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j.s
넓은 통유리 창 너머로 빛이 천천히 쏟아지는 한현정 씨의 집은 북유럽 인테리어 감각이 세련되게 표현된 공간이다. 트렌드를 따르기보다 따뜻한 집 꾸미기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한 집 안 곳곳의 인테리어는 마치 쇼룸을 연상시킬 정도로 감각적이어서 전문가의 공간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든다.
하지만 이 공간은 주부인 그녀가 직접 완성했다. 집 안 곳곳 소홀함 없이 정성스러운 손길이 닿아 있는 그녀의 집은 일종의 육아 일기를 업로드하듯 아이들이 자라는 풍경을 하나둘 올리기 시작한 SNS가 입소문을 타면서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온전한 북유럽식 인테리어와 라이프스타일이 이색적인 한편 묘하게도 한국 가정에 어울리는 따스한 분위기를 연출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SNS와 실제 집의 풍경은 조금 다를지 모른다는 의구심은 현관에 발을 들이면서 사라졌다.
채광이 좋은 거실 중앙에는 낮은 테이블을 중심으로 제각기 다른 컬러와 형태의 빈티지 체어가 어우러져 있었고, 그 한편에는 5살 딸과 10살 아들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아기자기한 놀이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결혼 전까지 관련된 일을 해온 한현정 씨의 감각이 전문적으로 발휘돼 공간마다 흥미로운 오브제와 가구가 적절히 배치돼 있었다.
“개인적으로 거실이 곧 가족의 삶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여겨 이 공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우리 가족이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꾸려가고 있는지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죠.”
한창 집 안을 어지럽힐 만한 어린 자녀가 둘이나 되지만,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는 비결을 묻자 “아이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많은 가정이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 중심으로 바뀌어요. 장식적인 요소를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치우고 집안을 아기용품으로 가득 채우죠. 저는 신혼살림을 북유럽에서 시작해서인지 우리와 다른 교육관과 삶의 형태를 지닌 사람들을 보면서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아이가 자랄 때 집 안에 놓인 다양한 요소를 자연스럽게 노출하면 굳이 만지거나 떨어뜨리지 않아요. 특별히 아이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풍경이니까요. 물론 저도 다른 아이가 집에 올 때는 위험한 물건들을 치워두죠.(웃음)”
거실과 이어진 다이닝 룸은 요리를 좋아하는 그녀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이 집으로 이사 오면서 리모델링을 거의 하지 않았을 정도로 만족스러 웠던 이유 중 하나는 다이닝 룸이 거실과 이어져 있음에도 조리 공간의 천장과 벽면을 우드로 꾸며 시각적으로 공간이 분리돼 보였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식 조리대 너머 길게 놓인 다이닝 테이블 주변은 각기 다른 컬러의 체어가 자리하고 있다.
“신혼 초기에 남편이 글로벌 회사 디자이너로 이직하면서 함께 스웨덴으로 갔어요. 그곳에서 첫 살림을 시작하면서 빈티지 가구 숍을 다니며 조금씩 모은 것이 지금의 집을 구성하고 있죠. 거실의 소파도 그렇고 다이닝 테이블과 체어도 한 번에 사들인 것이 아니라, 각각 하나씩 눈에 띌 때마다 사 모았어요. 그렇게 모은 가구가 이렇게 집 안을 채웠고요.”
한국에서만 살아온 그녀의 인생에서 전환점이 된, 스웨덴에서 보낸 생활은 많은 것을 바꿨다. 초기엔 갑갑할 정도였던 슬로 라이프에 적응하면서 집 안을 가꾸고 직접 건강한 요리를 하고 플레이팅을 하는 재미도 늘었다.
“처음부터 적응이 쉬웠다면 거짓말이겠죠. 자아의 혼란이 오기도 했어요. 날마다 ‘오늘은 무엇을 먹지?’라는 고민을 하기 위해 그동안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나라는 생각을 했죠. 그러다 현지의 한 가정에 초대를 받았는데 그 가족의 단란함과 행복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후 우리 가족을 돌보는 일을 마치 프로처럼 해보자는 결심이 섰어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잘해내고 싶어졌고요. 그 뒤로 요리를 하는 것도 집 안을 꾸미는 것도 진심으로 즐기게 된 거죠.”
국내에서는 고가에 판매되는 유럽 빈티지 가구지만, 한현정 씨의 집을 채운 대부분의 가구는 신혼 초기에 남편과 쉬는 날마다 스웨덴 구석구석을 다니며 하나씩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한 것들이다. 스웨덴에서 3년, 중국 베이징에서 3년을 살고 다시 스웨덴과 베이징을 한 번씩 더 3년을 살면서 해외 이사를 많이 했지만 그때마다 버리지 않고 두 달에 걸쳐 배로 옮겨 왔을 정도로 그녀에게 가구란 곧 가족 같은 존재다.
“얼마 전 친동생이 저희 집에 있는 체어를 하나만 주면 안 되겠냐고 슬쩍 물어봤어요. 한국에서 구매하는 것이 훨씬 비싸지만 차라리 사주겠다고 했어요. 이 가구들은 가족이나 다름없거든요. 해외 이사를 많이 해서 생채기도 생겼지만 이 가구들 덕분에 어디에 살아도 임시로 대충 산다는 느낌을 잊을 수 있었어요.”
얼핏 모두 유럽식 가구만 모아둔 듯하지만 전체 집 안 분위기에 맞춰 하나하나 신중하게 고른 아이템 중에는 중국 베이징 고가구 상점에서 사 온 수납장도 있고, 한국식 소반과 서랍장도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집은 가족을 치유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아직 아이들이 어리니까 어떻게 키우는 것이 좋을지를 많이 생각하는데, 적어도 온실 속의 화초로 키우고 싶지는 않아요. 대신 아이가 내가 없는 세상에서 때론 부딪히고 힘에 겨운 일을 겪어도 집에 돌아왔을 때는 치유받고 단단해져 다시 세상을 마주할 힘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남편에게도 그렇고요. 그런 집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가꾸고 있어요.”
한현정 씨의 집은 거실을 제외한 총 4개의 메인 공간을 중심으로 꾸려지고 있다. 부부의 침실과 아이들의 침실, 아이들의 놀이 방과 서재가 그것이다. 서재에는 아이들과 부부가 사용하는 침대와 책들이 함께 있다. 두 아이의 방을 각자에게 나눠줄 법도 하지만 오히려 놀이 방과 침실로 나눴다. 아직 어리기도 하고 공간을 기능별로 나누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어떤 분들은 공간의 여유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전에 지금의 집보다 협소한 곳에서 살 때도 저는 늘 기능별로 공간을 나누려고 했어요. 침실은 휴식을 취하는 공간, 서재는 공부하고 업무를 보는 공간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생활을 정리하는 데도 도움이 되거든요. 라이프스타일을 원하는 방향으로 유지하고 싶다면 정리와 수납이 우선시돼야 해요. 공간이 작으면 넘치게 가지고 있지 않으려고 해요. 공간이 정리되지 않으면 시각적인 스트레스가 크거든요.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죠.”
물론 그녀에게도 이 일이 매번 쉬운 것은 아니다. 얼핏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지만 매일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가꿀지 끝없이 생각하고 정리한다고.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제게는 우리 가족을 위해 집을 운영하는 것이 전문적인 일 못지않아요. 매일 노력하고 좀 더 나아지려고 하죠. 아마 저희 집이 어느 정도 단란하고 예뻐 보인다면 그 노력이 통한 거겠죠.(웃음)”
HER FAVORITE
한현정 씨의 집 곳곳에서 활약하는 리빙 아이템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