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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한 5월엔 이 책을 꺼내 읽어요

5월 추천 도서 '혼자 가는 먼 집', '뭉클',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좌절의 기술', '엄마 졸업식' 미리 보기.

On April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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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책방
킥킥, 웃음의 소리로 울 때

허수경의 시는 그러니까, 한때 우리가 서로를 알아보는 증표 같은 것이었다. “킥킥, 당신…” 이라고 암구호 외듯 중얼거리며 우리는 서로를 찾았고 서로와 멀어졌다. ‘혼자 가는 먼 집’에 사는 우리. 우리라는 말과 혼자라는 말은 그토록 가까웠다. 그토록 가까웠지만 우리는 가장 먼 곳에서 공명했다.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이라고 읽을 때, 웃음의 소리로 울 때, 허수경의 시는 우리의 ‘숨발론(Sumbalon: 증표)’이 돼주었다.

196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그는 1987년 <실천문학>에 시 ‘땡볕’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이듬해인 1988년에 나온 첫 시집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와 1992년에 나온 두 번째 시집 <혼자 가는 먼 집>이 일으킨 파장은 굵고 인상적이었다. 그 파장에 속절없이 흔들리는 우리를 두고, 그는 훌쩍 독일로 가버렸다. 고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독일에 가기 전 그가 했던 일은 방송 다큐멘터리와 라디오 프로그램 구성작가였다. 돈이 많이 필요했지만 시는 돈이 되지 않았다. 스물 중반의 나이에 암에 걸린 아버지의 병원비와 식구들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그는 방송뿐 아니라 글로 돈이 될 만한 일은 다 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5년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허탈해진 그는 문득 외국에 가야겠다고 결심한다. 하필 독일이었던 이유는 학비가 싸기 때문이었고, 하필 고고학을 선택한 이유는 낭만적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독일로 떠날 때 사람들은 곧 돌아오겠거니 여겼다. 그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상황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뮌스터 대학에서 고대 근동 고고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자신의 지도교수와 결혼해 그곳에 눌러앉았다. 때때로 터키나 이집트 변방을 돌며 발굴 작업을 하고, 그리고 글을 썼다. 이후 네 권의 시집을 더 냈다.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그 외에도 소설, 동화, 산문 등 다양한 책을 써냈다. 장편소설 <모래도시> <박하> <아틀란티스야, 잘가>, 산문집 <길모퉁이의 중국식당> <모래도시를 찾아서>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너 없이 걸었다>. 동화책 <가로미와 늘메 이야기> <마루호리의 비밀>. 독일 작품을 우리말로 번역하기도 했다. <슬픈 란돌린> <끝없는 이야기> <사랑하기 위한 일곱 번의 시도> <그림 형제 동화집>. 마지막으로 출간된 그의 유고집 <가기 전에 쓰는 글들>은 2019년 ‘작가들이 뽑은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그는 독일어로 일상을 살면서도 끈기 있게 한국어로 글을 썼다. 독일어와 한국어 사이의 긴장. 고고학과 문학 사이의 긴장. 그의 작품 세계가 지니는 넓이와 폭, 깊이를 그렇게만 설명할 수는 없겠으나, 그렇게도 설명될 수 있으리라. 먼 곳에 있었지만 그의 글은 여전히 한국에 있는 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2001년에는 동서문학상, 2016년에는 전숙희문학상, 2018년에는 이육사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2018년 10월 54세의 나이에 위암으로 타계했다. 그래도 여전히 그의 시를 빌려 울 수 있는 것은, 남겨진 우리의 축복이다.

글 박사(북 칼럼니스트)
 

  • <뭉클>

    <경향신문> 사진기자의 렌즈 너머로 만난 사람과 풍경이 눈길을 붙잡는다. 아프고 힘든 세상을 살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와 글로 풀어냈다. 강윤중, 경향신문사, 1만5천5백원

  •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코로나19로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논쟁이 활발하다. 지속적인 제안으로 떠오르는 기본소득.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고정관념을 넘어 기본소득에 대한 이슈를 짚어본다. 금민, 동아시아, 1만6천원

  • <좌절의 기술>

    좌절의 순간에 세네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같은 철학자들이 어떻게 맞섰는지 철학의 지혜를 들려준다. 좌절을 성장의 기회를 바꾸는 기술이 담겨 있다. 윌리엄 B. 어빈, 어크로스, 1만4천원

  • <엄마 졸업식>

    엄마가 되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 엄마를 보내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의 생생한 사례들과 함께 엮었다.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될 힐링의 책. 오혜경, 문학공감, 1만2천원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박주연
사진
김재경
2020년 05월호
2020년 05월호
에디터
하은정, 박주연
사진
김재경