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 뭐하니>의 슬기로운 PPL
불편했다.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여지없이 등장하는 뜬금없는 광고 설정에 드라마 작가를 욕하기도 하고, 그걸 ‘시킨다고 또 하는’ 주연배우를 향해 “출연료가 엄청난가 보다”라며 조롱하기 일쑤였다.
그랬던 PPL의 세계도 진화 중이다. 최근 지상파에선 간접광고를 정면으로 활용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당당하다 못해 뻔뻔해서 웃음을 유발하고, 오히려 더 이슈가 돼 광고주 역시 대만족하는 분위기다.
이렇듯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간접광고의 예는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다. 최근 방영된 장면에서 출연자인 유재석, 이효리, 비로 구성한 그룹 ‘싹쓰리’ 멤버들이 대놓고 “오늘은 커피야?”라며 제작비를 핑계 삼아 특정 브랜드의 캔 커피를 노출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거 원빈 씨가 광고하는 거지?”(이효리) “나는 지금까지 연예계 활동하면서 원빈 씨를 본 적이 없어.”(유재석) 예능 베테랑들의 대화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농심 ‘새우깡’ PPL도 마찬가지다. 최근 비의 노래 ‘깡(GANG)’이 역주행하며 인기를 얻었고 이에 따라 농심은 비를 새우깡 모델로 발탁했다. 동시에 그가 출연하는 <놀면 뭐하니?>에 깡 시리즈 4개 제품(새우깡·감자깡·양파깡·고구마깡)의 PPL을 진행했는데, ‘싹쓰리’ 멤버들이 촬영장에 진열된 과자를 대놓고 집어 먹는 모습을 보여줬다.
시청자들은 ‘깡이 깡을 먹는다’며 웃음으로 화답했다. 실제로 지난 7월 처음으로 깡 시리즈 4개 품목 한 달 합산 매출이 100억원을 돌파했다. 농심 측은 “<놀면 뭐하니?> PPL은 소비자들이 만들어낸 문화에 호응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베테랑 방송인과 똑똑한 기획자가 만든 합작품인 셈이다.
<놀면 뭐하니>는 이 여세를 몰아 ‘코너 속 코너’ 같은 느낌으로 협찬품을 홍보하는 시간을 가진다. ‘환불원정대’가 화상회의를 하는 장면에서 제작자 지미유(유재석)가 “엄마 밥 먹고 싶지 않아?” 하고 멤버들에게 운을 띄우자 예능 100단 이효리가 “오늘은 또 뭐야?” 하며 호응을 한다. 그러자 치킨 브랜드 ‘맘스터치’의 세트 메뉴가 (채식주의자 이효리를 제외하고) 환불원정대의 멤버들 앞에 하나씩 배달된다. 멤버들은 맘스터치의 신메뉴를 먹으면서 화상회의를 진행한다. ‘먹방 요정’ 화사는 아예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치킨 먹는 것에 열중하고, 제작자 지미유는 성실한 이미지답게 광고주가 원하는 장면을 ‘양껏’ 뽑아낸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환불원정대 보다가 치킨 급주문” “앞광고 잘 봤습니다” “지미유는 늘 제작비가 걱정입니다” “PPL Come On~”이라며 호응을 보냈고, 포털 사이트에는 ‘환불원정대, 맘스터치 PPL’이 연관 검색어로 오를 만큼 화제가 됐다. 이 외에도 호빵과 자동차 PPL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도 빼놓을 수 없다. 자막으로 “상금 벌고 올게요”라고 대놓고 광고를 고지한다. 이보다 더 심플하고 명쾌할 수 없다. <유 퀴즈 온 더 블록>은 퀴즈의 답을 맞히는 ‘자기님’에게 100만원을 즉석에서 선물하는 콘셉트로 PPL이 없으면 불가능한 프로그램이다.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의 파생 유튜브 채널 ‘여자들의 은밀한 파티-여은파’도 PPL로 화제를 모았다. 지난달 올라온 영상에는 박나래와 화사가 맹장 수술을 한 한혜진의 집으로 병문안을 가서 대뜸 맥주를 마시자고 제안한다. 환자에게 술을 권해 당황하던 한혜진은 “PPL이냐?”고 ‘대놓고’ 묻고, 이어 ‘대놓고’ 맥주를 마시는 포즈를 취한다. 시청자들은 뻔뻔해서 웃음을 주는 PPL이라며 호응을 보냈다.
