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에도 확고한 방침을 세우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던 어느 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전 국민 연설을 통해 ‘전시 상황’을 선포했다. 그날 이후 학교는 문을 닫았고, 모든 경제 활동이 정지됐으며, 전 국민은 격리 조치됐다. 파리는 도시 전체가 텅 비었다. 파리지앵의 대대적인 피난이 이어지며 대다수의 젊은이와 대학생들이 시골 부모님 댁이나 여름 별장으로 피신하기 위해 떠났기 때문이다. 당시 3일 동안 파리발 기차는 대부분 만석이었고, 1m의 안전 거리 권고가 무색할 만큼 사람들은 서로 밀고 당기며 기차에 올라타기 위해 신경전을 벌였다.
격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에는 필수적인 사유가 있는 외출 이외에는 모든 외출이 금지됐다. 반드시 직장으로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의료진, 슈퍼마켓 직원, 우체부, 경찰 등)과 병이 있어 병원이나 약국에 꼭 가야 하는 사람들, 생필품 구매 등은 외출 가능 사유였다. 그 밖에도 하루에 1시간씩 반려동물 산책, 운동 등을 위해 집 주위 반경 1km 내외로 외출이 가능했지만 정부에서는 그것도 최대한 자제하기를 권고했다. 이런 전례 없는 팬데믹 현상과 강력한 격리 조치에 프랑스인들의 일상에도 예상치 못한 일이 속속 발생했다. 가장 충격적인 일은 격리 조치 이후 가정폭력 사태가 늘어났다는 것. 24시간 동안 얼굴을 맞대고 지내다 보니 부부 싸움이 잦아지면서 가정폭력이 폭증하게 됐다. 프랑스 법원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대부분의 공판을 취소하거나 연기했으나, 가정폭력범 사건만큼은 신속하게 판결해 극단적인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시 상황’이 선포된 파리에서는 경찰들이 격리 위반자들을 잡아내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공공장소는 대부분 문을 닫았고 경찰은 드론을 동원해 수색을 펼쳤다. 오갈 곳 없는 노숙자들은 전염병의 위험에 여전히 방치돼 있다.
물론 좋은 점도 있다. 우선 세 가지가 줄었는데 공기 오염, 교통사고, 마약범이다. 경찰 순찰이 늘어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거리를 쏘다니는 마약 거래범들이 사라졌고 지역 간 이동이 제한되니 공기 오염, 교통체증, 교통사고가 줄어든 것이다. 또 오르세, 그랑 팔레 등 유명 박물관은 물론이고 도서관, 극장 등 모든 문화 기관은 방문객 감소로 인해 즉각적인 타격을 받았음에도 격리된 프랑스인들을 위로하기 위한 문화 콘텐츠를 무료로 공개했다.
순기능을 나열하며 좋은 점만 찾기에는 프랑스 정부의 안일함과 무능함에 불만을 나타내는 프랑스인이 상당하다. 진단 키트가 준비되지 않아 확진자 테스트를 하지 않았고, 그렇다 보니 사태 발생 이후 프랑스에서 총 몇 회의 테스트를 했는지조차 공개적으로 밝히지 못하고 있다. 즉 총 확진자 통계도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의 사례에 대해 관심을 갖는 프랑스 언론이 늘어났다. 대규모 조기 진단, 확진자 경로 확보(프랑스에서는 이제야 도입할까 말까 고민하는 단계다), 전 국민 마스크 착용 등 한국의 대처 방식에 많은 언론의 관심이 쏟아졌다. 프랑스 방송 M6, <르푸앙> <르몽드> 등 거의 모든 매체가 한국의 사례를 매일 다루고 있다.
이런 언론 보도를 접한 일부 ‘오만한’ 프랑스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가장 현명하다고 믿으며 한국의 조치는 “불필요”하고, “반인권적”이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재앙이 인간의 손을 벗어나면, 사람들은 이 재앙이 현실이 아니라고 믿는다. 그냥 나쁜 꿈일 뿐이라고, 금방 떠나갈 거라고 되뇌인다. 그러나 나쁜 꿈이 이어지는 동안 떠나가는 것은 사람뿐”이라는 알베르 카뮈의 말이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송민주
5년째 파리에 거주하고 있는 문화 애호가. 다수의 책을 번역하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작가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