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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말아요 그대

코로나 블루에 직면한 당신에게 건네는 나태주 시인의 위로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한 당신에게 보내는 <우먼센스>의 위로.

On September 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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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두고 보면 더 예쁘다, 너도 그렇다"

시인 나태주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대숲 아래서'로 등단 후 현재까지 40여 권의 창작 시집을 포함해 100권이 넘는 책을 펴낸 국민 시인. 43년간 교직 생활을 하다가 2007년 정년 퇴임했으며 현재는 공주풀꽃문학관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시로는 '풀꽃'이 있다.

Q 코로나19 사태를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비대면 강의가 늘었어요. 영상으로 녹화를 하거나 강연장에 가도 대면하는 청중 없이 제 이야기를 중계하죠. 코로나19로 이러한 변화가 더 가속화되긴 했지만 앞으로 오프라인 활동은 줄고 온라인 활동은 더욱 확대될 거라 생각해요.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힘든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견딜 수 있었던 건 온라인 세상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잖아요. 저 역시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보려고 준비 중이에요. 온라인과 한 몸이 되지 않으면 문화가 살 수 없는 세상이 왔으니까요. 다르게 본다면 혼자 시간을 보내거나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겐 더욱 어려운 세상이 된 거죠.


Q 부정적이라고 보세요?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물도 막히면 돌아가게 되어 있듯 우리 인간도 어떤 방법으로든 길을 찾을 테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그 방법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겸비한 세상이에요. 아무리 세상이 디지털화된다고 해도 종이책이 없어질까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요즘은 캘리그래피나 필사책이 잘 팔린다고 하더군요. 컴퓨터로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지금 이 시대에도 사람들은 아날로그적인 활동을 원한다는 거예요. 온라인 세상이 극대화되는 중에도 아날로그적인 활동이 살아 있는 세상. 이러한 현상은 점점 더 심화될 거라 생각해요. 혼자 있을 땐 아날로그적인 활동을, 사람들과는 온라인 활동을 많이 하게 되겠죠.


Q 그 과정에서 느끼는 고립감도 만만치 않습니다. 존재 의식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발견하고 자존감을 높였으면 좋겠고요. 그건 타인이 해줄 수 없는,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제 시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했지만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서는 제대로 볼 수 없어요. 서로 미워하고 소외시키는 물리적 거리를 두자는 뜻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관점에 거리를 두고 자기 자신을 우선 찾자 이거예요. 자연과 거리를 뒀을 때 자연이 새롭게 보이는 것처럼 상대와 거리를 뒀을 때 상대가 새롭게 보이는 거예요. 그런 거리두기 속에서 고독감이나 고립감을 느끼기보다 자기 자신을 찾는 노력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Q 요즘 사회는 어떤 것 같나요? 한국 사회는 쏠림 현상이 너무 심해요. 이건 매우 불안한 일이에요. 책도 팔리는 작가의 책만 팔리고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하나의 이슈가 생기면 우르르 모두가 그쪽으로 몰리는 경향이 있죠. 어떤 사건이 터지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로지 그 사건에만 매진을 하는 거예요. 이런 걸 보면 우리가 사회적인 현상에도 적절한 거리를 두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기우는 것 없이 평형을 잘 유지했으면 좋겠고요. 어떤 수녀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요즘 인간들이 너무 말을 많이 해서 마스크를 씌운 거라고요. 우스갯소리로 풍자하신 이야기겠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캠페인에서도 우리는 분명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Q '분노 공화국'이라고도 하잖아요. 도시의 매미들은 울음소리조차 사나워요. 왜 그럴까요? 지나다니는 차도 많고 소음이 심해 스트레스가 쌓여 그래요. 시골 매미는 안 그래요. 싸울 상대가 없으니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 않거든요. 인간들도 똑같아요. 비교 대상이 많을수록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고 분노하는 일도 잦아지죠. 좁은 땅덩어리에 오밀조밀 모여 사는 우리가 어찌 서로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냐마는 너무 가까이에서 상대를 주시하고 또 상대방과 나를 비교하는 행동은 스스로를 더욱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에요. 전 우리나라 여성들이 그런 부분에서 더더욱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남과 나를 비교하기보다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노력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Q 인생, 살아보니 어떤가요? 인생은 허무한 거예요. 조그마하고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것이죠. 그건 누구의 인생이든 다 똑같아요. 잘생긴 사람이든, 배운 사람이든, 돈 많은 사람이든 결국 늙으면 똑같아지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잘 살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 삶의 자취가 영원히 남기 때문이에요. 인생은 결국 조그마한 기억으로 남아요. 돈, 미모, 명예, 학력은 모두 초라해지겠지만 자신이 살다 간 삶의 흔적은 영원히 남는 거죠. 그것이 나의 자식이라면 자식이고, 학문이라면 학문이고, 사회적 업적이라면 업적이에요.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한 재벌 총수도 결국은 조그맣게 늙어 죽잖아요. 숨 못 쉬면서, 아파하면서, 허무하게 사라져요.

