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코로나19로 혼란스러운 도시를 벗어나 일주일 동안 프랑스 중부 시골에 사는 지인의 집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남편 친구인 올리비에는 아내 코린느와 함께 크뢰즈(Creuse)라는 도(道)에 산다. 크뢰즈란 프랑스어로 ‘텅 빈’이라는 뜻이다. 어쨌거나 이름에 걸맞게 정말 아무것도 없는, 광활하고 가난하고, 텅 빈 땅이다. 하지만 자연만큼은 다른 어느 지방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올리비에는 광고 회사를 운영하던 재력가였는데 60세 정년퇴직 이후 도시를 떠나 크뢰즈에 정착했다. 하지만 은퇴 이후 연금으로 은퇴 생활을 즐기는 대부분의 프랑스인들과 달리 그는 오뷔송이라는 작은 소도시에 레스토랑 3곳과 호텔 하나, 매장 하나 등을 열었다. 활기 없는 텅 빈 오뷔송 거리는 올리비에가 정착한 이후 현지인과 관광객들의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사실 남편과 나는 시골에서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 꿈이다. 막연한 꿈을 언급하자 소탈한 차림의 올리비에는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서두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로 도시를 떠나 시골로 이사하려는 젊은 세대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올리비에는 코로나19 이후에도 딱히 ‘격리 생활’이라고 느끼진 못했다고 했다. 워낙 집이 외딴 시골에 위치해 있고, 크뢰즈는 프랑스에서도 인구 밀도가 가장 낮은 곳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감염이 확산되자 많은 파리지앵이 지방의 친인척 집으로 급히 이주했다. 파리지앵들은 그 두 달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골 생활의 매력을 직접 체험한 것이다. 올리비에가 단골이다시피 했던 오뷔송의 부동산업자는 지난 4월부터 6월 사이에 집을 42채나 팔렸다고 한다. 평소 월 거래량이 고작 2건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변화다.
실제로 크뢰즈에 다녀온 이후 파리에 사는 한 친구가 내게 크뢰즈에 관해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다. 카테린과 뱅상은 30대 젊은 부부이고 어린아이 둘을 키우고 있다. 파리의 좁디좁은 아파트에서 두 달간 격리 생활을 한 뒤 파리 생활을 접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카테린과 뱅상의 아파트 가격이면 크뢰즈 같은 오지에서는 수영장이 딸린 아담한 집을 살 수 있다. 물론 집 외에도 고려할 사항이 많지만(학교는 차로 30분, 가장 가까운 쇼핑몰은 차로 45분), 카테린은 가까운 주말에 곧 크뢰즈를 방문해볼 예정이다.
코로나19로 직장 문화도 변화했다. 프랑스인들은 온라인으로 모든 일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다. 두 달간의 반강제적 재택근무 체험 덕분에 격리 해제 이후에도 기업에서는 재택근무, 유동적 근무 등을 추천하는 분위기다. 그런 덕분에 도시 생활에 질린 파리지앵들이 탈파리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것 같다. 프랑스에서는 코로나19 위기가 전반적인 사고를 바꾸는 ‘대안’이 아닌 ‘계기’가 됐다.
글쓴이 송민주
4년째 파리에 거주하는 문화 애호가로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다수의 책을 번역했으며, 다큐멘터리와 르포르타주 등을 제작하고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