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e.u
낮은 단독주택이 모여 있는 작은 골목에 위치한 ‘로프트 254’는 거친 회색 외벽과 건물 저층을 둘러싼 통유리가 시선을 끄는 건물이다. 흥미로운 점은 벽면을 노출하고 커다란 창으로 구성한 이 모던한 건물이 양옆에 위치한 붉은 벽돌의 오래된 주택 사이에서 묘한 조화를 이룬다는 사실이다. ‘직주근접(職住近接) 주택’을 꿈꿨던 이용수·박은아 부부가 집을 리모델링하면서 건물을 증축하지 않은 덕분에 주변의 집들과 비슷한 너비와 높이를 유지해 밸런스를 맞출 수 있었다. 벽을 허물어 건물과 골목 사이에 빈 공간을 남긴 덕분이기도 하다. 세련되지만 유난하지 않은 집으로 골목을 밝히고 싶었던 부부의 소망이 완전하게 실현된 곳이다.
‘로프트 254’는 건축가와 공간 디자이너인 부부가 처음으로 함께 만든 집이자, 사무실이다. 업무량이 많은 두 사람은 각자의 공간이 떨어져 있음으로써 낭비되는 시간과 공간이 많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사무실을 합치고 같은 건물에 살림집을 넣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결혼 전부터 각자 소유하고 있던 공간을 정리하면서 모은 예산으로 꿈꾸던 집을 함께 만들기로 했다.
영화를 보거나 식사를 하다가도 자연스럽게 일에 관한 화제로 전환되는 두 사람의 생활 패턴에 맞춰 ‘직주근접’ 형태의 건물로 구상했다. 직원들의 동의도 얻었다. 건축 디자이너 부부의 집인 만큼 외관부터 두 사람의 감각을 한눈에 느낄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외관은 벽으로 감쌌지만 벽마다 큰 통유리 창을 배치해 어디에서나 빛을 느낄 수 있도록 채광이 좋은 집으로 만들었다.
각 층은 기능적으로 구분했다. 지하와 1층은 작업실 겸 오피스, 2층은 부부의 공간이다. 1층 사무실에 들어서면 벽이 최소화돼 있으면서도 효과적으로 나뉜 작업 공간을 확인할 수 있다. 현관에 들어서면 마주치는 널찍한 공간에는 발목 높이의 나지막한 돌로 된 넓은 테이블 위에 다양한 인테리어 관련 서적이 보기 좋게 놓여 있다. 이를 기준으로 건물 안쪽은 작업 데스크가 놓여 있는 사무 공간이지만 별도의 문과 벽은 없다. 테이블 공간을 사이에 두고 바깥쪽에 위치한 공간은 회의실로 쓰인다. 골목 쪽을 향한 커다란 창에는 얇은 커튼을 드리워 햇빛이 잘 들게 했다. 내부 창에서 바라본 바깥은 이용수 대표가 마당 안쪽에 심은 대나무가 자연스러운 차양 역할을 해 지나친 개방감을 방지했다.
부부만의 공간인 2층은 히든 도어와 연결된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다. 문이 열리는 순간 모던한 그레이 톤의 1층과 대비되는 화이트 톤의 실내 벽이 시각적으로 공간을 확실하게 구분 짓는다. 계단을 올라 2층에 들어서면 통유리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을 정면으로 받으며 ㄷ자 형태로 짜인 하얀 가죽 모듈 소파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박은아 대표가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소파로 구성한 이 공간은 응접실 역할을 한다. 소파 하나하나가 모듈 형태라 어떤 공간에서나 새롭게 조립하고 구성할 수 있도록 한 데다, 한 면에는 가죽 대신 도톰한 패턴 패브릭을 대어 어느 방향을 밖으로 향하게 하냐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줄 수 있게 했다. 박 대표의 명민함이 돋보이는 가구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방이 하나뿐이라는 것. 높은 층고를 살리고, 넓고 미니멀한 공간을 활용하고 싶었던 부부는 침실 하나만 남기고 기존 벽을 허물어 주방과 응접실이 이어지도록 했다. 소파 너머 넓은 아일랜드 식탁과 길게 이어진 테이블이 자리한 다이닝 공간은 이용수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평소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의 의견을 반영해 부엌을 넓게 쓰기 위해 벽의 위치도 바꿨다. 그러나 막상 이곳에 들어서면 평소 조리하는 공간으로 보이지 않는다. 조리 도구를 최대한 눈에 띄지 않도록 아일랜드 식탁 아래 수납장을 크게 만들어 넣었고 상부장을 없앴기 때문.
아일랜드 바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면 테라스로 이어지는 통창이 보인다. 1층에서부터 올라온 대나무가 옆집과의 사이에서 가림막 역할을 해줘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다. 부부 모두 자랑스러워하는 공간으로, 건물을 둘러싼 외벽의 가운데를 뚫어 외부에서는 안이 잘 보이지 않으면서 안에서는 개방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테라스 곳곳에 화분을 배치하며 플랜테리어에 정성을 쏟고 있는 박은아 대표는 일할 때도, 휴식을 취할 때도 긴장감을 풀어주는 ‘웰니스(wellness)’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감과 휴식이라고 생각했어요. 직주근접 공간의 효율을 잘 활용하면서 찰나의 행복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거죠.”
직주근접 공간이 주는 피로감이 높지는 않을까? 이용수 대표는 이를 수직 구조 안에서 기능을 분리함으로써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각 층을 기능적으로나 인테리어적으로 구분되도록 구성했습니다. 같은 건물에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했어요. 지하는 작업실 겸 오피스로 나무 소재를 적극 활용하고, 1층은 온전히 업무 공간으로 쓰기 위해 기능적인 부분에 집중해 벽이나 바닥을 묵직하고 로(low)한 이미지로 완성했어요. 2층은 미니멀하지만 건물 내에서 가장 정제된 공간이에요. 차분하고 안정감 있는 톤으로 꾸몄죠.” 두 사람은 집을 만들어가는 동안 첫 아기를 갖게 됐다. 석 달 뒤면 세 식구가 함께하게 될 이곳은 이상적인 삶의 요소를 층마다 차곡차곡 담아낼 예정이다.
HER FAVORITE
박은아 씨의 집 곳곳에서 활약하는 리빙 아이템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