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책방
킥킥, 웃음의 소리로 울 때
허수경의 시는 그러니까, 한때 우리가 서로를 알아보는 증표 같은 것이었다. “킥킥, 당신…” 이라고 암구호 외듯 중얼거리며 우리는 서로를 찾았고 서로와 멀어졌다. ‘혼자 가는 먼 집’에 사는 우리. 우리라는 말과 혼자라는 말은 그토록 가까웠다. 그토록 가까웠지만 우리는 가장 먼 곳에서 공명했다.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이라고 읽을 때, 웃음의 소리로 울 때, 허수경의 시는 우리의 ‘숨발론(Sumbalon: 증표)’이 돼주었다.
196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그는 1987년 <실천문학>에 시 ‘땡볕’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이듬해인 1988년에 나온 첫 시집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와 1992년에 나온 두 번째 시집 <혼자 가는 먼 집>이 일으킨 파장은 굵고 인상적이었다. 그 파장에 속절없이 흔들리는 우리를 두고, 그는 훌쩍 독일로 가버렸다. 고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독일에 가기 전 그가 했던 일은 방송 다큐멘터리와 라디오 프로그램 구성작가였다. 돈이 많이 필요했지만 시는 돈이 되지 않았다. 스물 중반의 나이에 암에 걸린 아버지의 병원비와 식구들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그는 방송뿐 아니라 글로 돈이 될 만한 일은 다 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5년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허탈해진 그는 문득 외국에 가야겠다고 결심한다. 하필 독일이었던 이유는 학비가 싸기 때문이었고, 하필 고고학을 선택한 이유는 낭만적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독일로 떠날 때 사람들은 곧 돌아오겠거니 여겼다. 그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상황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뮌스터 대학에서 고대 근동 고고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자신의 지도교수와 결혼해 그곳에 눌러앉았다. 때때로 터키나 이집트 변방을 돌며 발굴 작업을 하고, 그리고 글을 썼다. 이후 네 권의 시집을 더 냈다.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그 외에도 소설, 동화, 산문 등 다양한 책을 써냈다. 장편소설 <모래도시> <박하> <아틀란티스야, 잘가>, 산문집 <길모퉁이의 중국식당> <모래도시를 찾아서>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너 없이 걸었다>. 동화책 <가로미와 늘메 이야기> <마루호리의 비밀>. 독일 작품을 우리말로 번역하기도 했다. <슬픈 란돌린> <끝없는 이야기> <사랑하기 위한 일곱 번의 시도> <그림 형제 동화집>. 마지막으로 출간된 그의 유고집 <가기 전에 쓰는 글들>은 2019년 ‘작가들이 뽑은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그는 독일어로 일상을 살면서도 끈기 있게 한국어로 글을 썼다. 독일어와 한국어 사이의 긴장. 고고학과 문학 사이의 긴장. 그의 작품 세계가 지니는 넓이와 폭, 깊이를 그렇게만 설명할 수는 없겠으나, 그렇게도 설명될 수 있으리라. 먼 곳에 있었지만 그의 글은 여전히 한국에 있는 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2001년에는 동서문학상, 2016년에는 전숙희문학상, 2018년에는 이육사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2018년 10월 54세의 나이에 위암으로 타계했다. 그래도 여전히 그의 시를 빌려 울 수 있는 것은, 남겨진 우리의 축복이다.
글 박사(북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