담그고 반신욕했으면 좋겠다고 쓴 부분도 잘 구현된 것 같아요.


작가의 말에서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다"고 했는데요, 부연 설명을 듣고 싶어요. 엄숙하거나 어렵지 않은 문학을 하고 싶었어요. 가볍고 다정해서 피곤한 날에도 집에 들어와 읽을 수 있는 문학이오. 진지한 문학만큼이나 가벼운 문학도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 머릿속의 달리는 상상을 속도 제한 없이 따라가고 싶기도 했습니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라면, 세계는 이상하고 위험하지만 서로 손을 내밀어 잡아준다면 좋겠다는 것이겠지요.


어떤 장면을 쓸 때 쾌감이 제일 컸나요? 안은영이 "엎드려!" 하고 외치는 장면요.(웃음)


원작자로서 일부 생략되거나 축약되는 과정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있었나요? 포기할 수 없었던 부분은 '옴잡이' 백혜민 에피소드와 가로등 아래 '김강선' 에피소드요. 그 두 에피소드는 안은영의 시작과 현재에 맞물려 있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원작과 비교해보면 등장인물과 에피소드는 같지만 이야기 전체를 분해해 재조립한 느낌입니다. 다시 구성한 이유는 뭔가요? 넓은 시간과 공간에 흩어져 있던 인물들끼리 친구가 됐으면 했어요. 더 입체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았거든요. 인물들 사이의 교류가 훨씬 증폭되게 만들면서 에피소드마다 완결성은 좀 양보해야 했지만 새로운 선들이 생긴 것 같아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배우들의 싱크로율은 어땠나요? 완벽했어요. 정유미 배우는 모두가 처음부터 원했던 안은영이었기에 높은 기대가 따라왔는데 그것을 장대높이뛰기 선수처럼 훌쩍 뛰어넘었어요. 캐릭터 그 자체가 됐고, 눈빛과 손목 스냅까지 완벽해서 캐스팅에 천운이 있었다고밖에 다른 말을 못 하겠어요. 남주혁 배우는 원작보다 훨씬 다채로운 면을 보여줬고 동시에 유머러스한 이입을 이끌어내 제가 인표의 내면을 잘 몰랐었구나 깨달을 정도였어요. 화수 역의 문소리 배우도 압도적 존재감 때문에 화수의 과거에 대해 쓰고 싶어졌고요. '매켄지' 역할의 유태오 배우는 선과 악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역할에 딱 들어맞아 안은영의 완벽한 대립상이었어요. 김강선 역할의 최준영 배우는 작품에 서정성을 부여했다고 생각해요. 특히 저는 아역 배우분들, 학생 역할의 배우분들 한 분 한 분에게 반했습니다. 캐스팅 담당자분들이 어떻게 고심하고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해요.


극 중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특히 애정하는 캐릭터가 있을까요? 교직에 있는 친구들이 매일매일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싸우고 있다는 생각을 해서 만든 캐릭터가 안은영과 홍인표예요. 그래서 두 사람에게 가장 애정이 갑니다. 미성년자를 보호하고 시민으로 빚기 위한 노력을 계속한다는 것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어요.


사실 10년 전만 해도 한국 문단에서 sf는 비주류 취급을 받았어요. 그럼에도 오랜 시간 한 우물을 파왔는데, <보건교사 안은영>이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되면서 조금은 위로를 받았을 것 같아요. 문학계에서는 너무 가벼운 문학을 한다고 은근하게 배제하는 편이었는데, 영상계에서는 처음부터 두 팔 벌려 환영해줬어요. 큰 위로였습니다. 그래도 자원과 자본이 적게 들고 작은 디테일까지 다 장악할 수 있는 소설이 제일 좋아서 양쪽을 오가면서 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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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걸 뻔히 알면서도 옳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매력적인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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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2를 기다리는 시청자도 많아요. 시즌 2에 대해서는 작품을 공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논의한 적이 있는데, 아직 정해진 것이 없어요. 제작된다면 꼭 참여하고 싶고, 상황이 여의치 않아 제작이 안 된다면 머릿속에 구상해둔 내용을 책으로 쓰고 싶어요. 시즌 1의 미스터리를 시즌 2에서 속 시원하게 밝히고 싶어요.


