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 예능 프로그램 <아내의 맛>에 함께 출연하면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다른 듯 닮은 서로의 모습에 끌려 금방 친구가 됐다. 만났다 하면 길어지는 수다 때문에 다음 스케줄에 늦는 날이 부지기수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만나지 않으면 허전하다는 두 사람이다.
실제로 두 사람의 대화는 만담을 연상케 했다. 방송 이야기로 시작해 육아 이야기로 끝이 나는 식인데, 잘 들어보면 여행도 갔다가 남편도 만났다가 먹방도 했다가, 대화가 종잡을 수 없다. 무엇보다 오고가는 모든 말에 애틋함이 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말을 결코 허투루 듣지 않았다. 당최 비슷한 구석이라곤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 친구가 된 이유다.
'소문난 베프' 장영란 & 이하정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긴 하지만 두 사람이 친하게 지낸다는 이야기에 놀랐어요. 의외였거든요.
장영란(이하 '장') 저도 (이)하정이랑 친해지게 될 줄 몰랐어요. 아나운서라는 직업 때문에 왠지 가까워질 수 없을 것만 같은 선입견이 있었거든요. 게다가 (정)준호 오빠의 아내잖아요. '사모님'이라고 불러야 할 것만 같았죠. 그런데 알고 보니 저보다 더 털털한 친구더군요. 저보다 동생인데 어떤 면에선 언니 같아 제가 의지하는 부분도 많고요.
이하정(이하 '이') <아내의 맛>에 출연하면서 언니를 처음 만났어요. 초반엔 친해지지 못하다가 사적인 자리에서 깊은 대화를 나눈 후에 본격적으로 친해졌어요. 프리랜서 선언 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길을 헤매고 있을 때 방향을 잡아준 사람이 언니예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프리랜서로서 첫 녹화 때 언니가 해준 조언이에요. 안정적인 직장에 있다가 전쟁터로 나오니까 말도 제대로 못 하겠더라고요. 긴장한 나머지 눈에 실핏줄이 터질 정도였는데, 녹화를 마친 후 언니가 "힘들었지?"라고 먼저 말을 건네주더군요. 내 맘을 읽은 것 같아 감동이었어요. 나중에 방송을 보니 언니는 저의 '멘붕' 상태를 이미 눈치채고 제 멘트를 다 받아주는 등 챙겨주고 있었더라고요. 그 후 언니에게 마음의 문을 완전히 열었죠.
장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는 게 느껴졌어요. 저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란스러웠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뭐라도 도와주고 싶었죠. 그래서 괜한 조언도 하고 충고도 하게 되더라고요. 다행인 건 하정이가 제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거예요. '네가 뭔데 조언을 해?' 하는 식으로 꼬아서 듣지 않은 거죠.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이라 같이 있으면 좋은 에너지를 얻어요.
이 이제 무슨 일이 있으면 언니한테 상의하게 되더라고요.(웃음) 이쪽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독하게 굴어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언니는 다른 사람들을 전혀 경계하지 않아요. 언니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진심을 다하죠. 언니가 지닌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그 마음이 전해지는데 어찌 안 좋아할 수가 있겠어요.
얼마나 자주 만나요?
이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만나는 것 같아요. <아내의 맛> 녹화하면서 보는데도 따로 약속을 잡아 또 만나죠. 녹화 현장에서는 미처 하지 못했던 다양한 대화를 나눕니다.(웃음) 여자의 스트레스는 쿵짝 맞는 동성과의 수다로 풀리죠.
장 하정이 외에도 함께 모이는 멤버가 있어요. 이휘재 씨의 아내 문정원 씨, 박명수 씨의 아내 한수민 씨랑 친하게 지내는데 다 같이 만나면 쉽게 헤어질 수가 없어요. 생일에는 꼭 모이고, 그 외에도 특별한 일이 있으면 만납니다. 가족보다 더 자주 보는 것 같아요.
이 지금은 언니와 비밀을 공유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됐어요. 지킬 건 지켜주는 게 진짜 친구라고 생각하는데 언니는 제 비밀을 지켜줘요. 입이 무겁죠.(웃음) 나이를 떠나 힘들 때 손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 아니겠어요?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언니를 보면서 저도 한 수 배웁니다. 사회에서 알게 된 친구인데도 '인생 친구'를 만난 것 같아 든든해요.
장 제가 준호 오빠랑 비슷한 면모가 좀 있거든요. 그래서 하정이가 저를 좋아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웃음)
이 저는 자기 위치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예의 바른 사람을 좋아해요. 윗사람과 아랫사람을 대하는 걸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어요. 남편의 배려심 깊은 면모를 좋아했는데 언니가 딱 그래요.
만나면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요.
장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해요. "그 옷 어디에서 샀어?"부터 "오늘 뭐 먹을 거야?"까지 주제도 다양하죠. 쿵짝이 잘 맞는다고 해야 할까요. 하정이가 둘째 딸 유담이를 낳은 후에는 육아와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되더라고요. 임신 기간을 너무 행복하게 보내는 하정이와 너무 예쁜 유담이를 보면서 저도 셋째를 낳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예요.
이 저는 언니에게 교육적인 부분을 상의해요. 큰아들 시욱이가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가는데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거든요. 자유로운 환경에서 뛰어놀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우리 아이가 뒤처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 갈등이 돼요. 그러면서도 '과연 이게 맞는 건가' 싶어 언니에게 털어놓곤 하죠. 육아와 교육엔 정답이 없어요. 아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잘하는 게 뭔지를 빠르게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장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면 마냥 예쁜 게 아니라 괜히 불안감이 생겨요. 저도 모르게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게 되더라고요. '문제집 하나만 더 풀고 놀면 안 될까' 하는 마음과 '실컷 놀게 하자'는 마음이 부딪힙니다. 내적 갈등이 심해요.(웃음) 저도 사람인지라 다른 집 엄마들이 자녀의 사교육에 매달리는 걸 보면 흔들리기도 하죠. '영어 학원을 보내야 하나, 미술 학원을 보내야 하나' 싶어서 괴로운데, 과연 어떤 게 아이를 위한 좋은 선택인지 모르겠어요.