하지만 그 사람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기억되는 건 그의 재산도, 외모도, 명예도 아닌 그의 의미 있는 자취들 덕분이에요. 사람은 결국 작아지고 고요해지고 초라해지고 무가치해져요. 그렇지만 그 사람이 남겨놓은 무언가가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할 때 그 인생은 참 의미 있는 것이 되는 거예요.


Q 작가님도 죽음이 두려우세요? 당연하죠. 하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매우 두렵고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생명이 있는 생명체라면 죽음 역시 하나의 과정이고 과업으로서 꼭 한 번은 거쳐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반대로 안 죽고 사는 일 역시 소망스러운 일은 아니잖아요. 전 누군가가 죽은 자리로 온 거예요. 그걸 안다면 언젠가 나도 내 자리를 비어줘야죠.


Q 긴 암 투병도 이겨내셨어요. 아내와 함께 지겹도록 오래 병원 생활을 한 적이 있어요. 병실이 답답해 병원 야외 정원에 앉아 가로등 불이 켜질 때까지 매미 소리를 듣고 꽃을 그리며 하루를 보냈죠. 예쁜 꽃을 마주하고 그림을 그릴 때 저는 몰입을 통해 기쁨이 생기고 그로 인해 에너지가 발생됨을 느꼈어요. 그 에너지가 바로 약보다 좋은 자생력이 되는 거죠. 귀가 따가울 정도로 울어대는 매미 소리도 그림 그리기에 몰입하면 하나도 들리지 않았어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기쁨을 만끽하며 몰입하게 됐거든요. 그러한 시간들이 나를 살게 해준 힘이었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삽니다. 어떤 걸 보고 어떤 에너지를 얻을지는 직접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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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누군가를 사랑했을 때죠.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애달퍼요. 슬프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했던 기억은 늘 좋게 남아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겁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을 보면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어느 노시인이 그러더라고요.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보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았던 기억이 더 오래 남는다고요. 내가 누군가를 사랑했다면 분명 사랑받은 사람은 나를 기억할 겁니다. 인생은 결국 기억으로 남는다고 했잖아요. 그게 자식이었든, 친구였든, 이성이었든 누군가에게 나는 의미 있는 사람으로 오래 남게 될 거예요.


Q 반대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은요? 남을 증오하고 그런 감정으로 밤을 새우고 시간을 보냈던 그런 순간들이죠. 후회된다는 것은 무익했다는 말이에요. 하나도 저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시간들이었죠.


Q 언제까지 글을 쓰실 계획인가요? 죽을 때까지요. 글을 쓰는 사람은 글 쓰다 죽어야죠. 전직 작가가 돼서는 안 되잖아요. 창작의 고통도 물론 있지만 성취의 즐거움이 훨씬 더 큽니다. 쉽고 간결하게, 예쁘고 감동적이게 많은 글을 나누고 공유하고 싶어요. 전 돈도 많이 벌어야 해요. 꼭 쓰고 싶은 곳이 있거든요. 문화계를 위해 힘을 보탠다거나, 예술인들에게 상을 만들어준다거나 더 여유가 있으면 장학금을 만들어서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일들을 하고 싶어요. 나이 먹고 집이나 옷, 음식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런 것들은 줄여서 살 수 있잖아요.

저는 세상 사람들의 감정을 도와주는 서비스맨이라고 생각해요. 외로움을 덜 외롭게, 슬픔을 덜 슬프게, 절망을 덜 아프게 만들어주는 감정의 서비스맨이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제 시의 효용입니다.


Q 코로나19 사태로 배운 것이 있다면요? 저는 코로나19라는 작은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졌다고 생각해요. 작은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주변 것들을 사랑하라고 일러줬죠. 반복되는 것들에 흥분하지 말고 초연하고 태연하게 흘려보내라는 것도 가르쳐줬어요. 우리 현대인들도 너무 코앞에 보이는 이득과 공포에 휘둘리지 말고 좀 더 먼 미래의 자기를 보면서 참고 견딜 수 있는 강인함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전 인생을 10년씩 경영하며 여기까지 왔어요. 70대가 된 지금이 10년 앞을 내다보며 인생을 살아온 결과란 말이죠. 여러분도 지금 내 눈앞에 닥친 감정과 사건에만 올인하지 말고 10년 후의 자신을 한번 떠올려보세요.


Q 이 순간에도 우울한 사람들에게 한마디. 너무 패배감에 빠져 있지 마세요. 당신의 패배가 끝내 당신을 승리하게 만들 것이니까요. 지금의 빈곤이 끝내 당신을 부유하게 만들 거예요. 현대인들은 아픈 사람이 많아요. 몸이 아니라 마음이 더요. 최근에 낸 산문집도 그런 내용이에요. 제목마저 <부디 아프지 마라>잖아요.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결국은 밝은 미래가 올 겁니다. 약속하건대 분명 좋아질 거예요. 우리 같이 기다립시다.

CREDIT INFO
에디터
김두리
사진
지다영, 김재경
2020년 09월호
2020년 09월호
에디터
김두리
사진
지다영, 김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