이 작품이 대중에게 어떻게 다가가길 바라나요? 소설도 시리즈도, 외롭고 지쳤을 때 다시 보면 힘을 주는 세계였으면 좋겠어요.


<보건교사 안은영>을 영상화한 이번 경험이 이후 소설 집필에 영향을 미칠 것 같은지도 궁금해요. 소설은 시간과 공간을 부드럽고 넓게 펼칠 수 있는 반면, 영상에서는 집약적이고 압축적으로 써야 해서 그 점에 대한 고민을 하며 쓸 것 같기는 해요. 예를 들어 소설에서는 몇 년 동안 학교 전체에서 일어난 일이, 영상 시리즈에서는 몇 달 동안 2학년 6반에서 일어난 일이 되죠. 양쪽의 매력이 다른 듯한데 서로서로 스며들 것 같아요. 그리고 올해 소설을 써보니 대화가 엄청 늘었더라고요.


최근작인 <시선으로부터>부터 <피프티 피플>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이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작업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다양한 인물을 선호하는 이유와 소화할 수 있는 비결은 뭔가요? 다양한 사람이 와글와글하는 사회의 축소판이나 모델하우스 같은 이야기를 좋아해 자주 쓰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가 여성이니까 여성이 장식적인 역할보다 중요한 역할을 맡는 쪽을 선호하고, 현재 문화를 활발하게 향유하는 분들은 아무도 배제되지 않는 이야기를 원한다고 생각해요.


출판사에서 일한 경험이 작업하는 데 도움이 됐나요? 출판사에서 잡지를 만들며 인터뷰어 역할을 했던 것이 사전 작업할 때 도움이 됐어요. 관심 있는 주제의 책·기사·인터뷰 자료를 열심히 모아두는 편이에요. 6~7년씩 자료만 모을 때도 있어요.


어떤 형태로든 세상에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는 작가로서 자신과 가장 닮은, 혹은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을 꼽자면요? <이만큼 가까이>가 저와 가장 닮은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앞으로도 소설과 다른 영역을 자유롭게 오가며 동시대 분들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시선으로부터>는 여성에게 폭력적이었던 시대를 살아남은 '심시선'의 이야기가 주가 되는데, 장마다 이어지는 후손들의 이야기와 하나씩은 연결 고리가 있습니다. 사회가 그만큼 바뀌지 않았다는 걸 방증하려는 의도였는지 궁금해요. 변화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사회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부분과 더디게 변화하는 부분을 다 다뤄보고 싶었습니다. 희망도 절망도 아닌 이야기라 생각해요.


작가님의 작품에는 현실의 폭력성에 상처를 입은 주인공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작품에서 심한 비관은 보이지 않는 점이 개인적으로 좀 놀라웠어요. 오늘과 내일에만 집중하면 절망하고 지치지만, 시선을 미래로 멀리 두면 계속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말하고 싶었어요. 좋지 않은 뉴스를 보면 마음이 꺾이는데, 떠올려보면 과거가 더 나빴더라고요. 지금이 10년 전보다, 20년 전보다 나으니까 앞으로 올 날들을 기다리게 됩니다.


언젠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나는 평생 '평범한 선의'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요. 부연 설명이 듣고 싶어요. 보통 사람들이 아주 용감해질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 에스컬레이터에 어린이의 옷이 끼었을 때 다른 분들과 함께 엉망으로 넘어져가면서도 어린이를 도운 적이 있어요. 사람들의 그런 점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상당수가 소수의 이야기들입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요? 경쟁적인 사회에서는 강한 사람들, 언제나 이기는 사람들에게만 관심이 몰리지만 질 걸 뻔히 알면서도 옳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매력적인 것 같아요.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어요. 얼른 머릿속에서 꺼내고 싶어요.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사진
넷플릭스 제공, 정세랑 작가 인스타그램
2020년 11월호
2020년 11월호
에디터
하은정
사진
넷플릭스 제공, 정세랑 작가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