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믿지 못할 소식이 전해졌다. 걸 그룹 '카라' 출신의 가수 구하라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비보가 보도된 것. 가수 설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지 꼭 한 달째 되던 시점으로,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우리는 그렇게 또 하나의 별을 떠나보내야 했다. 그로부터 8개월. 구하라라는 이름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외롭고 쓸쓸했던 그녀의 삶만큼이나 고단한 이들을 위로할 예정이다. 그녀의 친오빠 구호인 씨는 자식에 대한 양육의 의무를 게을리할 경우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도록 하는 일명 '구하라법'(민법 일부 개정 법률안)의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구하라의 친모는 구하라가 9살, 구호인 씨가 11살이 될 무렵 집을 나가 20년 동안 연락하지 않았고, 그녀의 사망 이후 변호사를 선임해 상속권을 주장하며 나타났다. 현행 민법상 구하라의 친모는 양육 의무를 완전히 저버렸음에도 친부와 절반씩 재산을 나눠 갖는 1순위 상속권자다. 오빠 구호인 씨는 엄마의 부재로 힘겹게 살며 이룬 동생의 재산인 만큼 친모 대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쓰이길 소망한다고 전했다. 향년 29세, 너무 짧게 살다 간 동생에게 오빠로서 선물을 주고 싶다는 구호인 씨를 만났다.
좋은 소식을 들었습니다(국민청원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 발의된 '구하라법'이 20대 국회에서 계류 상태에 머무르다 자동 폐기된 후 최근 21대 국회에서 서영교 의원을 통해 재발의됐다). '구하라법'이 20대 국회에서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하고 자동 폐기 수순을 밟았을 때는 그저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억울하기도 하고 국민청원에 동의해주신 10만 명의 국민에게도 죄송스러운 마음이 컸죠. 하지만 크게 낙담하지는 않았습니다. 실제로 21대 국회가 출범한 후 서영교 의원님께서 '구하라법'을 제1호 법안으로 발의해주셨거든요. 서 의원님께서는 하라 사건이 있기 전부터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의 상속 자격이 과연 적절한가'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해오셨어요. 20대에 통과되지 못하더라도 희망을 잃지 말자고 격려해주셨죠. 시대는 빠르게 변해가는데 우리 법은 여전히 제자리입니다. 이혼 가정이 급증하고 다양한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데 여전히 우리 법은 60년 전 잣대만 들이대고 있잖아요. 만에 하나 이번 발의 역시 잘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한번 해보려고요. 하라를 위해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오빠로서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에요.
10만 명의 동의가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처음 14일 동안 2만 4,000명의 국민이 동의해주셨어요. 너무 감사한 숫자이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죠. 그러다 MBC <실화탐사대>에 출연했는데 방송 직후 6만 명의 동의를 받고 이튿날 목표를 달성하게 됐어요. 방송의 파급력에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한편으로는 '떼법(여론몰이를 통해 법안을 통과시키는 행위)'처럼 보이진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어요. 하라의 유명세를 이용해 여론몰이를 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걱정이 앞섰죠. '구하라법'이 유명 연예인의 이름을 딴 법안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억울한 사람들을 '구하라'는 의미로 인식됐음 좋겠어요. 무엇보다도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들이 재산만 가져가는 억울한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1대 국회에선 기대를 해봐도 될까요? 소방관 사건(소방관 딸이 순직하자 32년 만에 나타난 60대 여성이 유족급여를 받아간 이른바 '전북판 구하라' 사건)은 저희보다 훨씬 앞서 일어났습니다. 그 전에 세월호, 천안함 등 비슷한 사건도 여럿 있었죠. 그래도 법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동생이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이슈가 되고 있지만, 이번에도 법이 바뀌지 않는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상처를 받아야 법이 바뀔 수 있을까요? 저는 '여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수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는 걸 법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계속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종범 사건(구하라와 연인 관계였던 헤어 디자이너 최종범이 구하라를 폭행·협박하고 신체를 몰래 촬영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도 진행 중입니다. 오는 7월 2일 항소심 선고가 내려질 예정이에요.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1심과 다르게 실형이 내려져 꼭 벌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동생은 사망 전에도 최종범에 대한 처벌 의지가 강했어요. 적극적으로 재판에 임했고, 형사 재판 이후 민사 소송을 통한 손해배상청구까지 계획하고 있었죠. 1심 판결문에는 최 씨가 초범이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적혀 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렇지 않아요. 최씨는 사건 이후 지인을 불러 파티를 하는 등 평범한 일상을 보냈습니다. SNS를 통해 버젓이 그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고요.
처음 동생의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땐 어떠셨나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게 언론에는 두 번 정도 보도됐지만 사실은 몇 번 더 있었어요. 그때마다 연락을 받으면 아내와 곧장 서울로 가서 동생을 돌보곤 했어요. 이번 사고 역시 연락을 받고 아내와 서울로 올라가던 중 평소와는 다른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동생을 10년 넘게 돌봐주고 계신 이모님이 "하라가 목을 매달았는데 아무도 내려주지 않는다, 혹시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데 빨리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 그때 '이번엔 우리 하라가 정말 잘못됐구나'라는 걸 직감했어요.
어떤 동생이었나요? 어떻게 보면 쉬운 질문이지만, 어떻게 보면 대답하기가 가장 어려운 질문이에요. 하라는 남들이 봤을 땐 '스타'이지만 제겐 그저 평범하고 안쓰러운 여동생일 뿐이었죠. 동생을 보고 있으면 늘 마음이 짠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서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빈 공간이 많았고요. 과거에 대해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동생이 얼마나 사랑이 고픈 아이였는지 알게 되니까 동생을 보면 측은하고 마음이 아픈 적이 많았습니다.
