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이었다. 헝가리와 인접한 이탈리아 전역이 코로나19로 ‘일시 정지’되더니 도미노처럼 스페인과 프랑스, 독일, 영국이 차례로 쓰러졌다. 올 초만 해도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유럽 전역을 덮친 것이다. EU 정상들 간의 마라톤 회의가 열린 끝에, 유럽연합국의 회원들은 일제히 비슷한 대응 방침과 방역 계획을 밝혔다.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학교와 거리의 상점이 문을 닫았고, 하늘길이 막혔으며, 도시에는 봉쇄령이 떨어졌다. 1년 내내 관광객이 끊이지 않던 부다페스트의 모든 불빛이 공허해지는 데는 한나절이면 충분했다.
그에 따라 심리적 타격을 가장 크게 입을 수밖에 없는 건, 사실상 집도 연고도 없는 유학생들이었다. 정보를 얻을 통로나 도움 받을 지역사회 커뮤니티가 전무한 데다 국가 의료보험 체계나 병원 운영 시스템에서는 제1의 열외 대상이니 말이다.
특히 유럽은 한국처럼 전방위적으로 확진자 검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19 감염의 모든 증세가 나타나더라도 14일 이내에 중국 우한, 한국, 이탈리아 북부를 방문한 적이 있거나, 확진자의 가족이라는 직접적 연관이 없이는 바이러스 검사를 받을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사재기 현상도 사회 불안에 일조했다. 한국과 달리 헝가리를 비롯한 모든 유럽 국가에서는 대량 사재기 현상이 빚어졌다. 전 지역의 마트마다 휴지와 파스타 면, 시리얼, 통조림 같은 생필품과 레토르트 식품이 동이 났고 마트를 찾은 이들의 줄이 거리마다 늘어서 ‘전시 상황’을 방불케 했다. 부다페스트에서 의료진으로 일하는 한 친구는 병원 차원에서 손세정제와 마스크를 구매하고자 해도 공급 자체가 없는 상황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독일이나 스위스, 영국, 이탈리아에 머무는 친구들의 사정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부다페스트의 공항과 대중교통은 이용객이 없어 텅 비었고 각종 상점은 대부분 문을 닫았으며, 문을 연 몇몇 가게에 출입하기 위해선 신분증이 필요하다. 365일 24시간 관광객으로 붐비던 부다페스트의 낯선 풍경이 이어지고 있다.
부다페스트에선 이미 3월 중순께부터 경찰과 군 병력이 온 도시에 투입돼 삼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통행하는 이들을 무작위로 붙잡고 여권과 신분증을 요구했으며, 외출의 타당성을 묻고 강제로 집으로 돌려보내 자택 격리를 시킬 임시 권한까지 주어졌다. 이 역시 인접한 이탈리아와 프랑스, 독일이 시행하고 있는 ‘외출 금지령’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언론에선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강하다. 정부는 예외적으로 외출이 인정되는 사유로 ‘장보기’ ‘개인의 건강을 위한 운동’ ‘개 산책’ 등을 허용했는데, 부다페스트는 이를 이용해 봄 날씨를 즐기며 자유롭게 활보하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실정이다.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아웃도어 지향적이며 자연 속을 자유로이 산책하고 햇빛을 즐기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유러피언의 오랜 관습이 오히려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데 일조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오죽하면 지난주 뉴스의 헤드라인이 ‘날씨를 즐기지 마세요’ 였을까. 게다가 마스크를 쓰는 일이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중환자’라는 이미지가 강한 유럽에서 초기에 마스크를 쓰는 데 거부감을 드러냈던 것이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었던 골든타임을 놓치게 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난 몇 주간 부다페스트에서는 한국행을 서두르는 유학생과 교민들의 술렁임, 전세기 대란, 겪어본 적 없던 강도 높은 도시 봉쇄령이 한바탕 파도가 되어 한인 사회를 휩쓸었다. ‘자유의 다리’ ‘데악 광장’을 비롯해 출퇴근 러시가 심했던 부다페스트의 텅 빈 트램과 지하철의 모습은 낯설다 못해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부다페스트에서 여행 사업을 하는 지인은 귀국을 고민 중이라고 한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향후 1년간의 여행 상품 운영이 차질을 빚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유럽이, 그리고 유러피언의 생활 방식이 어떻게 바뀔지는 예측 불가지만, 이전과 같은 일상으로 복귀하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글·사진 _ 최미미
작가로 일하다 독일 베를린을 거쳐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유학을 떠났다. 현재는 평론가의 꿈을 꾸며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