tvN 예능 프로그램 <도레미마켓>은 출연자들이 어색한 말투와 몸짓으로 제품을 언급하는 장면을 과장되게 연출해 오히려 “웃기다”는 반응을 얻었다. 관련 장면들은 SNS와 온라인상에 ‘짤(짧은 동영상)’로 돌아다니며 화제를 낳았다.
SBS 예능 프로그램 <맛남의 광장> 역시 지역 특산품 소비를 촉진시키겠다는 취지로 기획된 만큼, 해남 왕고구마 300여 톤, 강릉 못난이 감자 30톤, 통영 바닷장어 40톤 등을 완판하며 ‘훈내’ 진동하는 프로그램으로 등극했다.
PPL 띵작 jtbc 드라마 <멜로가 필요해>
드라마로 넘어가보자. 올해 PPL로 화제가 된 작품은 320억 원이 투입된 SBS 드라마 <더킹 : 영원의 군주>이다. ‘나쁜 예’로 말이다. <더킹 : 영원의 군주>는 극본을 맡은 ‘믿보배’ 김은숙 작가와 화려한 캐스팅으로 일찌감치 브랜드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그 결과 한 회차에 7개의 PPL이 한꺼번에 노출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그런데 그 방법이 사뭇 시대를 역행했다.
남녀 주인공이 전화 통화를 하는 장면에서 갑자기 특정 캔 커피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는다. “영이(우도환)가 골라 온 커피가 황실 커피랑 맛이 똑같아. 첫맛은 풍부하고 끝맛은 깔끔해.” 캔 커피에 대한 대화가 30초가량 지속되는데 아예 한 편의 커피 CF 같다.
특정 브랜드의 김치 봉지를 카메라 앞으로 내밀기도 한다. “아, 시원해 장미(카엘) 김치 좀 먹을 줄 아네”라는 대사도 덧붙인다. BBQ치킨과 홍삼이 지나치게 자주 등장해 ‘닭킹:홍삼의 군주’라는 별명도 얻었다. 결국 ‘돈독 오른 드라마’라는 조롱과 함께 8%의 저조한 시청률로 종영됐다.
그와 반대로 드라마 PPL의 ‘좋은 예’로 두고두고 회자된 작품도 있다. 지난해 종영한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이 그 주인공이다. <멜로가 체질>은 방송계에 종사하는 30대 친구들이 한집에 살며 그리는 사랑과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극한직업>을 연출한 ‘코미디 장르의 독보적 존재’ 이병헌 감독이 대본과 연출을 동시에 맡았다.
역시나 기발했다. 극 중 손범수(안재홍 분)의 직업이 드라마 PD라는 점을 십분 활용해 그가 안마 의자 PPL에 대해 상상하는 것을 실제 드라마의 PPL로 대체했다. 당시 상품이 15초 동안 노골적으로 노출됐지만 오히려 극 중 인물이 대놓고 “15초 노출돼야 하니 잠시만 기다리렴”이라는 대사까지 곁들여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분명 노골적인 장면이었으나 극의 분위기와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연출을 맡은 이병헌 감독은 “회심의 PPL이었다. 우리 스타일로 풀어보려고 노력했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주인공들이 야식을 먹는 장면에서 종종 등장한 BBQ치킨 역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멜로가 체질> 보는 날은 BBQ치킨 먹는 날” “<멜로가 체질>에서 공명이 먹은 치킨 주문 완료” 등의 포스팅이 이어진 것. 극 전반에 PPL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센스 있게 처리하면서 호평을 받은 것이다.
시청자는 바보가 아니다. 드라마의 PPL 사용이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쯤은 안다. 그렇다면 결국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엉성하게 드라마의 전개를 방해하느냐, 혹은 뻔뻔하고 자연스럽게 녹여내 모두가 ‘윈윈’하는 전략을 취하느냐 하는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