엄마의 사랑이 있었다면 달랐을까요? 장례식장에서 친모에게도 말했어요. 하라의 죽음에는 분명 엄마의 책임도 있다고요. 2016년 동생이 남긴 메모를 보면 엄마를 그리워하는 내용이 많아요. 아마 그 시기에 일이 점점 줄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 복잡한 감정 기복을 많이 겪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면 동생은 결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혼자 있을 땐 우울하고 어두운 아이지만, 사람들과 있을 땐 누구보다 밝고 웃음이 많은 아이거든요. '엄마'라는 존재의 부재로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 때문에 동생에게 유난히 우울증이 강하게 왔다고 생각해요.
남매의 유년 시절이 궁금해요. 고모와 할머니께서 저희를 키워주셨어요. 아무래도 친척집에 얹혀 살다 보니 눈치 아닌 눈치를 보며 살았죠. 그래서 저와 동생의 꿈은 늘 '내 집'을 갖는 것이었어요. 학교에 도시락을 싸 가는 건 당연히 못 했고, 집에 친구들을 초대하지도 못했죠. 아무래도 남자인 저보다 어린 여동생이 더 상처를 많이 받았을 거예요. 종종 과거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유년 시절이 늘 외롭고 쓸쓸했다고 하더라고요.
친모에 대한 기억은요? 제겐 기억도, 추억거리도 전혀 없어요. 남들이 보면 엄마와 아들의 싸움이 우스워 보일 수 있지만, 제게 친모의 행동은 마치 남이 내 동생의 물건을 뺏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사실 동생의 죽음 이후 상속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어요. 보통 가족의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은 그렇잖아요. 그런데 장례식장에서 상주복을 입겠다는 친모와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친모가 휴대폰으로 녹음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너무 화가 나 그 자리에서 친모를 내몰았는데, 제게 그러더라고요. "구호인 너, 후회할 짓 하지 마라"고요. 그리고 얼마뒤 친모라는 사람이 동생의 재산 절반을 요구하고 나섰어요.
재산이 친모에게 가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동생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들고 싶어요. 어떤 사람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아직 구체적으로 정한 건 없지만 동생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 하늘에서 동생이 가장 바라는 바가 아닐까요? 요즘 이혼하면서 양육비를 못 받고 있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위해 재판 비용을 지원해준다거나 이혼 가정에서 혼자 사는 어린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또 동생이 동물을 정말 좋아하는데 동물단체나 생명 보호를 위한 일에 기부해도 좋을 것 같고요. 사실 마음 같아선 다 도와주고 싶어요. 그런데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동생이 수백억원의 재산을 가진 자산가는 아니에요. 300억이라는 사람도 있고, 100억이라는 사람도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고요. 동생은 수입이 많았던 만큼 지출도 많았고, 공백기도 꽤 길었어요. 세금을 내고 나면 집 한 채 살 수 있는 정도랄까요. 그래서 더 유용하게 쓰였으면 좋겠어요. 액수를 떠나 하라가 외롭고 힘들게 이룬 재산인 만큼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용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동생의 모습이 있나요? 사실 무대 아래의 동생은 또래 여자아이들과 똑같아요. 맛있는 걸 좋아하고, 친구들과 수다 떠는 걸 즐기고, 게임에 빠지면 하루 종일 게임만 하는 아주 평범한 20대죠. 동생 집에는 노래방 기계가 있었어요. 한동안 동생이 노래 연습에 푹 빠져 있길래 물어봤더니 자기는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노래 잘 부르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동생이 가수이긴 하지만 가창력이 부족하다는 얘길 많이 들었잖아요. 그래서 본인도 그런 부분에 욕심이 많았나 봐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겠죠. 직업 특성상 많이 알려진 연예인이었다는 점 외에는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20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고 이후 꿈에 나온 적은 없나요? 가족들 꿈에 다 나왔어요. 아내는 태몽으로 동생 꿈을 꿨대요. 화려한 신전에서 금으로 된 커튼, 침대에 둘러싸인 동생이 "언니 나 예뻐?"라고 물어봤다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이처럼 화려하고 예쁜 꿈은 딸을 뜻하는 태몽이라던데, 실제로 아내는 두 달 뒤 딸 출산을 앞두고 있어요. 저희가 2세를 계획한 것도 사실 동생의 영향이 컸어요. 빨리 고모가 되고 싶다며 동생이 유난히 조카를 기다렸거든요. 아쉽게도 동생이 떠나고 일주일 뒤에 임신 소식을 알게 됐어요. 동생이 생전에 알았다면 누구보다 축하해주고 좋아했을 텐데….
되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요? 동생을 만나면 서로 항상 꼭 안아줬어요. 헤어질 때도 꼭 껴안아줬죠.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많이 힘들고 외로웠을 동생을 더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어서요. 또 하라가 있어 저도 역시 많은 의지가 됐고 위로가 됐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아픈 과거이긴 했지만 지난 시간을 회상하며 서로를 기억해주는 동생이 있어 정말 좋았습니다. 전 아직도 가끔 동생이 일본에 있다는 착각을 하곤 해요. 금방이라도 동생에게 전화가 올 것 같기도 하고요.
대중에게 전하고 싶은 말. 재판을 준비하면서 공감해주고 자신의 일처럼 응원해준 사람들이 있어 정말 큰 힘이 됐어요. 국민청원에 동의해주신 10만 명의 국민께도 한 명, 한 명 감사함을 전하고 싶고요. '구하라법'의 통과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건들이 '잊히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가 자식의 유산만을 챙기는 억울한 일이 발생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