이 선배 엄마들과 이야기를 자주 해야 할 것 같아요. 어렸을 때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그게 스트레스였던 한 엄마가 있어요. 자기 자식만큼은 자유롭게 키우고 싶어 아무 교육도 하지 않았는데 결국 크게 후회하는 모습을 보고 참 많은 생각을 했죠. 결국 그녀도 둘째 아이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이것저것 시키더라고요. 아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걸 발굴해내는 과정이 정말 힘든 것 같아요.
장 저는 주로 남편과 상의해요.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교육하려고 하면 남편이 조용히 "조금만 기다려주자"라며 제동을 걸죠. 남편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 열혈 엄마가 됐을 겁니다.(웃음) 그 외에는 육아 서적을 많이 찾아봅니다. 강압적으로 교육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책으로 보고 배우면서 저만의 교육 철학을 다져나가요. 시어머니에게도 많이 배워요. 아들을 한의사로 키워낸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조언이 뼈가 되고 살이 되더군요. 어머니의 말씀을 들어보면 엄마의 희생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죠.
워킹맘으로 산다는 것
'엄마'와 '여자' 사이에서 힘들 것 같아요.
이 제가 오래 몸담았던 회사를 그만둔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육아'였어요. 유담이가 태어나면서 시욱이가 힘들었던 모양이더라고요. 아이가 태어나면 어른들의 환경도 바뀌는데 일곱 살배기 아이에게 스트레스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거죠. 유치원 선생님께서 "유담이가 힘들어 보인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어요. 아이들 곁에 엄마가 있어줘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가족들과 상의 끝에 퇴사를 결정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생각이 참 많았습니다.
장 사회적인 제도와 분위기가 남자들도 육아에 많이 동참하는 분위기이지만 여전히 육아는 여자들의 몫이에요. 아무리 학벌이 좋고 커리어가 좋아도 출산과 육아를 이유로 경력이 단절되는 여성이 많죠. 워킹맘인 저로선 안타까운 현실이에요. 능력 있는 여성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이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유튜브 채널을 오픈했어요.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가 시작했죠. 워낙 방송을 좋아하니까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방송에선 좀 더 유쾌하고 위트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유튜브에선 자연스러운 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조만간 남편의 일을 돕게 될 것 같아요.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에너지를 잘 분산시켜 가정과 일의 균형을 잘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 최대의 고민이죠.
장 하정이는 워낙 똑 부러지니까 뭐든 잘할 거예요. 성격도 좋잖아요. 집에서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다 보면 저 자신은 없어져요. 씻을 시간도 없는데 나를 돌볼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하루 종일 씻지도 못한 채 지내다가 아이들을 재우면서 같이 잠들어버리는 자신을 발견할 때면 저절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괴리감이 있죠.
이 결혼 후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를 돌보는 건 주부로서 당연한 일이지만 여자로서 정체성을 지키는 건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에게도 힐링할 수 있는 휴가가 필요해요.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야 하죠. 컨디션 좋은 엄마가 좋은 엄마라잖아요.(웃음)
장 아이 엄마들도 자존감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남편들의 역할이 중요해요. "지금 너는 대단한 일(육아)을 하고 있는 거야"라는 식의 한마디가 아내에겐 큰 힘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해요. 화장기 하나 없이 부스스한 아내에게 "이런 모습도 충분히 예쁘다"고 해주는 남편이 있다면 그 어떤 육아 스트레스도 이겨낼 수 있거든요. 저는 제 남편에게 칭찬을 강요합니다.(웃음) 음식을 만들면 칭찬할 때까지 맛이 어떠냐고 백번을 물어봐요. 그리고 결국 칭찬을 듣고야 말죠.
이 그런 면에서 언니는 현명해요. 언니 특유의 깨방정으로 남편의 칭찬을 유도하는 걸 보면 한 수 배워야겠다 싶어요.
장 하정이는 또 어떻고요. <아내의 맛>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준호 오빠가 워낙 사람들을 잘 챙기는 분이잖아요. 솔직히 아내 입장에선 그런 남편이 힘들 수 있는데 하정이는 싫은 내색 한 번을 안 해요. 진정한 내조를 하고 있는 하정이가 참 대단해요.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결정적인 면모죠.
궁극적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어요?
이 아들에게 항상 해주는 말이 있어요. "감사가 넘치는 하루를 만들라"고 말해주죠. 물론 모든 날이 기쁘고 감사할 수는 없겠지만, 그 안에서 기쁨을 찾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 아이들도 그렇게 성장했으면 좋겠고요.
장 지금처럼만 행복하고 싶어요.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지금 제 삶이 만족스러워요. 가족과 알콩달콩 잘 살고 있고, 방송인으로서도 자리 잡은 것 같고요. 무엇보다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진 걸 느끼거든요. 예전엔 조금 가벼운 이미지였다면 지금은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인정해주시는 것 같아요. 앞으로는 그동안 받았던 사랑을 돌려주면서 살고 싶어요.
'티키타카(tiqui-taca)'.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표현한 스페인어인데, 합이 잘 맞는 출연자를 일컫는 방송 용어로 쓰인다. 장영란과 이하정의 '티키타카'가 참 좋다. 그 우정도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